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케세라세라, 프랑스에서 시작된 용기

작성자 최은혜
프랑스 CONC 194 · RENO 2012. 07 Saint Marcellin En Fohez

SAINT-MARCELLIN-EN-FOREZ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두 번째 고향, Saint marcellin en forez.
세상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했던 우리들의 꿈 같은 시간들.

Bonjour!(쪽, 쪽)
시작은 두려움. 워크캠프와 여행 그리고 기말고사를 함께 준비하면서 솔직히 즐겁기보다는 괴로워했다. 혼자 짧은 국내여행을 두 번 정도 해봤지만 은근히 겁이 많아서 떠나기도 전에 지나친 걱정에 휩싸여있었다. 그러나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이제는 '케세라세라(될 대로 돼라)'의 마음이었다. 나는 워크캠프가 시작되기 정확히 11일 전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왕 유럽까지 가는 김에 워크캠프 전에 프랑스.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중국 북경과 덴마크 코펜하겐 등을 거쳐 두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도착한 파리. 낭만적인 파리를 즐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지닌 스위스로 떠났다. 그리고 사진만 찍으면 작품이 되는 이탈리아를 샅샅이 훑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프랑스 Lyon까지 일단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또 다시 다른 기차를 타고 프랑스의 작은 예술 도시인 Saint-etienne을 거쳐 다시 버스를 타고 약속장인 Bonson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구글 맵을 이용해 가는 길을 살펴 볼 땐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갈까 싶었지만 여행하면서 이 도시 저 도시 옮겨다니다보니 어렵지 않았다. 다들 역에서 두근거리는 첫 만남을 기대하듯이 나 또한 그랬는데, 약속시간에 늦은 관계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도착하면 전화하라는 리더의 쪽지만이 덩그러니 역 앞에 붙어있었다. 로밍한 폰으로 리더에게 여러 번 전화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그 때 마침 역 쪽으로 캐리어를 끌고 오는 흑인 남자애가 있었다. 나는 그 때 육감적으로 그 친구가 우리의 캠퍼일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 친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Work camp?"라고 물어봤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프리카 기니 공화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파리에서 살고 있는 압둘이다. 그 친구는 프랑스어만 쓰고 영어를 거의 못했지만 어찌어찌 그가 전화를 해서 리더가 곧 우리를 데리고 올 것이다라는 것을 대충 눈치로 알아들었다. 그 때, 어여쁜 아가씨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는데 우리의 리더 에바였다. 그 때부터 프랑스식 볼 인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워크캠프가 끝날 때 까지 모든 친구들과 이 인사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 서로 친밀하게 느껴져 좋았다. Bonjour 혹은 Salut(안녕)라고 말하며 양쪽 볼을 번갈아가며 살짝 부딪히는 이 인사 비쥬(Bisous)! 말이다. 에바의 차를 타고 우리가 3주 동안 머물 소박하고 아름다운 'Saint marcellin en fohez'라는 시골마을로 들어왔다.
나는 지금 Workcamp in Turkey?
나는 한국의 국제워크캠프기구처럼 Concordia라는 프랑스 기관에 속해있었는데, 우리는 Saint marcellin en forez에서 건물을 보수하는 일을 맡았다. 구체적으로는 공원 옆에 지금은 부서지고 오래된 벽만 남아있는 본래 빨래터로 쓰였던 곳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 오래된 벽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부서진 부분을 메우고 시멘트를 여러 번 다시 칠해 지붕을 얹을 수 있도록 깔끔하게 벽을 복구하는 일을 했다. 우리 워크캠프 멤버는 총 11명으로 구성됐었다. 우리의 생활리더 프랑스인 에바, 테크니컬 리더 프랑스인 스테파니 그리고 청소년이었던 프랑스인 안나와 아프리카 기니 공화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프랑스에 살고있는 압둘. 그리고 터키에서 온 절친 우무르와 오스만 그리고 역시 터키의 자유로운 영혼 엘리프. 한국에서 온 나와 유진언니. 스페인에서 온 미켈과 세르비아 출신인 알렉산드라까지. 그리고 우리는 시골마을 중앙에 위치한 굉장히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3층으로 된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3주 동안 지내게 되었다. 나는 유진언니와 엘리프와 함께 3층에 위치한 방을 함께 썼는데 방의 천장에 창이 달려있어 아침이면 구름이 지나가는 걸 보며 깼고 밤이면 별을 보며 잠들 수 있었다. 우리 리더를 포함한 캠퍼들은 첫 날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안나와 압둘은 영어를 전혀 못해 답답했지만 아는 프랑스어를 총 동원해 조금씩 말을 이어갔다. 터키 친구들이 셋이나 되다보니 첫날부터 터키 친구들이 우리 캠프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우리는 하루종일 터키 음악을 듣고 그 친구들이 흥겹게 추는 터키 춤을 함께 추며 놀았다. 심지어 터키어를 따라하며 써먹기까지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지금 내가 터키에서 하는 워크캠프에 온 것 같았다.
