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케냐, 잊지 못할 추억과 소중한 경험
Ebusakami Community Driven Development Proje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참가동기는 어렸을 때 TV에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언니오빠들을 보았습니다. 그 것을 보고 아프리카 봉사를 꿈꿔왔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제 3세계의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만나서 그 아이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이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아프리카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참가 전 준비는 아프리카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나 카페(워크캠프 100배 즐기기 등)을 통해 준비했습니다.
워크캠프를 통해 영어회화에 자신감이 생겨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통해 나를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참가 전 준비는 아프리카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나 카페(워크캠프 100배 즐기기 등)을 통해 준비했습니다.
워크캠프를 통해 영어회화에 자신감이 생겨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통해 나를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참가기간:8월3일~8월23일
참가지역:EBUSAKAMI VIHIGA, Kenya
캠프 Code및Title: KVDA/STV/08A
활동테마: Feeding goats, cleaning the units of goats, planting trees(banana tree, gardening) and jigger campaign, peeling the corns, home visit
참가자구성(국적,인원): 한국2, 대만2,홍콩1,프랑스2,아프리카8(여자3,남자5)
7월30일에 한국을 떠나 7월31일 새벽에 케냐 나이로비의 땅을 밟았다.
일단 혼자 해외로 가는 건 처음이라 많이 두렵고 긴장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pick-up을 해주신다니까 순탄한 여행이 될꺼 같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 본 나이로비의 공항은 아무것도 없었고, 칠흙같은 어두움이 나를 반겨주었다.
근데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무서웠다. 여러 흑인분들이 말을 걸고 터치하는데 kvda의 사람이 없었다. 그 때 어떤 한국남자분이 도와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난 럭키였다. 그 한국남자분으로 인해 그리고 중간에 또 도와주신 대한항공 메니저님 덕분에 kvda와 연락이 닿아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2일 아침 8시 30분에 미팅장소인 KVDA에서 모여서 오리엔테이션을 하였다. 1일부터 2일까지 워캠팀과의 많은 대화로 3일날에 오리엔테이션이 어색하지 않고 즐거웠다. 그리고 난 한국인을 만나서 행복했다.
오리l엔테이션 때는 한국 오리엔테이션에서 했던 Fear&Expectation을 했고, 자기소개도 하고, 주의상황이나 여러 가지 도움될만한 말을 해주셨다. 그리고 끝나고 아프리카 춤도 배웠다. 즐거운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이 근처에 있는 슬럼가를 방문했다.
이 곳은 다른 세상 같았다. 슬럼가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이 슬럼가에서 우는 아이, 불평을 하는 아이, 화내는 아이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모두 해맑은 아이들 뿐이였고, 외국인과의 작은 인사 하나에 좋아하는 아이들이였다. 쓰레기더미와 오염된 물이 흐르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해맑았다. 그 곳에서 비닐을 엮어서 그네를 만들어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작고 낮은 흙 벽하나로 슬럼가의 모습과 그 밖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한쪽은 쓰레기더미와 더러운물이 고여있었는데 한 쪽은 드 넓은 연두색 잔디가 깔려있는 골프장이었다. 작고 낮은 흙 벽하나로 빈부격차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3일 새벽4시 30분에 Ebusakmi Vihiga로 떠나는 차(KVDA)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 해가 뜨는 하늘을 보았는데 너무 이뻤다. 워크캠프 마을로 가는 내 마음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Vihiga로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겨서 어떤 마을에 정차했다.
차 보험비를 냈는데 이 차에 몇 명이 타는지 신고를 안해서 경찰관 앞 정차를 했다. 한 2~3시간동안 있었는데, 그 곳에서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지냈다. 여행하다가 이렇게 계획에 없는 일이 생겨서 모르는 동네에 오래 머물렀으면 짜증났을텐데, 뭔가 짜증보단 즐거웠다. 이 시간이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다. 그 동네의 아이들과 인사도 하고, 게임을 알려주면서 같이 게임을 하고, 앉아서 이야기하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아이들은 내 머리카락이 자신들과 다르고, 부드럽다며 머리를 만지는데 너무 귀여웠다.
