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TAILLEBOUR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고상하고 구체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떠나고 싶다. 프랑스에 대한 로망. 다국적 만남. 재미’와 같은 막연하고 감성적인 이유가 그 출발이었다.
다만, 오래전 어느 때부터 낯선 환경 속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있는 ‘나’를 갈망하곤 했다. 아마도 독립적으로 상황을 헤쳐 나아가는 경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는 낯선 장소와 낯선 언어 그리고 그 속에 있을 낯선 ‘나’를 재현하기에 적합해보였다. 그 무엇이 되었든 ‘부딪혀서 해보기'로 했다.
'홀로 선다'는 생각이, 워크캠프를 준비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만, 오래전 어느 때부터 낯선 환경 속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있는 ‘나’를 갈망하곤 했다. 아마도 독립적으로 상황을 헤쳐 나아가는 경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는 낯선 장소와 낯선 언어 그리고 그 속에 있을 낯선 ‘나’를 재현하기에 적합해보였다. 그 무엇이 되었든 ‘부딪혀서 해보기'로 했다.
'홀로 선다'는 생각이, 워크캠프를 준비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1. 인사
이제 막 Taillebourg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부(副)리더(leader) Frede가 반갑다는 말을 건네 왔고 프랑스식 인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그녀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고, 내 양쪽 볼에 쪽쪽 소리가 났다. 당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유럽식 인사였던 것이다. 나의 첫 bisou는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캠프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bisou를 하고 다녔다. bisou의 매력은 인사를 나누는 당사자들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나와 너. 즉, 두 사람만의 고유한 순간이 마련된다. 서로가 밀착되어 둘만의 온기를 맞이한다. 서로의 향을 맡을 수 있고 서로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진실한 인사를 나누게 되고 교감하게 된다. 오롯이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2. THE WALL & A PLAY
첫 봉사 활동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오래전, 세금 징수를 통해 막강한 자본과 권력을 얻은 Taillebourg 지배자를 두려워한 프랑스의 국왕이 이를 견제하고자 종교적 명분과 함께 지역을 파괴했다. 그래서 마을에는 무너진 성벽들이 남아있게 되었고 마을 공동체가 현재 적극적으로 이 성벽들을 재건하고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이 역사적인 성벽을 우리가 함께 쌓는 것이었다.
잡초 뽑기, 돌 쌓기, 토기 부수기, 로마식 시멘트 제조와 칠하기 등의 작업이 이루어졌고, 성벽은 18일만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었기에 작업을 하는데 어설픈 감이 있었다. 고된 일과로 가끔은 투정도 부렸지만, 힘겨운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는 대단했다.
성벽 쌓기와 함께 이루어진 활동은 마을 사람들과의 연극이었다. 100년을 맞이한 세계 1차 대전을 기리는 연극으로, 우리 캠프는 시장 손님, 전쟁 용사를 응원하는 주민, 마을 아녀자, 군인 등의 조연을 맡았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계속되었던 연극 연습. 근대 시대의 여성 복장과 모자 그리고 신발. 본격적인 공연. 관객들. 우리들의 합. 같은 연극이었지만 공연마다 느낀 그 미묘한 차이. 공연 후 매번 열렸던 뒤풀이 파티. 너무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3. 通通通
나를 포함하여 Pauline, Frede, 의현언니, JoJo, Clara, Eda, Sveta, Jessica, Jose, Leo는 프랑스, 덴마크, 한국, 대만, 스페인, 터키,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국에서 온 11명의 청춘들이었다.
우리의 소통(疏通)은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언어는 영어와 몸짓이 주를 이루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는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실력이 향상되었고 동시에 대화도 수월해졌다. 몸짓과 의성어를 완전히 배제시킬 수는 없었다. 묘사적인 대화도 여전히 오갔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를 했고. 이해를 했고. 공감을 했고. 교감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 왔고 다른 경험을 겪은 개인들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했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보편성 역시 막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인간끼리의 어떤 통(通)함이 있었다.
연극과 식사 초대, international dinner, 수영장 파티, open door 등을 통해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다국적 청소년 캠프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프랑스어를 조금씩 흉내내기 시작했고 숙소였던 파란색 텐트를 "It's home!"이라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Taillebourg의 모든 것이 포근해져갔다.
