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영국에서 찾은 진짜 나
TRYTHALL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에게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다.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꼭 모든 대륙을 둘러보고 가야지'라는 막연한 목표. 그래서 방학마다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여행을 다녔고 2013학년도 봄 학기 나의 3학년 1학기에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었다. 그리고 졸업을 1년 앞둔 시점. 이제는 유럽을 다녀 와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유럽을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기는 싫었다. 랜드마크를 찍고 그 도시의 정취를 느껴 볼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으로 유럽을 다녀오기는 싫었다. 그래서 생각 해 내었던 것이 '워크캠프'였다. 이미 한 학기 휴학을 한 학기 했던 터라 또 한 학기를 휴학 해 가며 인턴을 하기는 부담스러웠고 또 그렇다고 교환학생을 갔다오기는 유럽에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없었기에 2주동안 짧고 굵게 그 지역의 문화를 배우는 워크캠프는 나에게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 '봉사활동'아닌가. 문화교류와 더불어 누군가를 돕는일이라니. 나에게는 그것만큼 매력적인 활동이 없었다.
그런데 학기중에 워크캠프를 신청하려니 제대로 알아 볼 틈도 없었다. 수 많은 나라 중에 어딜 가야할지 어떤 프로그램이 좋을지 아는 것 도 없고 알아볼 여력도 없었기에 그냥 영어를 쓰는 국가인 영국으로 정했다. 그래서 영국만 2개를 지원했는데 그 중에 Trythall preschool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합격이 된거다. 그리고 영국으로 출국 하기 전 까지 기말고사 준비와 활동하던 경영학회 업무에 쫒겨 제대로 준비할 틈도 없었다. '될대로 되겠지' 그 생각밖에 안났다. 심지어 영국에 도착해서 Information Sheet를 제대로 읽어 볼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워크 캠프에대한 어떤 기대도 없었다. 오히려 워크캠프 후에 하게 될 유럽여행이 더 기대됐었던 것 같다. 그 땐 몰랐겠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간 워크캠프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될줄은 말이다.
그런데 학기중에 워크캠프를 신청하려니 제대로 알아 볼 틈도 없었다. 수 많은 나라 중에 어딜 가야할지 어떤 프로그램이 좋을지 아는 것 도 없고 알아볼 여력도 없었기에 그냥 영어를 쓰는 국가인 영국으로 정했다. 그래서 영국만 2개를 지원했는데 그 중에 Trythall preschool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합격이 된거다. 그리고 영국으로 출국 하기 전 까지 기말고사 준비와 활동하던 경영학회 업무에 쫒겨 제대로 준비할 틈도 없었다. '될대로 되겠지' 그 생각밖에 안났다. 심지어 영국에 도착해서 Information Sheet를 제대로 읽어 볼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워크 캠프에대한 어떤 기대도 없었다. 오히려 워크캠프 후에 하게 될 유럽여행이 더 기대됐었던 것 같다. 그 땐 몰랐겠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간 워크캠프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될줄은 말이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처음 워크캠프 장소에 도착 했었을 때는 깜짝 놀랐었다. 심지어 도착한 몇일 동안은 그 환경에 적응을 못해서 소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침대는 커녕 정말 말 그대로 학교 강당에서 침낭을 깔고 모여 자야 했었고-남녀 구분따윈 없었다- 샤워는 이틀에 한 번, 마을에 있는 집의 욕실을 빌려 사용해야 했으며 핸드폰은 와이파이는 커녕 signal조차 잡히지 않았다. 모든것이 낯설었고 모든것이 생소했다. 나는 그곳의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내가 왜 온거지?' 한 3일동안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아닌가. 서서히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할 때 불편한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못생긴 장화를 신기 시작했고 피부가 까맣게 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나였지만 땡볓에서 삽질을 해야 할 때는 모든것을 체념하고 태양빛에 내 몸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망치질은 더이상 남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돌을 깨고 나르고 풀밭의 잡초를 캐고 있었다.