해결이 되고 차는 떠났다. 차가 떠날때까지 인사해주던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아쉬웠다. 워캠에서 생활하고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지금 드는 기분보다 더 슬프겠다는 생각도 했다.
KISUMU KVDA에 거의 도착할 쯤에 그릴콘을 먹었다. 예전에 예능에서 아프리카관련 방송을 하길래 봤었는데 에티오피아 Bokolo 간식이 나와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케냐에도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날 이후 캠프 끝날 때까지 그릴콘은 내 간식이 되었다.
4일에는 팀 규칙을 정하고, 4가지 부서를 (work community, kitchen community, entertainment community, health community )를 정했다.
지역 현지 봉사자는 한명씩은 꼭 들어가야 되고, 모두 참여해야된다. 나는 entertainment community에 소속되어 리더가 되었다. entertainment community는 봉사 후 그리고 주말에 뭐를 해야할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community이다.
봉사는 5일부터 시작했다. 첫 주의 봉사는 주로 옥수수의 껍질과 알 까기, 염소 unit 청소, 먹이주기, 정원을 가꿨다.
그리고 항상 봉사 끝난 후에는 토론을 했다. 낮에는 오늘 봉사에 대한 성과(달성)와(과) 도전을 토론했고 밤에는 4가지의 community에 대해 토론했다.
염소 unit을 청소해주면서 궁금했던 점이 왜 2층에 염소를 두는 건지 궁금했었다.
이유는 도망가지 말라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인데 유래된거라서 2층에 두신다고 하셨다.
6일 아침 봉사가기 전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활동을 했다. 물을 길러오는 거였는데 물이 있는 곳이 멀기도 했지만 무게가 장난이 아니였다. 아프리카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이 것이 일상인듯했다. 나도 진짜 들고싶었는데 내 의지데로 안되서 속상했다.
7일에 entertainment community때는 지역 시장인 Luanda에 갔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장터가 열린다고 한다. 근데 목요일에는 크게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마가 구경시켜주신다고 해서 감사했고, 지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에서 온 남자아이와 여자아이한테는 특유의 생선냄새로 인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8일에는 봉사활동 5곳 중 3곳만 갔다왔다. 2곳은 아침에 벌써 다 끝냈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침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낮에 쉬는 것 같다.
오늘 entertainment community는 팀원들과 같이 등산을 했다. 한국의 일반 등산이라고 생각했다. 리더도 “just hiking"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등산은 단지 하이킹이 아니였다.
한국의 산은 개척되어 있는 산이라고 말을 하면 오늘 간 산은 내가 개척해야되는 산이었다. 그리고 바위가 많은 바위산이였다. 경치는 정말 감탄할정도로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그래서 지역 현지 친구한테 의지하고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이 등산은 나에게 정말 새롭고 도전해볼만한 경험이었다.
내려올때 비가 엄청와서 교회에서 비를 피했던 기억도 난다.
주중에는 이렇게 봉사를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키수무로 나와서 휴식을 취했다.
첫째 주에 우리의 일정은 키수무에 있는 키수무 박물관, 빅토리아 호수였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키수무에 머물사람은 더 머물고, 아닌 사람은 캠프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키수무 박물관에서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담겨져있었고, 볼 것이 많았다. 빅토리아 호수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여서 실망했고 보트를 오랫동안 타서 멀미 때문에 그닥 즐겁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의 교통수단이 나를 더 즐겁게 했다. 내가 본 교통수단은 자전거, 모터바이크, 삼륜바이크,
키수무에서 더 머물사람은 총 4명이였는데 갔다와서는 더 친해졌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벌써 둘째주가 시작되었다.
둘째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역 현지 봉사자와 그 곳 아이와 놀다가 갈비뼈를 다쳤다.
