생생후기
알프스에서 만난 용기, 배낭 하나 메고
Alpe Doss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게 남은 대학생활은 고작 1년 남짓.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특권이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졸업 전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항상 마음 속으로만 생각했던 해외봉사를 떠올렸다.
학교에서 국제워크캠프와 교류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하게 되었고 선발이 되어 국제워크캠프인으로서 한 발을 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신청한 국가는 이탈리아였고 처음에는 단지 영국 어학연수 시절 때 만난 친구들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를 하는 김에 친구들도 보고 올 생각이였다. 그런데 또 운이 좋게 친구들이 있는 곳과 멀지 않은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 근처 손드리오 라는 마을이였다. 하지만 캠프가 산 위에 있는지 등산화와 캐리어가 아닌 배낭, 침낭을 가져오라는 인포싯이 있었고 평소에 운동도 안하던 내가 그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을지 또 배낭은 어찌나 무거운지 가기 전에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휩싸였었다. 다행히 같은 캠프에 배정받은 한국 동생이 있었기에 정보도 교환하고 밀라노 공항에 도착해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그 동생과 만나서 미팅 장소로 가게 되었다. 열차가 에어컨도 없이 창문으로 되어있는 정말 구식의 열차였지만 장소를 향해 달리면서 보여준 풍경은 정말 환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모습에 캠프 장소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Colico staion. 역이 작기도 작았지만 다들 큰 배낭을 메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같은 캠프 팀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인사도 나누고 리더들이 이동하는 차에 타서 교회가 있는 큰 체육관 같은 시설로 갔다. 첫날은 그냥 이곳에서 머물면서 필요한 것도 사고 저녁에는 마을 분들이 잘 아는 레스토랑에 가서 인사도 하고 처음 저녁을 먹었다. 처음이라 어색한 것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팀원 중에 러시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한국말을 정말 잘 하는 언니가 있어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체육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대망의 산위의 캠프장소로 올라가는 날.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팀원들과 같이 올라가느라 생각보다는 힘듦의 고통을 견뎌낼 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오르막길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고 산 중턱 이후로 계속된 오르막길에는 정말 한발 한발 내미는 것이 너무나 숨이 차는 상태였다. 같이 온 한국 친구와 가장 뒤로 밀려나서 힘들게 올라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리더 분들이 기다려주고 도와줘서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1502m에 다다르는 캠프 장소까지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휴식 장소에서도 아름다운 경치에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알페도소에서 보는 경치는 정말 끝내주었다. 시설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고 남녀구분 없이 한방에서 자야했지만 침대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첫날은 정말 올라가는데 힘이 다 빠져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래도 팀원들끼리 서로 친해지려고 게임을 했던 것 같다. 잠귀가 밝아서 따박따박 붙어서 자는 것이 적응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피곤하니 매번 꿀잠을 잤던 것 같다. 월요일 날 시작한 산위의 캠프생활은 수요일이 되면서 절정이 되었다. 알페도소 동호회 단체로 활동하는 마을 주민분들이 오셔서 파티를 하는 날이였다. 그때 스페인 친구들이 만들어준 샹그리아 술도 먹고 술기운도 나서 친구들이랑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같다. 사진도 엄청 찍고 게임도 하고 캠프 기간 중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동호회 단체 아저씨들도 정말 활발하셔서 팀원들이랑 따로 있는게 아니라 같이 놀면서 사진도 찍고 그랬다. 특히 아저씨들이 동양인 여자2명을 신기하게 생각하신 건지 우리들을 잘 챙겨주시고 항상 ‘만쟈만쟈’ 라며 이태리말로 먹어먹어를 얘기하셨다. 나중에는 한국말로 먹어, 마셔를 배우셔서 우리만 보면 한국말을 하셨다.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워크캠프라 하여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문화를 배우는 것에 더 치중할 줄 알았는데 일도 또한 중요한 하루의 일과였다. 여자 남자 구분없이 나무 껍질 벗겨내기,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길 청소하기, 나뭇가지 잘라서 옮기기 등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였고 영광의 상처로 여러 곳에 물집이 잡히고 다리에 상처도 생겼다. 비가 온 날은 일을 조금하거나 쉬었는데 그래도 거의 매일 일을 했던 것 같다. 주말에는 원래 피자산이라고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주말에 가지 못하고 평일에 가게 되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훨씬 수월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고 정말 암벽등반을 하듯이 기어갔던 것 같다. 캠프 장소에 올라오는 것보다 5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고생에는 보람이 있듯이 등산하면서 볼 수 있었던 만년설, 사슴들, 소들이 마음을 정화시켜주었고 2000m에 다다르는 산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었다. 피자산에는 가지 못하고 그 중간에 호수에 도착하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년설과 어우러진 호수는 장관이였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제주도 한라산의 백록담을 보는 기분이였다. 그렇게 분위기를 만끽하며 팀원들고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누며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캠프 중간에 게임도 정말 많이하고 춤도 정말 많이 추었다. 