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작은 마을, 내 인생의 첫 해외 봉사

작성자 조미나
프랑스 SJ51 · RENO 2014. 07 - 2014. 08 Villefranche-de-Rouergue

MORLHON-LE-HAUT: LE PONT DE PERI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사는 나라 밖에는 어떤 세상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항상 있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등을 통해서 외국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해왔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외경심, 궁금함, 호기심, 두려움 등이 있었고 20대에만 할 수 있는 것, 청춘을 즐길 것 에 대한 주제로 나만의 위시 리스트?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적은 것이 해외 봉사 였다.
학교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해외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보자마자 두말할것 없이 바로 지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합격통보를 받고 참가전 사전 모임을 가지니 외국에 나간다는 설레임과 부모님 곁을 처름으로 떠나 혼자서 한다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었다.
짐을 싸며 준비하던 일주일 내내 부모님의 잔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저 어리버리가 과연 해외나가서 잘 할수나 있을련지, 한국에 다시 잘 돌아올 수 있으련지
남들이 못 해본 경험 하고 오는 거니 건강히 무사하게 지내다 오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하나하나 기억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이셨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에서 나 홀로 서기라는 타이틀이 참 매력적이었고 과연 아무 탈 없이 잘 하고 올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대감이 더 컸기에 준비 내내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기차표. 항공티켓, 교툥수단, 여행경비 등등을 준비하기 위해 처음으로 세 네개의 일을 하면서 돈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보상의 쾌감도 느낄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모의 사전 교육이 있을 당시에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들과 만남이 있었다. 이미 여러번 참여 해 봤던 사람도 많았고 나처럼 처음이었던 사람, 한번에 봉사를 여러개 신청하여 여행경로를 크게 짠 사람 등 계획을 참 잘 세워서 놀라웠다. 그에 또 한번 난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프랑스라는 선진국에도 봉사단이 필요할까. 과연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언어가 안 통하는데 의사소통 전달은 어떻게 해야 할까. 끝나고 나서도 연락이 될까. 등등 많은 궁금증도 생기고 나와 다른 눈, 머리, 피부 색을 가진 외국인들과 감정을 교류하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할 점을 찾기 위해 프랑스의 기본 매너행동을 찾아 가며 배운것 같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프랑스 외곽지역에 위치한 빌프란체. 그 중에서도 몰리혼 이라는 작은 마을이 봉사하는 곳이 었다. 정말 예뻤다. 기숙사는 마을 공동이 쓰는 체육관이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나가면 해가 촹 하고 비추고 그 햇살에 나뭇잎이 반짝거리며 특유의 마을 숲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침의 비몽사몽으로 깨어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에게는 아침밥 같지 않았던 아침 밥으로 빵을 먹은 후 우리를 픽업할 트랙터를 타고 다리를 만드는 곳 까지 갔었다. 산속 중간 쯤에 위치했던 다리를 마저 짓는 것이 우리 과제 였다. 첫날에는 나뭇가지 치우고 돌나르고 돌치우고 만을 했다. 과연 삼주안에 다리를 완성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생겼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되니 하루만에 몸도 망가졌다.무거운 돌도 나르고 나중에는 시멘트 만드는 법도 배웠다. 다이애나가 모래를 삽질해와서 퍼오면 이티얀은 시멘트 가루와 물, 모래를 섞어서 시멘트를 만들고 나는 그걸 양동이에 담아서 다리까지 날랐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무겁고 눈과 코고 아플정도로 가루가 날렸다. 그 상황에서도 이티얀과 나디아, 다이애나 덕분에 많이 웃었다. 이티얀은 프랑스 남자아이인데 말하는건 아저씨처럼 말해서 참 웃겼다. 이티얀이 하는 말을 나디아가 흉내내면서 둘이 참 티격태격하는게 정말 웃겼다. 아직도 이티얀의 명언이 떠오른다."you make me crazzzzzy!"
첫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마을에서 봉사단이 왔다고 환영회 파티를 해준다고 했다. 아직도 생각 하면 몰리혼 동네 사람들은 과히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 거의 일주일 동안 저녁에는 파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그 다음날 아침이 되기 전까지 노래가 틀어져 있었고 내려가면 마을 청소년들이 인사해 주곤 했다... 아침에는 다리 짓고 와서 점심을 먹고 미팅을 가지거나 마을 사람들과 만나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했고 저녁에는 거의 파티를 했다. 매일매일이 정말 즐거 웠다. (이제와서 얘기하지만 이제 파티 그만 하고 싶다. 너무 힘들었다..)