그래서 그 다음날 월요일에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봉사는 괜찮지만 몸을 움직이는 봉사는 안된다고 하셨다. 봉사활동을 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봉사활동이 가뜩이나 힘든데 한명이라도 빠지면 더 힘들꺼라고 생각하니 봉사하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봉사도 힘든데 옆에서 도와주는 언니한테도 너무 미안했다.
오늘 entertainment 시간은 적도에 갔다. 적도에 가면 몸무게가 가벼워진다는 설이 있다던데 몸무게 재는 기계없나.. 많이 걷어서 아팠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고 하니 오늘 하루도 재미있었다.
12일,13일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ntertainment도 자유시간으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우리가 매일 정해진 당번이 있는데 수요일은 나, 대만 남자아이, 케냐 남자아이가 당번이다.
그래도 13일 오후부터는 몸이 괜찮아지기 시작하여 저녁식사에는 같이 도울 수 있었다.
수요일의 저녁메뉴는 차파티,양배추볶음이다. 차파티 처음 만들 때는 너무 어려워서 땀을 한 바가지 흘렸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한 번 해봤었기도 했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저녁메뉴를 만들면서도 대화를 많이 했다. 그 중에 기억남는 말은 아프리카 교육관련 이야기였다. 아프리카의 교육제도는 우리와 달리 초등학교 8년, 중학교는 없고 고등학교 4년 대학교4년이었다. 대만 같은 경우는 우리 한국과 같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저녁메뉴를 만드니 더 재미있었다.
근데 오늘 나랑 친한 지역 현지 봉사 남자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까 까지 괜찮았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니까 장난인줄알았다.
밥을 먹는데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팀 모두가 기분이 다운된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만 하늘에 별이 아름답게 박혀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동안 보고있었다.
다음날 말라리아 걸린 남자아이는 호전되고 있고, 나의 갈비뼈 상태도 좋아지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이제 다음주면 나도 봉사할 수 있어서 그만 미안해도 될꺼 같았다.
이번 둘째주 주말에도 키수무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언니와 나를 제외한 다른 봉사자들은 Kakamega 숲에 갔다. 나도 그 숲에 가고 싶었는데 많이 걸어야 되기 때문에 혹시 더 안좋아질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도,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안가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이유는 나이로비가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지역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대한항공 직항편이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경유편을 알아보기 위해 컴퓨터가 필요했다.
키수무에서 지내면서 길 가다가 혹은 마켓에서 마사이부족을 종종 봤었다.
처음 키수무 KVDA에서 봤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인물을 보니 너무 신기해서 사진도 같이 찍고 했었다. 근데 종종 보고 하니 그냥 사람이었는데 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17일 오후 워캠숙소에 도착했다. 지역 남자아이 한명이 “우리들 보고싶었어?”라고 나한테 물어봤다. 그래서 “당연히 보고싶었지.”라고 말하면서 또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이제 얼마 안남았는데 헤어질 때 정이 너무 들어서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마마와 워캠봉사자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마마의 남자형제가 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셔서 조의금을 드릴겸 마지막이 다가오니 아쉬운 마음에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18일 월요일, 오지않을 것 같던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마마가 갑자기 간지럼 장난을 걸어왔다. 마마도 아쉬워보이는 듯 했다. 등산할 때 내가 의지하고 구경했던 그 친구가 아무말없이 갔다. 봉사가 끝나서 간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 팀원들은 모두 몰랐다. 아무말없이 간 친구가 너무 아쉬웠다. 같이 찍은 사진도 없으니 더 아쉬웠다.
19일 봉사활동은 학교에 가서 지거(Jigger) 제거하는 활동을 하였다.
Jigger는 아프리카에서 모래벼룩이라고 알려진 진드기이다. 이 진드기는 동물과 사람들의 피부속을 파고 들어서 썩어가게하고 결국에는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설명해주시는 분이 이 지거 제거가 혐오스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 가기전에도 블로그나 카페 포스팅에 지거 제거 관련을 보고 갔다. 혐오스럽다. 징그럽다라는 글을 봤었다.