'Saint marcellin en forez' 축제의 날
우리 캠퍼들은 리더가 짜준 계획표에 따라 공평하게 식사 당번과 청소를 분담했다. 보통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하고 식사 당번들은 끝나기 1시간 전에 숙소로 돌아가 미리 식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쉬다가 2시부터 5시까지 또 일을 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시골 마을에 우리 또래의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항상 우리의 숙소로 놀러와 밤마다 함께 놀았다. 워크캠프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Saint marcellin en fohez 마을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 시청과 같은 곳에 가서 우리를 소개하고 마을 사람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작은 마을임에도 자신의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마을의 손님인 우리에게 마을의 역사를 소개해줬다. 하루는 Saint marcellin en forez의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우리는 각 국의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나와 유진언니는 이미 우리 캠퍼들로 매일 먹고 싶다고 칭찬을 받은 불고기와 부침개, 호박전을 만들었다. 우리 워크캠프를 소개하는 입간판과 함께 한국, 터키, 스페인, 세르비아의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원하는 만큼 돈을 내도록 했다. 역시 우리의 한국음식이 가장 인기가 높았고 마을 사람들은 '꼬헤'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축제는 마을의 남녀노소로 가득했고 비가 왔지만 불꽃놀이와 함께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갔다. 그리고 레크레이션 강사와 같은 분이 앞에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고 함께 춤을 선보여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도록 유도했다. 우리도 마을의 남녀노소와 어울려 흥겹게 밤늦게까지 함께 춤을 췄다. 나이와 상관없이 축제를 함께 즐기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레티시아(Laetitia)와 비빔밥
프랑스 사람들이 매일 아침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동네 베이커리에 따끈한 바게트 빵을 사러가는 것이다. 우리도 리더가 매일 아침 바게트 빵을 사왔는데, 언제나 따뜻한 바게트 빵에 누뗄라(초코잼)를 발라 입안에 넣는 것으로 행복한 아침을 시작했다. 밤에 자기 전에 내일 아침이 기다려질 정도로 누뗄라를 바른 빵을 먹는 것이 좋았다. 우리 캠퍼들도 모두 누뗄라 중독에 걸려 심할 때는 하루에 1통을 비우기도 해서 리더가 숨겨놓기도 했다. 나는 이런 사소한 식생활부터 풍경, 언어, 사람들 등 프랑스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특히나 좋아했던 마을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레티시아다. 우리 숙소로 처음 마을 친구들이 놀러왔던 날, 레티시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국인인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자신의 언니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자신도 가끔 봤다고 했다. 그리고 비빔밥 사진을 인터넷에 찾아서 보여주며 나와 유진언니에게 자신의 언니를 위해 비빔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프랑스 파리도 아니고 외진 시골 마을에서 한국 드라마와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도 한국인을 실제로 처음 보는 것이라 이런 부탁을 했으리라. 결국 나와 유진언니만 레티시아 집에 초대를 받아 비빔밥을 만들러 갔다. 우리는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서툰 솜씨로 비빔밥을 만드는 것이 마치 세계 요리 경연에 나온 것 마냥 긴장됐다. 어쨌든 비빔밥은 완성됐고 우리는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각자 아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가며 맛있게 함께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 날의 경험은 진정으로 프랑스 친구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전하는 느낌이 들어 너무나 특별했다.