다른 동네로 다른 봉사단이 있는 곳에 간적이 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건설기술이 필요했고 하루 종일 일을한다고 했다. 학교를 짓는 것이었고 정말 대단했다.그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난 후 그 마을의 행사가 있어서 둘러 보고 왔다. 정말 외국에 관한 나에 대한 생각은 뭐든지 크다 였는데 진짜 소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리고 나작으로 카누잉을 하러 간적이 있다. 카누잉 가기전 사람들과 잔디에 누워서 태닝도 하고 낮잠자는 사람 얼굴에 낙서도 하고 깔깔 거리다가 계곡가에 갔다. 카누잉을 하면서 더 돈독해진것 같다. 서로 물 장난치고 배 넘어 뜨리고 물먹이고 도망치고,,재밌었다. 수영을 못하는 내가 카누잉을 또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 봉사단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마을 주민들이 교통편을 배려해주었다. 직접 데려다주고 설명해주고 같이 활동했다. 나라면 귀찮아서 거부했을텐데 항상 웃으면서 걱정해주고 나눠주고 함께 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매번 놀랐다.
어영부영 일주일이 지났을 때 문득 느낀 것이었다.(주말에는 일이 없었다.)일을 하러 간 월요일 아침 이었다. 돌만 치우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벌써 시멘트를 만들고 다리에 돌을 붙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과히 엄청난 전진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 놀라웠고 내가 조금은 대견스러웠다. 정말 잘하면 내가 있는 동안에 이 다리를 다 완성하여 다리로 건너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프랑스 참가자들이 과반수 였고, 그중에서도 영어를 하지 못 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터에서 서로 어떤 것이 필요 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를 알고 도와주고 알려주고 있었던 모습이 눈에 들어왔었고 그 때의 느낌은 정말 뭉클? 했었다.
마지막 주 쯤이었을 것이다. 인터네셔널 밀이라고 참가자들의 나라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는 파티를 열었었다. 나는 콜라닭볶음을 만들었고 러시아에서 온 다이애나와 이그낫은 만두같은 것을 만들었다. 이티얀은 소고기를 소스에 담근 스프를, 함자와 이스마일을 카레같은 향실료에 닭고기를 넣은 스프,나디아는 세르비아 파이, 다비드는 다진 고기와 야채볶음에 소스를 끼얹어 먹는 음식 등을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음식을 만드는 동안에도 그 좁은 주방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떠들고 굿? 배드? 굿? 이러면서 서로의 음식을 확인하고 마시고 떠들고 정말 웃겼다.
항상 봉사단원끼리 사이가 돈독했던 것은 아니다. 나디아와 이그낫, 다이애나가 마감날 보다 일찍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하고 미안함을 보였다. 어느 순간 부터 리더들과 이들과의 분위기가 조금 냉랭해져서 식사시간이 예전만큼 재밌지 않았었고 프랑스어만 난무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어를 쓰는 소수들만이 이 분위기에 대하여 불편함을 보였다. 리더들과 사이가 조금 깨져 불편함과 어색함이 있었지만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면서 다이애나와 나디아 함자와 나는 더 돈독해진것 같다.
매일 어딘가를 소풍나가고 눈으로 보고 즐겼지만 나는 그런 순간 보다도 우리 숙소에서
우리 봉사단들과 같이 누워 땅콩을 씹으며 수다 떨었던 기억이 제일 크게 남는다.
얘깃 거리도 특별한 것 없이 여자친구 이야기, 전에 봉사활동 했던 이야기 등등 이었는데
그런 자리가 우리를 더 애틋하게 하나로 묶어 준것 같다. 봉사가 끝난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것도 그 덕분이 아닐까 싶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몸과 생각의 변화가 제일 컸다. 일단 몸이 너무 안 좋아졌다. 위생이 조금 열악했지만 단체 생활이었기에 견디다 보니 몸이 조금 안 좋아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피부도 정말 많이 탔고 체중도 줄었고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여서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정신적인 변화가 정말 값어치 있던 경험이라는 것을. 다시 하고싶다는 매력을 가진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참가 하면서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영어를 더 능숙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 다른 외국어를 배워야 겠다는 것, 그리고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남들에게 배려할 것,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해외봉사, 교환학생 등등 다 해 볼것 이다.대략 말해서 저정도 이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하나하나씩 리스트를 작성해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성장할 나를 위해서 말이다. 솔직히 대학생활 어영부영 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취업해서 어영부영 살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앞으로의 생에 대하여 거창한 계획만 세우고 하나도 실천한 적이 없었고 두려울 때, 뭔가 잘 못 되었을때는 항상 부모님 뒤에 숨기 바빴다. 그런데 얼마나 어리석었고,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난 초등학생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성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나 단체 생활을 했던 것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 경험이
미래를 위해 좀더 공부해야 겠다는 다짐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막상 혼자 해보니 어려움에 닥쳐도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조급해 할 필요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발만 동동 구를 필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태까지의 나는 너무 자만했던것 같았다. 앞으로 더 배우고 겸손하고 내 시야를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참여하고 싶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