근데 난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제거하는데 쓰이는 도구는 옷핀, 칼이다. 마취재 없이 생살을 옷핀을 파내고 칼로 도려내는데 아이들은 울지도 않았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다리와 손이 덜덜 떠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근데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건 안아주는 것, 손 잡아주는 것 밖에 없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지거 제거 봉사하는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다.아이들이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마 아파하는데 어떻게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나...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기분이 매우 상할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스러웠다. 위에서 말했듯이 제거하는 도구가 옷핀이랑 칼이다. 아무런 소독없이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다.
20일 오늘은 갈비뼈가 괜찮아져서 나도 아침에 물 길러오는 거에 참여했다. 우리가 항상 드는 20L는 못들고 10L만 들었지만 그래도 참여했다는 것에 뿌듯했다.
봉사활동으로는 벽돌 만드는 것을 했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봤을때는 힘들기만 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늘 프랑스 친구 2명이 워크캠프 마지막 날이다. 모두 아쉬웠다.
21일 떠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너무 아쉬웠다. 오늘 봉사활동은 밭갈이를 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밭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것에 비해 염소 unit 청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재미있게 했다. 음악도 듣고 대화도 하면서 하니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22일 오늘은 아침부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왔을 때도 있었던 ceremony 가 오늘도 있었다. 이 시간이 정말 지루 반 재미 반이다.
워캠을 통해서 배운 점, 마지막으로 나의 소개와 소감을 발표했고, 수료증을 받았다. 1시에 시작하여 5시 넘어서 끝났다. 그리고 마마네 가족과 오늘 작별인사를 했다. 마마의 가족이 할머니네에 가야된다고 해서 오늘 갑작스럽게 이별을 했다. 눈물이 안날 것 같았는데 나를 많이 좋아해주었던 Lavin과 James이랑 작별인사하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마지막 점심을 먹고 마지막 저녁도 바로 먹은 이날, 오늘은 대만 친구(남자)의 생일이였다. 르완다시장에서 케익을 사서 같이 생일파티을 했다.
워캠 마지막날이 생일이라니 기억에 엄청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미팅시간을 가졌다. 마지막날의 소감이나 말하고싶은 것들 말하는데 순간 울컥했다. 왜냐하면 지역 친구들이 “ 널 잊지 못할꺼야 모스키토” ,“너랑 함께했던 시간이 즐거웠어 잊지 못할 꺼야” 라고 말해주는데 진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날 잊지마 날 잊으면 알지?” 일부러 장난쳤다.
23일 오랜만에 Cosmos와 인사했다. 이 분을 보니 이제 떠나는 구나를 실감했다.
지역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이메일주소, 페이스북 주소를 받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차에 올랐다.
언니와 나는 공항에 내려주셨다. 대한항공이 취소하는 바람에 한국에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재미있는 해프닝은 트렁크가 안열려서 고생 좀 했다. Cosmos가 가지말라고 붙잡는건가봐 라고 하며 장난으로 말하는데 슬프면서도 웃겼다. 그래서 난 또 울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연락하자고 말하고 우리는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참가지역:EBUSAKAMI VIHIGA, Kenya
캠프 Code및Title: KVDA/STV/08A
활동테마: Feeding goats, cleaning the units of goats, planting trees(banana tree, gardening) and jigger campaign, peeling the corns, home visit
참가자구성(국적,인원): 한국2, 대만2,홍콩1,프랑스2,아프리카8(여자3,남자5)
7월30일에 한국을 떠나 7월31일 새벽에 케냐 나이로비의 땅을 밟았다.
일단 혼자 해외로 가는 건 처음이라 많이 두렵고 긴장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pick-up을 해주신다니까 순탄한 여행이 될꺼 같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 본 나이로비의 공항은 아무것도 없었고, 칠흙같은 어두움이 나를 반겨주었다.
