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유쾌한 또라이의 독일 워크캠프 도전기
Hohwachter Buch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드디어 떠났다. 하루 24시간 3개월을 빠지지않고 매일 고민했다. 친구의 말마따나 유쾌하고 밝은 또라이가 되자며 밤 11시 급작스럽게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출국하기전까지 한번의 티켓변경이 있었고 처음 신청했던 워크캠프에 떨어져 다시 1지망을 골라야했지만 두달의 독일여행 이후 이를 신의 한수라 생각한다. 역시 여행은 급작스러운 여정 변경에 어떻게 대처하나를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3년 전 영국 워크캠프했을 때 친해진 독일 친구와 연락이 닿아 이번 독일 워크캠프 전 이틀 정도 그 친구네 집에서 머물 수 있게 되어 현지적응이 빨랐다. 찾아가는 역 이름도 제대로 알려주고 독일 기차의 승차감이 좋아 헤매지 않고 Oldenburg역에 도착했다. 곧 점심시간이 되어 시내에서 밥을 먹고 가려는데 식사 중간 버스가 떠나 홀로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고 갔다. 그래도 이 덕분에 다음 정류장에서 같은 워캠참가자인 페페와 알프레도를 만날 수 있어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15분 정도를 달려 목적지에 다다르자 일찍 도착한 다른 참가자들과 리더인 타티아나가 우리를 마중나와주었다. 정이 매우 넘칠 것 같은 느낌이 세게 다가왔다.
우선 도착 후 얼떨떨한 상태에서 같이 숙소로 이동하였다. 예상은 했지만 기대는 안했던 숙소는 방마다 침대와 깨끗한 이불이 깔려있고 부엌, 거실, 화장실, 테라스와 함께 잔디밭도 있는 호화로운 숙소의 결정판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성지도확인해보고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충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서로 친해질 겸 거실에서 같이 대화를 하다보니 아시아인이 나를 비롯해 한국인 4명, 대만인 1명, 홍콩인 1명에 프랑스 1명, 이탈리아 2명, 러시아인 1명에 독일인 리더 1명, 총 1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전 영국 워크캠프에서는 아시아인이 나밖에 없어서 초반에 외로움이 상당했는데 이번 워크캠프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홍콩에서 온 안드레아를 마지막으로 11명 모두가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첫날을 마감하였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독일 귀족 가문이었던 지역에 머물면서 고택을 수리, 보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매일 2명씩 한팀이 되어 돌아가면서 점심과 저녁식사 준비를 하였다. 일은 보통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식사준비팀은 11시쯤 빠지고 12시 경 같이 점심을 먹고 1시에 복귀 후 4-5시까지 예전에 비해 고된 활동이었다. 활동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같이 하는 등 서로 오밀조밀 단란하게 시간을 보냈다. 특히 근처 슈퍼마켓에서 팔았던 라면을 야식으로 꽤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일끝나고 야식먹으면서 맥주한잔씩 했던 기억은 한국에 있는 지금도 이따금 생각난다.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더 돈독해졌던 것 같다.
사실 워크캠프 초반에 리더가 자신의 역할에 부담을 느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행동을 보였었다. 서로 감정이 쌓이면서 오해가 생기고 어느 사건을 계기로 터지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 난 그동안을 살아오면서 참고 이해하고 어쩌면 가끔 마음편히 포기하는게 인간관계를 가장 편히 지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건 진정으로 그 관계를 위하는 일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게 사람인데 어떻게 말하지 않고 부딪혀보지 않고 정을 쌓을 수 있으며 하물며 쌓인 오해를 풀 수 있나. 사건이 터졌을 당시 분위기는 술렁였으나 이내 팀원들끼리 무엇이 문제였나 서로 얘기해보고 리더에게도 생각을 전달하면서 리더가 너무 잘 이끌어야겠단 생각에 팀원으로서 참여하는 모습이 적었다. 이 사건 이후 리더도 조금씩 자신을 놓으면서 팀원으로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맘편히 정도 주면서 가끔은 각자의 뒷담화도 하면서 팀원 대 팀원으로서 친해지게 되었다.
확실히 같이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타고 바다보러가고 딸기밭에서 노지딸기도 맛보면서 활동적인 일을 함께 하다보니 훨씬 정도 깊고 빨리 들었던 것 같다. 팀장과 호스트가 여러가지를 알아봐줘서 근교도시로 당일여행, 말타기, 수상스키, 바베큐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호스트였던 세바스티앙도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를 높이 생각하며 다음기회에도 워크캠프를 개최하고 싶다고 하셨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11명 중 3명이 갑작스럽게 합류한 멤버였기 때문에 캠프를 끝내는 날이 기존 멤버들보다 최소 일주일 정도가 빨랐다. 같이 정이 많이 든 만큼 누군가를 떠나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여행은 항상 그렇다. 떠나거나 떠나가거나. 그럴때마다 나의 최선은 매일 나를 중심으로 사는 일이었다. 나도 내 길에서 열심히 걷고 상대방도 그 길을 열심히 걷다보면 서로 같이 있지못하더라도 함께함을 느낄 수 있으면 언젠가 인연이 다시 닿을거라는 것. 실제로 그렇게 3년 전 워크캠프에서 만난 독일 친구를 다시 만나 그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별 핑계대며 사는 게 바빠 귀국 후 두달정도가 지나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다시 회상하며 쓰는 재미도 있고 글을 이성과 감성을 섞어 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꿈꾼다. 3년 후 나를.