마을 친구들이 주최해서 더 신나는 Apinac Festival
이제 시멘트를 칠하고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각각 손에 익어가기 시작했고 지저분했던 벽도 깔끔한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나는 은근히 생각보다 신체적으로 힘들었는데 언제나 친구들과 신나는 노래를 함께 들으며 장난도 치고 춤도 추며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캠퍼들과 게임도 하며 자연스럽게 각자의 문화를 서로 교류하게 되었다. 첫 번째 주말에는 악마의 다리로 불리우는 유적지를 찾아가 피크닉을 즐겼고 동네의 승마장과 농장을 방문하며 하이킹을 했다. 그리고 마을 친구인 니콜라와 마리의 집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두 번째 주말에는 동네에서 FZM이라는 젊은이들의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니콜라와 알린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근처 Saint-etienne 시내로 놀러갔다. 프랑스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디저트도 맛보고 쇼핑도 했다. 그리고 커다란 호수에 놀러가서 물놀이도 하고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주말에는 니콜라 및 마을 친구들이 주최자로 참여하는 Apinac Festival에 1박 2일로 놀러갔다. 우리는 마을 축제 때 각국의 음식을 판매해서 벌었던 수익으로 입장료를 냈고 부족한 입장료 대신 Festival이 끝나고 봉사를 하기로 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텐트에 각자의 침낭을 풀고 본격적으로 Festival을 즐겼다. 서커스 공연과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무대 등 역시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러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큰 무대에서 음악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은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보통 밴드들의 공연이 주를 이뤘는데 모던락으로 시작해 스카, 하드락, 헤비메탈, 레게, 디제잉으로 마무리됐다. 공연 중간 중간에 크레페나 뱅쇼(따뜻한 와인)을 사먹으며 허기를 채우며 우리는 신나게 뛰놀고 부대끼어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밤에는 큰 일교차로 너무너무 추워서 살기 위해 춤을 췄지만 마을 친구들이 준비한 축제를 우리가 함께 즐기러 온 것에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한국에서도 Festival을 즐겨다니는데 프랑스의 Festival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정말 행운이였다. 공연이 끝나고도 새벽 늦게까지 텐트 안에서 옹기종기 누워 "Fucking cold!"를 외치며 가까스로 잠이 들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아쉬움에 동이 틀 때까지, Last all day long party!
드디어 벽에 세계 지도를 박아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일은 끝났다. 마을 친구들 몇몇이 우리의 완성된 벽을 보러 놀러왔고 멋지다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함께 마을의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일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어느덧 워크캠프도 끝나가고 있었고 캠퍼 및 마을 친구들과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마을에 왔을 때 우리를 환영해줬던 마을 관리자분들이 우리에게 보물찾기를 통해 작은 선물도 주고 케잌과 와인도 직접 전달해주며 감사와 아쉬움을 전했다. 우리는 사실 매일 밤마다 동네 친구들과 파티 아닌 파티를 했기 때문에 전날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나는 전부터 한국에서 가져온 엽서에 적은 편지를 우리 캠퍼들 뿐만 아니라 친하고 고마웠던 마을 친구들에게도 나눠줬다. 그들은 너무나 고마워하며 나를 꼭 안아주고 몇 번이고 볼에 뽀뽀를 하며 감동을 표시했다. 역시나 마을 친구들도 우리를 위해 음향기기와 맥주 바를 설치하며 파티를 마련했고 각자 작은 선물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캠퍼들과 마을 친구들이 서로 서로에게 편지를 써주며 역시나 음악과 함께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밤은 깊어졌고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하며 마을 친구들과 먼저 한명씩 헤어짐을 맞이했다. 어떤 친구는 나를 꼭 안으며 우리와 보냈던 시간을 잊지 못할 거라며 언제든지 Saint marcellin en fohez에 놀러오라고 했다. 특히나 내가 좋아했던 레티시아는 나에게 한국에 가지말고 여기에 살라며 얘기했고 나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 눈물이 났다. 그렇게 점점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고 아쉬움에 가득 찬 마지막 파티는 끝날 줄을 몰랐다. 내일 우리를 역까지 데려다 주어야하는 리더와 몇몇 캠퍼들은 잠을 청하러 갔고 니콜라를 포함한 마을 친구들 4명과 우리 캠퍼들 4명만 남았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라 더 이상 우리 숙소에서 시끄럽게 할 수는 없어 마을 친구들의 제안으로 공원으로 가서 계속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파티를 이어갔다. 어느새 해가 슬며시 뜨며 날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쉬움에 파티를 끝낼 줄 몰랐다. 그렇게 압둘이 가장 먼저 마을을 떠나야 할 때가 오자 까불거리기만 하던 마을 친구가 눈물을 보였다. 우리는 아침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숙소의 테이블에 과자와 쪽지가 있었다. 어제 일찍 집으로 돌아간 마을 친구가 우리에게 마지막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아침에 일하러 가기 전에 선물을 두고 간 것이었다. 그리고 함께 아침까지 놀았던 마을 친구들은 함께 숙소로 돌아와 꾸벅 꾸벅 졸면서도 우리가 갈 때까지 배웅을 해줬다. 역시나 3주 동안 내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던 캠퍼들과도 한명씩 포옹과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니 참았던 눈물이 또 터져 나왔다. 나는 역으로 향하는 내내 캠퍼들과 마을 친구들의 헤어짐이 슬프고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너무나 예쁘고 고마워 한참이나 눈물을 쏟아냈다. 그 날의 유난히 눈부시던 Saint marcellin en fohez의 마지막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고마웠던 시간을 보냈던 Saint marcellin en fohez와 그 곳의 친구들 그리고 우리 캠퍼들은 나에게 언제까지나 결코 잊을 수 없을 선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