근데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무서웠다. 여러 흑인분들이 말을 걸고 터치하는데 kvda의 사람이 없었다. 그 때 어떤 한국남자분이 도와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난 럭키였다. 그 한국남자분으로 인해 그리고 중간에 또 도와주신 대한항공 메니저님 덕분에 kvda와 연락이 닿아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2일 아침 8시 30분에 미팅장소인 KVDA에서 모여서 오리엔테이션을 하였다. 1일부터 2일까지 워캠팀과의 많은 대화로 3일날에 오리엔테이션이 어색하지 않고 즐거웠다. 그리고 난 한국인을 만나서 행복했다.
오리l엔테이션 때는 한국 오리엔테이션에서 했던 Fear&Expectation을 했고, 자기소개도 하고, 주의상황이나 여러 가지 도움될만한 말을 해주셨다. 그리고 끝나고 아프리카 춤도 배웠다. 즐거운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이 근처에 있는 슬럼가를 방문했다.
이 곳은 다른 세상 같았다. 슬럼가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이 슬럼가에서 우는 아이, 불평을 하는 아이, 화내는 아이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모두 해맑은 아이들 뿐이였고, 외국인과의 작은 인사 하나에 좋아하는 아이들이였다. 쓰레기더미와 오염된 물이 흐르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해맑았다. 그 곳에서 비닐을 엮어서 그네를 만들어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작고 낮은 흙 벽하나로 슬럼가의 모습과 그 밖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한쪽은 쓰레기더미와 더러운물이 고여있었는데 한 쪽은 드 넓은 연두색 잔디가 깔려있는 골프장이었다. 작고 낮은 흙 벽하나로 빈부격차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3일 새벽4시 30분에 Ebusakmi Vihiga로 떠나는 차(KVDA)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 해가 뜨는 하늘을 보았는데 너무 이뻤다. 워크캠프 마을로 가는 내 마음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Vihiga로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겨서 어떤 마을에 정차했다.
차 보험비를 냈는데 이 차에 몇 명이 타는지 신고를 안해서 경찰관 앞 정차를 했다. 한 2~3시간동안 있었는데, 그 곳에서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지냈다. 여행하다가 이렇게 계획에 없는 일이 생겨서 모르는 동네에 오래 머물렀으면 짜증났을텐데, 뭔가 짜증보단 즐거웠다. 이 시간이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다. 그 동네의 아이들과 인사도 하고, 게임을 알려주면서 같이 게임을 하고, 앉아서 이야기하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아이들은 내 머리카락이 자신들과 다르고, 부드럽다며 머리를 만지는데 너무 귀여웠다.
해결이 되고 차는 떠났다. 차가 떠날때까지 인사해주던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아쉬웠다. 워캠에서 생활하고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지금 드는 기분보다 더 슬프겠다는 생각도 했다.
KISUMU KVDA에 거의 도착할 쯤에 그릴콘을 먹었다. 예전에 예능에서 아프리카관련 방송을 하길래 봤었는데 에티오피아 Bokolo 간식이 나와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케냐에도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날 이후 캠프 끝날 때까지 그릴콘은 내 간식이 되었다.
4일에는 팀 규칙을 정하고, 4가지 부서를 (work community, kitchen community, entertainment community, health community )를 정했다.
지역 현지 봉사자는 한명씩은 꼭 들어가야 되고, 모두 참여해야된다. 나는 entertainment community에 소속되어 리더가 되었다. entertainment community는 봉사 후 그리고 주말에 뭐를 해야할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community이다.
봉사는 5일부터 시작했다. 첫 주의 봉사는 주로 옥수수의 껍질과 알 까기, 염소 unit 청소, 먹이주기, 정원을 가꿨다.
그리고 항상 봉사 끝난 후에는 토론을 했다. 낮에는 오늘 봉사에 대한 성과(달성)와(과) 도전을 토론했고 밤에는 4가지의 community에 대해 토론했다.
염소 unit을 청소해주면서 궁금했던 점이 왜 2층에 염소를 두는 건지 궁금했었다.
이유는 도망가지 말라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인데 유래된거라서 2층에 두신다고 하셨다.