팀원 중에 클럽음악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도 없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있던것이 아닌가. 비록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건재하구나 생각하고 못 추는 춤을 추어가며 강남스타일 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술 게임도 알려주었다. 쉬운 ‘딸기’게임을 알려주었더니 처음엔 어려워하더니 정말 재미있게 하였고 나중에는 우리만 보면 딸기딸기 외치면서 좋아했다. 또 한국 팀이 요리할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불고기 소스를 이용해서 불고기요리를 하고 김, 호떡믹스로 마무리 해주었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해서 동생한테 많이 의지를 했는데 밥은 고지에서 하고 또 대량을 준비하다 보니까 물을 잘 못 맞춰서 설익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친구들이 다 잘 먹어주었고 정말 맛있다고 해준 친구들도 몇몇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짧지만 또 길었던 12일이 지나고 마지막 하루는 다시 교회 체육관으로 내려가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다시 체육관으로 왔을때는 내가 어떻게 저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갔지? 또 이곳에 다시 왔구나 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꼬모 호수로 가서 물놀이를 했다. 그런데 수영복을 준비하지 못해서 물놀이에 끼지는 못하고 선탠만 하다 왔다. 하지만 풍경이 너무 좋아서 정말 행복했다. 마지막 밤에는 첫날 갔던 레스토랑에서 다시 저녁을 먹고 리더들이랑 책임자분들이 한마디씩 하고 팀원들에게 티셔츠도 나눠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우리사진이 나온 지역신문도 나누어 주었는데 정말 뜻 깊었다. 이렇게 마무리 할 줄 알았는데 정말 마지막으로 디스코장을 가서 정말 한풀이 하듯 놀았다. 아저씨들이랑 팀원들이랑 단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잊지 못할 밤이 되었다. 헤어질 때는 정말 너무 아쉬웠지만 이렇게 좋은 추억을 안겨주어 감사한 마음이 컸다. 체육관에서 마지막 밤을 자고 팀원들과도 다시 Colico station으로 돌아와서 헤어졌다. 사정이 있어서 3일 먼저 떠난 스페인 친구가 있는데 먼저 다가와주고 성격이 너무 좋아 깊게 친해졌었다. 그 친구도 생각나면서 나중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모두와 헤어졌다. 워크캠프 후기를 보면 정말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또는 가장 기억에 남는 2주가 된다고 하는데 정말 사실이었다. 짧지만 24시간을 같이 하다보니 가까워 질 수 밖에 없고 다들 성격도 좋아서 불편함이 없었다. 더운 여름을 이렇게 고지에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운이었고 친절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것도 정말 행운이었다.
어찌보면 2kg이 빠질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이제껏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잘 한 일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기도 했지만 국적을 다 떠나서 한 장소에서 살 부대끼며 서로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뜻 깊었다.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특권이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졸업 전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항상 마음 속으로만 생각했던 해외봉사를 떠올렸다.
학교에서 국제워크캠프와 교류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하게 되었고 선발이 되어 국제워크캠프인으로서 한 발을 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신청한 국가는 이탈리아였고 처음에는 단지 영국 어학연수 시절 때 만난 친구들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를 하는 김에 친구들도 보고 올 생각이였다. 그런데 또 운이 좋게 친구들이 있는 곳과 멀지 않은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 근처 손드리오 라는 마을이였다. 하지만 캠프가 산 위에 있는지 등산화와 캐리어가 아닌 배낭, 침낭을 가져오라는 인포싯이 있었고 평소에 운동도 안하던 내가 그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을지 또 배낭은 어찌나 무거운지 가기 전에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휩싸였었다. 다행히 같은 캠프에 배정받은 한국 동생이 있었기에 정보도 교환하고 밀라노 공항에 도착해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그 동생과 만나서 미팅 장소로 가게 되었다. 열차가 에어컨도 없이 창문으로 되어있는 정말 구식의 열차였지만 장소를 향해 달리면서 보여준 풍경은 정말 환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모습에 캠프 장소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Colico staion. 역이 작기도 작았지만 다들 큰 배낭을 메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같은 캠프 팀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인사도 나누고 리더들이 이동하는 차에 타서 교회가 있는 큰 체육관 같은 시설로 갔다. 첫날은 그냥 이곳에서 머물면서 필요한 것도 사고 저녁에는 마을 분들이 잘 아는 레스토랑에 가서 인사도 하고 처음 저녁을 먹었다. 처음이라 어색한 것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팀원 중에 러시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한국말을 정말 잘 하는 언니가 있어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체육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대망의 산위의 캠프장소로 올라가는 날.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팀원들과 같이 올라가느라 생각보다는 힘듦의 고통을 견뎌낼 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오르막길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고 산 중턱 이후로 계속된 오르막길에는 정말 한발 한발 내미는 것이 너무나 숨이 차는 상태였다. 같이 온 한국 친구와 가장 뒤로 밀려나서 힘들게 올라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리더 분들이 기다려주고 도와줘서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1502m에 다다르는 캠프 장소까지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휴식 장소에서도 아름다운 경치에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알페도소에서 보는 경치는 정말 끝내주었다. 