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별 헤는 밤, 헝가리 아이들과 웃다
High Energ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3년 여름방학동안, 대학생이면 모두가 꿈꾼다는 배낭여행과 함께 독일 워크캠프에 참가하였다. 이후 유럽과 아시아권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난 후, 난 나의 꿈을 위해 프랑스로 공부하러 떠나야 함을 확신했다. 한국으로 귀국 후, 프랑스어라고는 '봉주르'가 전부였던 난, 무작정 용기와 기대만을 가지고 어학연수를 준비하였다. 이후 2014년 1학기(유럽은 2학기)를 프랑스에서 보내는 동안, 작년 독일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친구들과도 반년만에 다시 만나는 등 뜨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난 해외에 나와있을 뿐, 프랑스 교정안에서의 공부는 한국에서의 대학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가 아닌, 좀 더 다양한 경험을 기대했던 난, 또 다시 프랑스 밖을 떠나야겠다고 느꼈고, 그곳에서 가장 친해진 헝가리 친구를 계기로 헝가리 워크캠프를 찾아나갔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경험이 많고, 자신있었던 분야인 어린이 보육에 지원하였고, 운이 좋게 합격하여 올해 여름 곧장 헝가리로 떠나게 되었다. 작년 독일 워크캠프와는 달리 이번 헝가리 워크캠프에선 더 많은 친구들과 더 다양한 육체적 활동을 기대하였다. 두개의 워크캠프의 주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목적이 매우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워크캠프가 참가자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참가국들의 역사, 그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을 고취시기고자 하였다면, 헝가리 워크캠프는 참가자들이 헝가리 아이들에게 참가국의 문화를 설명하고,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나라의 젊은 청년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그 지역에 봉사하고자하는 기본적인 맥락은 같았으나, 독일에서 나는 객체였다면, 헝가리에서 나는 주체가 될 것이라는 기분에 더 많은 기대와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헝가리에서 3주가 약 12개국 50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낸 곳은 '홀로코'라는 지역으로 유네스코에서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되었을만큼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청정하고 푸른지역이였다. 그곳에서 나와 함께한 한명의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유럽국가의 친구들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곳에서 우리는 외국인이 아닌 외계인으로 착각이 될 만큼, 많은 주목과 호기심을 갖는 존재였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헝가리 집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토나다'라는 방과 후 학습교실과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평소 아이들이라면 없던 힘도 생기던 나에게 있어, 그러한 업무는 당연히 반가운 일이었고, 설레는 일이었다. 봉사활동이라기 보다는 즐거운 만남을 가지러 간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집시'라는 존재는 내가 경험 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이 었나,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반면, 아침의 이러한 일과를 마치고 갖게되는 수많은 자유시간에서는 참가자들의 숫자만큼 내 주위에 선생님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빠와 함께 2달간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는, 라트비아 친구에게서는 10년만에 다시 자전거를 배웠고, 의학을 공부한다는 친구에게서는 긴급구조법을 배웠다. 이처럼 나는 그곳에서 집시 아이들에게 그리고, 함께 참가했던 친구들에게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수십명의 개인교습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는 학생이기도 했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헝가리 집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토나다'라는 방과 후 학습교실과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평소 아이들이라면 없던 힘도 생기던 나에게 있어, 그러한 업무는 당연히 반가운 일이었고, 설레는 일이었다. 봉사활동이라기 보다는 즐거운 만남을 가지러 간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집시'라는 존재는 내가 경험 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이 었나,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반면, 아침의 이러한 일과를 마치고 갖게되는 수많은 자유시간에서는 참가자들의 숫자만큼 내 주위에 선생님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빠와 함께 2달간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는, 라트비아 친구에게서는 10년만에 다시 자전거를 배웠고, 의학을 공부한다는 친구에게서는 긴급구조법을 배웠다. 이처럼 나는 그곳에서 집시 아이들에게 그리고, 함께 참가했던 친구들에게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수십명의 개인교습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는 학생이기도 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참가 후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나는 평소 유럽하면 호화롭고 찬란한 서유럽만을 떠올렸다면, 이젠 동유럽의 지리를 섭렵하고 더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유럽 역시 서유럽만큼이나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서유럽만큼이나 충분히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들이었다.
그밖에도 드넓은 자연속에 파묻혀 이처럼 오랜시간 생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였는데, 자연 속에서의 삶이 나에게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일인가.. 내가 얼마나 도시에 하나되어 살았는가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가장 내 삶에 밀접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사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친척들이 모두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 막연히 꿈꾸던 자연과 하나되는 삶은 생각만큼 쉬운일은 아니었다. 나와 상반되게, 시골에서 태어나, 내가 집앞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노는 동안 개구리를 잡으며 놀던 친구가 있었는데, 숙소 앞에 드리워진 큰 산들을 바라보는 그와 나의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같은 또래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가 나와는 이토록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매일 아침 산을 보며 아침식사를 할 때, 난 저 산 속에 아무도 없을 것같다. 저 곳에 혼자 떨어지면 얼마나 무서울까라고 이야기하면, 아니 저 곳에는 나비도 있고 사슴도 있고 많은 생명이 숨쉬고 있는, 산 자체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도시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과연 저 수 많은 빌딩안에 모두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더 외롭다는 친구의 말이 이따금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숙소앞에 슈퍼가 없다고 불평을 하던 나의 모습은 어느샌가 다 잊혀지고, 간혹 빵빵거리는 차소리가 아닌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 왠지 그곳은 10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 일것만 같다. 밤하늘엔 별이 유리에 비친 햇살만큼이나 밝게 떠 있고, 잠자는 나무와 꽃들의 숨결이 느껴지고, 해가 밝아오면 온 세상의 빛은 다 여기 모여있는 듯 햇빛이 뜨겁고 산듬성이가 푸르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밖에도 드넓은 자연속에 파묻혀 이처럼 오랜시간 생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였는데, 자연 속에서의 삶이 나에게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일인가.. 내가 얼마나 도시에 하나되어 살았는가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가장 내 삶에 밀접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사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친척들이 모두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 막연히 꿈꾸던 자연과 하나되는 삶은 생각만큼 쉬운일은 아니었다. 나와 상반되게, 시골에서 태어나, 내가 집앞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노는 동안 개구리를 잡으며 놀던 친구가 있었는데, 숙소 앞에 드리워진 큰 산들을 바라보는 그와 나의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같은 또래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가 나와는 이토록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매일 아침 산을 보며 아침식사를 할 때, 난 저 산 속에 아무도 없을 것같다. 저 곳에 혼자 떨어지면 얼마나 무서울까라고 이야기하면, 아니 저 곳에는 나비도 있고 사슴도 있고 많은 생명이 숨쉬고 있는, 산 자체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도시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과연 저 수 많은 빌딩안에 모두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더 외롭다는 친구의 말이 이따금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숙소앞에 슈퍼가 없다고 불평을 하던 나의 모습은 어느샌가 다 잊혀지고, 간혹 빵빵거리는 차소리가 아닌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 왠지 그곳은 10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 일것만 같다. 밤하늘엔 별이 유리에 비친 햇살만큼이나 밝게 떠 있고, 잠자는 나무와 꽃들의 숨결이 느껴지고, 해가 밝아오면 온 세상의 빛은 다 여기 모여있는 듯 햇빛이 뜨겁고 산듬성이가 푸르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