6일 아침 봉사가기 전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활동을 했다. 물을 길러오는 거였는데 물이 있는 곳이 멀기도 했지만 무게가 장난이 아니였다. 아프리카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이 것이 일상인듯했다. 나도 진짜 들고싶었는데 내 의지데로 안되서 속상했다.
7일에 entertainment community때는 지역 시장인 Luanda에 갔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장터가 열린다고 한다. 근데 목요일에는 크게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마가 구경시켜주신다고 해서 감사했고, 지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에서 온 남자아이와 여자아이한테는 특유의 생선냄새로 인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8일에는 봉사활동 5곳 중 3곳만 갔다왔다. 2곳은 아침에 벌써 다 끝냈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침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낮에 쉬는 것 같다.
오늘 entertainment community는 팀원들과 같이 등산을 했다. 한국의 일반 등산이라고 생각했다. 리더도 “just hiking"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등산은 단지 하이킹이 아니였다.
한국의 산은 개척되어 있는 산이라고 말을 하면 오늘 간 산은 내가 개척해야되는 산이었다. 그리고 바위가 많은 바위산이였다. 경치는 정말 감탄할정도로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그래서 지역 현지 친구한테 의지하고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이 등산은 나에게 정말 새롭고 도전해볼만한 경험이었다.
내려올때 비가 엄청와서 교회에서 비를 피했던 기억도 난다.
주중에는 이렇게 봉사를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키수무로 나와서 휴식을 취했다.
첫째 주에 우리의 일정은 키수무에 있는 키수무 박물관, 빅토리아 호수였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키수무에 머물사람은 더 머물고, 아닌 사람은 캠프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키수무 박물관에서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담겨져있었고, 볼 것이 많았다. 빅토리아 호수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여서 실망했고 보트를 오랫동안 타서 멀미 때문에 그닥 즐겁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의 교통수단이 나를 더 즐겁게 했다. 내가 본 교통수단은 자전거, 모터바이크, 삼륜바이크,
키수무에서 더 머물사람은 총 4명이였는데 갔다와서는 더 친해졌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벌써 둘째주가 시작되었다.
둘째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역 현지 봉사자와 그 곳 아이와 놀다가 갈비뼈를 다쳤다.
그래서 그 다음날 월요일에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봉사는 괜찮지만 몸을 움직이는 봉사는 안된다고 하셨다. 봉사활동을 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봉사활동이 가뜩이나 힘든데 한명이라도 빠지면 더 힘들꺼라고 생각하니 봉사하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봉사도 힘든데 옆에서 도와주는 언니한테도 너무 미안했다.
오늘 entertainment 시간은 적도에 갔다. 적도에 가면 몸무게가 가벼워진다는 설이 있다던데 몸무게 재는 기계없나.. 많이 걷어서 아팠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고 하니 오늘 하루도 재미있었다.
12일,13일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ntertainment도 자유시간으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우리가 매일 정해진 당번이 있는데 수요일은 나, 대만 남자아이, 케냐 남자아이가 당번이다.
그래도 13일 오후부터는 몸이 괜찮아지기 시작하여 저녁식사에는 같이 도울 수 있었다.
수요일의 저녁메뉴는 차파티,양배추볶음이다. 차파티 처음 만들 때는 너무 어려워서 땀을 한 바가지 흘렸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한 번 해봤었기도 했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저녁메뉴를 만들면서도 대화를 많이 했다. 그 중에 기억남는 말은 아프리카 교육관련 이야기였다. 아프리카의 교육제도는 우리와 달리 초등학교 8년, 중학교는 없고 고등학교 4년 대학교4년이었다. 대만 같은 경우는 우리 한국과 같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저녁메뉴를 만드니 더 재미있었다.
근데 오늘 나랑 친한 지역 현지 봉사 남자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까 까지 괜찮았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니까 장난인줄알았다.
밥을 먹는데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팀 모두가 기분이 다운된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만 하늘에 별이 아름답게 박혀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동안 보고있었다.