시설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고 남녀구분 없이 한방에서 자야했지만 침대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첫날은 정말 올라가는데 힘이 다 빠져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래도 팀원들끼리 서로 친해지려고 게임을 했던 것 같다. 잠귀가 밝아서 따박따박 붙어서 자는 것이 적응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피곤하니 매번 꿀잠을 잤던 것 같다. 월요일 날 시작한 산위의 캠프생활은 수요일이 되면서 절정이 되었다. 알페도소 동호회 단체로 활동하는 마을 주민분들이 오셔서 파티를 하는 날이였다. 그때 스페인 친구들이 만들어준 샹그리아 술도 먹고 술기운도 나서 친구들이랑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같다. 사진도 엄청 찍고 게임도 하고 캠프 기간 중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동호회 단체 아저씨들도 정말 활발하셔서 팀원들이랑 따로 있는게 아니라 같이 놀면서 사진도 찍고 그랬다. 특히 아저씨들이 동양인 여자2명을 신기하게 생각하신 건지 우리들을 잘 챙겨주시고 항상 ‘만쟈만쟈’ 라며 이태리말로 먹어먹어를 얘기하셨다. 나중에는 한국말로 먹어, 마셔를 배우셔서 우리만 보면 한국말을 하셨다.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워크캠프라 하여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문화를 배우는 것에 더 치중할 줄 알았는데 일도 또한 중요한 하루의 일과였다. 여자 남자 구분없이 나무 껍질 벗겨내기,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길 청소하기, 나뭇가지 잘라서 옮기기 등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였고 영광의 상처로 여러 곳에 물집이 잡히고 다리에 상처도 생겼다. 비가 온 날은 일을 조금하거나 쉬었는데 그래도 거의 매일 일을 했던 것 같다. 주말에는 원래 피자산이라고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주말에 가지 못하고 평일에 가게 되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훨씬 수월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고 정말 암벽등반을 하듯이 기어갔던 것 같다. 캠프 장소에 올라오는 것보다 5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고생에는 보람이 있듯이 등산하면서 볼 수 있었던 만년설, 사슴들, 소들이 마음을 정화시켜주었고 2000m에 다다르는 산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었다. 피자산에는 가지 못하고 그 중간에 호수에 도착하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년설과 어우러진 호수는 장관이였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제주도 한라산의 백록담을 보는 기분이였다. 그렇게 분위기를 만끽하며 팀원들고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누며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캠프 중간에 게임도 정말 많이하고 춤도 정말 많이 추었다. 팀원 중에 클럽음악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도 없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있던것이 아닌가. 비록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건재하구나 생각하고 못 추는 춤을 추어가며 강남스타일 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술 게임도 알려주었다. 쉬운 ‘딸기’게임을 알려주었더니 처음엔 어려워하더니 정말 재미있게 하였고 나중에는 우리만 보면 딸기딸기 외치면서 좋아했다. 또 한국 팀이 요리할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불고기 소스를 이용해서 불고기요리를 하고 김, 호떡믹스로 마무리 해주었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해서 동생한테 많이 의지를 했는데 밥은 고지에서 하고 또 대량을 준비하다 보니까 물을 잘 못 맞춰서 설익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친구들이 다 잘 먹어주었고 정말 맛있다고 해준 친구들도 몇몇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짧지만 또 길었던 12일이 지나고 마지막 하루는 다시 교회 체육관으로 내려가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다시 체육관으로 왔을때는 내가 어떻게 저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갔지? 또 이곳에 다시 왔구나 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꼬모 호수로 가서 물놀이를 했다. 그런데 수영복을 준비하지 못해서 물놀이에 끼지는 못하고 선탠만 하다 왔다. 하지만 풍경이 너무 좋아서 정말 행복했다. 마지막 밤에는 첫날 갔던 레스토랑에서 다시 저녁을 먹고 리더들이랑 책임자분들이 한마디씩 하고 팀원들에게 티셔츠도 나눠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우리사진이 나온 지역신문도 나누어 주었는데 정말 뜻 깊었다. 이렇게 마무리 할 줄 알았는데 정말 마지막으로 디스코장을 가서 정말 한풀이 하듯 놀았다. 아저씨들이랑 팀원들이랑 단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잊지 못할 밤이 되었다. 헤어질 때는 정말 너무 아쉬웠지만 이렇게 좋은 추억을 안겨주어 감사한 마음이 컸다. 체육관에서 마지막 밤을 자고 팀원들과도 다시 Colico station으로 돌아와서 헤어졌다. 사정이 있어서 3일 먼저 떠난 스페인 친구가 있는데 먼저 다가와주고 성격이 너무 좋아 깊게 친해졌었다. 그 친구도 생각나면서 나중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모두와 헤어졌다. 워크캠프 후기를 보면 정말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또는 가장 기억에 남는 2주가 된다고 하는데 정말 사실이었다. 짧지만 24시간을 같이 하다보니 가까워 질 수 밖에 없고 다들 성격도 좋아서 불편함이 없었다. 더운 여름을 이렇게 고지에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운이었고 친절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것도 정말 행운이었다.
어찌보면 2kg이 빠질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이제껏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잘 한 일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기도 했지만 국적을 다 떠나서 한 장소에서 살 부대끼며 서로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뜻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