나의 독일, 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모두 소중했던 시간.
3년 전 영국 워크캠프했을 때 친해진 독일 친구와 연락이 닿아 이번 독일 워크캠프 전 이틀 정도 그 친구네 집에서 머물 수 있게 되어 현지적응이 빨랐다. 찾아가는 역 이름도 제대로 알려주고 독일 기차의 승차감이 좋아 헤매지 않고 Oldenburg역에 도착했다. 곧 점심시간이 되어 시내에서 밥을 먹고 가려는데 식사 중간 버스가 떠나 홀로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고 갔다. 그래도 이 덕분에 다음 정류장에서 같은 워캠참가자인 페페와 알프레도를 만날 수 있어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15분 정도를 달려 목적지에 다다르자 일찍 도착한 다른 참가자들과 리더인 타티아나가 우리를 마중나와주었다. 정이 매우 넘칠 것 같은 느낌이 세게 다가왔다.
우선 도착 후 얼떨떨한 상태에서 같이 숙소로 이동하였다. 예상은 했지만 기대는 안했던 숙소는 방마다 침대와 깨끗한 이불이 깔려있고 부엌, 거실, 화장실, 테라스와 함께 잔디밭도 있는 호화로운 숙소의 결정판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성지도확인해보고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충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서로 친해질 겸 거실에서 같이 대화를 하다보니 아시아인이 나를 비롯해 한국인 4명, 대만인 1명, 홍콩인 1명에 프랑스 1명, 이탈리아 2명, 러시아인 1명에 독일인 리더 1명, 총 1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전 영국 워크캠프에서는 아시아인이 나밖에 없어서 초반에 외로움이 상당했는데 이번 워크캠프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홍콩에서 온 안드레아를 마지막으로 11명 모두가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첫날을 마감하였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독일 귀족 가문이었던 지역에 머물면서 고택을 수리, 보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매일 2명씩 한팀이 되어 돌아가면서 점심과 저녁식사 준비를 하였다. 일은 보통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식사준비팀은 11시쯤 빠지고 12시 경 같이 점심을 먹고 1시에 복귀 후 4-5시까지 예전에 비해 고된 활동이었다. 활동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같이 하는 등 서로 오밀조밀 단란하게 시간을 보냈다. 특히 근처 슈퍼마켓에서 팔았던 라면을 야식으로 꽤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일끝나고 야식먹으면서 맥주한잔씩 했던 기억은 한국에 있는 지금도 이따금 생각난다.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더 돈독해졌던 것 같다.
사실 워크캠프 초반에 리더가 자신의 역할에 부담을 느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행동을 보였었다. 서로 감정이 쌓이면서 오해가 생기고 어느 사건을 계기로 터지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 난 그동안을 살아오면서 참고 이해하고 어쩌면 가끔 마음편히 포기하는게 인간관계를 가장 편히 지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건 진정으로 그 관계를 위하는 일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게 사람인데 어떻게 말하지 않고 부딪혀보지 않고 정을 쌓을 수 있으며 하물며 쌓인 오해를 풀 수 있나. 사건이 터졌을 당시 분위기는 술렁였으나 이내 팀원들끼리 무엇이 문제였나 서로 얘기해보고 리더에게도 생각을 전달하면서 리더가 너무 잘 이끌어야겠단 생각에 팀원으로서 참여하는 모습이 적었다. 이 사건 이후 리더도 조금씩 자신을 놓으면서 팀원으로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맘편히 정도 주면서 가끔은 각자의 뒷담화도 하면서 팀원 대 팀원으로서 친해지게 되었다.
확실히 같이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타고 바다보러가고 딸기밭에서 노지딸기도 맛보면서 활동적인 일을 함께 하다보니 훨씬 정도 깊고 빨리 들었던 것 같다. 팀장과 호스트가 여러가지를 알아봐줘서 근교도시로 당일여행, 말타기, 수상스키, 바베큐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호스트였던 세바스티앙도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를 높이 생각하며 다음기회에도 워크캠프를 개최하고 싶다고 하셨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11명 중 3명이 갑작스럽게 합류한 멤버였기 때문에 캠프를 끝내는 날이 기존 멤버들보다 최소 일주일 정도가 빨랐다. 같이 정이 많이 든 만큼 누군가를 떠나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여행은 항상 그렇다. 떠나거나 떠나가거나. 그럴때마다 나의 최선은 매일 나를 중심으로 사는 일이었다. 나도 내 길에서 열심히 걷고 상대방도 그 길을 열심히 걷다보면 서로 같이 있지못하더라도 함께함을 느낄 수 있으면 언젠가 인연이 다시 닿을거라는 것. 실제로 그렇게 3년 전 워크캠프에서 만난 독일 친구를 다시 만나 그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별 핑계대며 사는 게 바빠 귀국 후 두달정도가 지나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다시 회상하며 쓰는 재미도 있고 글을 이성과 감성을 섞어 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꿈꾼다. 3년 후 나를.
나의 독일, 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모두 소중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