다음날 말라리아 걸린 남자아이는 호전되고 있고, 나의 갈비뼈 상태도 좋아지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이제 다음주면 나도 봉사할 수 있어서 그만 미안해도 될꺼 같았다.
이번 둘째주 주말에도 키수무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언니와 나를 제외한 다른 봉사자들은 Kakamega 숲에 갔다. 나도 그 숲에 가고 싶었는데 많이 걸어야 되기 때문에 혹시 더 안좋아질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도,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안가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이유는 나이로비가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지역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대한항공 직항편이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경유편을 알아보기 위해 컴퓨터가 필요했다.
키수무에서 지내면서 길 가다가 혹은 마켓에서 마사이부족을 종종 봤었다.
처음 키수무 KVDA에서 봤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인물을 보니 너무 신기해서 사진도 같이 찍고 했었다. 근데 종종 보고 하니 그냥 사람이었는데 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17일 오후 워캠숙소에 도착했다. 지역 남자아이 한명이 “우리들 보고싶었어?”라고 나한테 물어봤다. 그래서 “당연히 보고싶었지.”라고 말하면서 또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이제 얼마 안남았는데 헤어질 때 정이 너무 들어서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마마와 워캠봉사자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마마의 남자형제가 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셔서 조의금을 드릴겸 마지막이 다가오니 아쉬운 마음에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18일 월요일, 오지않을 것 같던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마마가 갑자기 간지럼 장난을 걸어왔다. 마마도 아쉬워보이는 듯 했다. 등산할 때 내가 의지하고 구경했던 그 친구가 아무말없이 갔다. 봉사가 끝나서 간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 팀원들은 모두 몰랐다. 아무말없이 간 친구가 너무 아쉬웠다. 같이 찍은 사진도 없으니 더 아쉬웠다.
19일 봉사활동은 학교에 가서 지거(Jigger) 제거하는 활동을 하였다.
Jigger는 아프리카에서 모래벼룩이라고 알려진 진드기이다. 이 진드기는 동물과 사람들의 피부속을 파고 들어서 썩어가게하고 결국에는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설명해주시는 분이 이 지거 제거가 혐오스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 가기전에도 블로그나 카페 포스팅에 지거 제거 관련을 보고 갔다. 혐오스럽다. 징그럽다라는 글을 봤었다.
근데 난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제거하는데 쓰이는 도구는 옷핀, 칼이다. 마취재 없이 생살을 옷핀을 파내고 칼로 도려내는데 아이들은 울지도 않았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다리와 손이 덜덜 떠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근데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건 안아주는 것, 손 잡아주는 것 밖에 없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지거 제거 봉사하는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다.아이들이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마 아파하는데 어떻게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나...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기분이 매우 상할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스러웠다. 위에서 말했듯이 제거하는 도구가 옷핀이랑 칼이다. 아무런 소독없이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다.
20일 오늘은 갈비뼈가 괜찮아져서 나도 아침에 물 길러오는 거에 참여했다. 우리가 항상 드는 20L는 못들고 10L만 들었지만 그래도 참여했다는 것에 뿌듯했다.
봉사활동으로는 벽돌 만드는 것을 했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봤을때는 힘들기만 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늘 프랑스 친구 2명이 워크캠프 마지막 날이다. 모두 아쉬웠다.
21일 떠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너무 아쉬웠다. 오늘 봉사활동은 밭갈이를 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밭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것에 비해 염소 unit 청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재미있게 했다. 음악도 듣고 대화도 하면서 하니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22일 오늘은 아침부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왔을 때도 있었던 ceremony 가 오늘도 있었다. 이 시간이 정말 지루 반 재미 반이다.