이제 막 Taillebourg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부(副)리더(leader) Frede가 반갑다는 말을 건네 왔고 프랑스식 인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그녀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고, 내 양쪽 볼에 쪽쪽 소리가 났다. 당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유럽식 인사였던 것이다. 나의 첫 bisou는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캠프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bisou를 하고 다녔다. bisou의 매력은 인사를 나누는 당사자들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나와 너. 즉, 두 사람만의 고유한 순간이 마련된다. 서로가 밀착되어 둘만의 온기를 맞이한다. 서로의 향을 맡을 수 있고 서로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진실한 인사를 나누게 되고 교감하게 된다. 오롯이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2. THE WALL & A PLAY
첫 봉사 활동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오래전, 세금 징수를 통해 막강한 자본과 권력을 얻은 Taillebourg 지배자를 두려워한 프랑스의 국왕이 이를 견제하고자 종교적 명분과 함께 지역을 파괴했다. 그래서 마을에는 무너진 성벽들이 남아있게 되었고 마을 공동체가 현재 적극적으로 이 성벽들을 재건하고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이 역사적인 성벽을 우리가 함께 쌓는 것이었다.
잡초 뽑기, 돌 쌓기, 토기 부수기, 로마식 시멘트 제조와 칠하기 등의 작업이 이루어졌고, 성벽은 18일만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었기에 작업을 하는데 어설픈 감이 있었다. 고된 일과로 가끔은 투정도 부렸지만, 힘겨운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는 대단했다.
성벽 쌓기와 함께 이루어진 활동은 마을 사람들과의 연극이었다. 100년을 맞이한 세계 1차 대전을 기리는 연극으로, 우리 캠프는 시장 손님, 전쟁 용사를 응원하는 주민, 마을 아녀자, 군인 등의 조연을 맡았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계속되었던 연극 연습. 근대 시대의 여성 복장과 모자 그리고 신발. 본격적인 공연. 관객들. 우리들의 합. 같은 연극이었지만 공연마다 느낀 그 미묘한 차이. 공연 후 매번 열렸던 뒤풀이 파티. 너무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3. 通通通
나를 포함하여 Pauline, Frede, 의현언니, JoJo, Clara, Eda, Sveta, Jessica, Jose, Leo는 프랑스, 덴마크, 한국, 대만, 스페인, 터키,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국에서 온 11명의 청춘들이었다.
우리의 소통(疏通)은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언어는 영어와 몸짓이 주를 이루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는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실력이 향상되었고 동시에 대화도 수월해졌다. 몸짓과 의성어를 완전히 배제시킬 수는 없었다. 묘사적인 대화도 여전히 오갔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를 했고. 이해를 했고. 공감을 했고. 교감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 왔고 다른 경험을 겪은 개인들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했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보편성 역시 막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인간끼리의 어떤 통(通)함이 있었다.
연극과 식사 초대, international dinner, 수영장 파티, open door 등을 통해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다국적 청소년 캠프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프랑스어를 조금씩 흉내내기 시작했고 숙소였던 파란색 텐트를 "It's home!"이라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Taillebourg의 모든 것이 포근해져갔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1. 결국, 사람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는 a demain(아드망)이었다. '내일보자'라는 의미는 마지막을 뜻하지 않는다며, 즐겁게 헤어지자는 의미였다.
사실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전, 여행에 있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국적이고 낯선 ‘경치’였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사람들과의 교류. 그들에게서 느끼는 정. 그것은 경치와는 다른 차원의 무엇이었다. 결국, 사람이다.
2. 하늘
그동안 나는 하늘을 보고 살지 않았다. 프랑스는 하늘이 '그냥' 보였다. 쾌청하고 파랬다. 구름은 음영이 살아있어 입체적이었다. 하늘을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하늘을 보고 자랄 것이다.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3. 지구는 아름다운 별이야.
일상에 안주하기엔, 지구는 봐야하고 느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별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는 a demain(아드망)이었다. '내일보자'라는 의미는 마지막을 뜻하지 않는다며, 즐겁게 헤어지자는 의미였다.
사실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전, 여행에 있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국적이고 낯선 ‘경치’였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사람들과의 교류. 그들에게서 느끼는 정. 그것은 경치와는 다른 차원의 무엇이었다. 결국, 사람이다.
2. 하늘
그동안 나는 하늘을 보고 살지 않았다. 프랑스는 하늘이 '그냥' 보였다. 쾌청하고 파랬다. 구름은 음영이 살아있어 입체적이었다. 하늘을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하늘을 보고 자랄 것이다.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3. 지구는 아름다운 별이야.
일상에 안주하기엔, 지구는 봐야하고 느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