워캠을 통해서 배운 점, 마지막으로 나의 소개와 소감을 발표했고, 수료증을 받았다. 1시에 시작하여 5시 넘어서 끝났다. 그리고 마마네 가족과 오늘 작별인사를 했다. 마마의 가족이 할머니네에 가야된다고 해서 오늘 갑작스럽게 이별을 했다. 눈물이 안날 것 같았는데 나를 많이 좋아해주었던 Lavin과 James이랑 작별인사하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마지막 점심을 먹고 마지막 저녁도 바로 먹은 이날, 오늘은 대만 친구(남자)의 생일이였다. 르완다시장에서 케익을 사서 같이 생일파티을 했다.
워캠 마지막날이 생일이라니 기억에 엄청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미팅시간을 가졌다. 마지막날의 소감이나 말하고싶은 것들 말하는데 순간 울컥했다. 왜냐하면 지역 친구들이 “ 널 잊지 못할꺼야 모스키토” ,“너랑 함께했던 시간이 즐거웠어 잊지 못할 꺼야” 라고 말해주는데 진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날 잊지마 날 잊으면 알지?” 일부러 장난쳤다.
23일 오랜만에 Cosmos와 인사했다. 이 분을 보니 이제 떠나는 구나를 실감했다.
지역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이메일주소, 페이스북 주소를 받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차에 올랐다.
언니와 나는 공항에 내려주셨다. 대한항공이 취소하는 바람에 한국에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재미있는 해프닝은 트렁크가 안열려서 고생 좀 했다. Cosmos가 가지말라고 붙잡는건가봐 라고 하며 장난으로 말하는데 슬프면서도 웃겼다. 그래서 난 또 울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연락하자고 말하고 우리는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삶에서 잊지 못할 추억, 그리고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케냐에 있을 때는 한국이 그리워질 때가 가끔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케냐가 그리워질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내 손목시계는 아직 케냐 시간이다. 매일 틈날때마다 케냐에서 찍어던 사진, 기록을 보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페이스북으로 워캠팀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데 너무 보고 싶고, 다시 가고 싶다.
이 캠프를 통해 아프리카의 편견을 버렸고, 아프리카의 생활, 문화, 언어(스와힐리어), 음식에 대해 배웠다. 워캠친구들 덕분에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늘었다. 아프리카의 문화나 생활은 봉사활동이나 같이 지냄으로써 배웠고, 음식도 마찬가지로 워캠숙소에서 지내면서 배웠다. 그 나라의 음식을 만들면서 도구나 음식을 만들때의 한국과의 다른 점도 알려주면서 배웠다. 언어같은 경우는서로의 언어를 알려주면서 배웠다. 서로의 나라를 알려주며 배우니 더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일단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의 만남, 교육도 있다고 했는데 없었다. 두번째는 준비가 덜 되어있다. 봉사일정의 준비는 봉사자가 오기전에 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세번째는 KVDA에서 픽업하실 때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아던 아쉬움이 있다.
아무튼 이 워캠의 기회는 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기회였다. 이 기회를 주신 교수님과 IWO 에게 감사하다.
다음에 한번 더 참여하고 싶다.
페이스북으로 워캠팀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데 너무 보고 싶고, 다시 가고 싶다.
이 캠프를 통해 아프리카의 편견을 버렸고, 아프리카의 생활, 문화, 언어(스와힐리어), 음식에 대해 배웠다. 워캠친구들 덕분에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늘었다. 아프리카의 문화나 생활은 봉사활동이나 같이 지냄으로써 배웠고, 음식도 마찬가지로 워캠숙소에서 지내면서 배웠다. 그 나라의 음식을 만들면서 도구나 음식을 만들때의 한국과의 다른 점도 알려주면서 배웠다. 언어같은 경우는서로의 언어를 알려주면서 배웠다. 서로의 나라를 알려주며 배우니 더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일단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의 만남, 교육도 있다고 했는데 없었다. 두번째는 준비가 덜 되어있다. 봉사일정의 준비는 봉사자가 오기전에 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세번째는 KVDA에서 픽업하실 때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아던 아쉬움이 있다.
아무튼 이 워캠의 기회는 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기회였다. 이 기회를 주신 교수님과 IWO 에게 감사하다.
다음에 한번 더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