그렇게 변한 나는 모든것을 감사해 하기 시작했다. 변한 나의 모습이 신기했고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 비록 와이파이도, 핸드폰도, 한국의 친구들도, 가족들도 없는 낯선 땅의 나였지만 나는 그 어느때 보다 행복했다. 내가 행복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낯선 땅의 나는 더이상 한국인 정민정이 아닌, 여자 정민정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였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의 나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내가 될 수 있었 던 것 같다. 그래서 행복했다. Conwall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나가면 나오던 드넓은 바다도 좋았고 밤마다 쏟아질 듯 빛나던 별들도 좋았다. 우리를 가족과 같이 챙겨주던 교장선생님도 좋았다. 그런데 가장 좋았던 것은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다. "Be yourself, not Asian, not Western" 친구에게 들었던 말 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말이다. 우리가 친구가 되는 것에서 인종은, 국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나 '정민정'이고 친구들도 European도 Canadian도, Asian도 아닌 그냥 그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우리는 2주동안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숨김이 없고 꾸밈이 없는 친구 사이에서 나는 그 어느때 보다 내 자신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다. 깨끗한 마을도 좋았고 아름다운 풍경, 추억도 좋았다. 그런데 함께 한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어떤 것도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친구들이 무척 보고싶다.
그렇게 변한 나는 모든것을 감사해 하기 시작했다. 변한 나의 모습이 신기했고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 비록 와이파이도, 핸드폰도, 한국의 친구들도, 가족들도 없는 낯선 땅의 나였지만 나는 그 어느때 보다 행복했다. 내가 행복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낯선 땅의 나는 더이상 한국인 정민정이 아닌, 여자 정민정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였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의 나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내가 될 수 있었 던 것 같다. 그래서 행복했다. Conwall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나가면 나오던 드넓은 바다도 좋았고 밤마다 쏟아질 듯 빛나던 별들도 좋았다. 우리를 가족과 같이 챙겨주던 교장선생님도 좋았다. 그런데 가장 좋았던 것은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다. "Be yourself, not Asian, not Western" 친구에게 들었던 말 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말이다. 우리가 친구가 되는 것에서 인종은, 국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나 '정민정'이고 친구들도 European도 Canadian도, Asian도 아닌 그냥 그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우리는 2주동안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숨김이 없고 꾸밈이 없는 친구 사이에서 나는 그 어느때 보다 내 자신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다. 깨끗한 마을도 좋았고 아름다운 풍경, 추억도 좋았다. 그런데 함께 한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어떤 것도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친구들이 무척 보고싶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워크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을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다시 몇 명 만났다. 영국 런던에서 벨기에에서, 스페인에서...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들과 또 다른 추억을 쌓은 것 같다. 사실 유럽으로 가기 전에 워크캠프는 부수적인 일정이고 유럽여행이 나의 주 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반대였다. 나의 유럽 여행에서 워크캠프가 Core였었고 유럽여행은 그저 뒤따라오는 일정에 불과했다. 사실 먼저 워크캠프를 한 탓에 체력을 다 소진한 바람에 여행을 즐길 여력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워크캠프를 통해서 유럽을 더 많이 배웠다는 이유가 컸다. 사람마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나는 여행을 할 때 그 지역의 문화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 배우기 위해서 떠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지역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인데 사실 혼자서 여행 하면서 일정에 쫓기다 보면 현지인들과 대화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혼자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워크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공유 할 수 있었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점에 대해 열띈 토론아닌 토론을 벌이곤 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토론들은 그 어떤 관광지 보다 값졌고 그 어떤 기념품 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이었다.
Souvenir은 프랑스 어로 '기억, 추억'이라는 뜻이라고 벨기에 출시 친구였던 Hugo가 말해줬었다. French speaker였던 그는 언제나 프랑스어로 된 단어를 가르쳐 주곤했었다. 어쨌든 미국에서는 기념품이라는 뜻의 Souvenir. 나에게 가장 소중한 기념품은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추억과 기억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준 기념품은 그 어느것 보다 값지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Priceless) 선물을 준 친구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준 그들이었고 또 내가 원하는 꿈을 향해 돌진 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게 해 준 그들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어느 날 밤. 별처럼 반짝이던 수많은 별들과 그리고 그아래의 친구들과 나. 맥주한잔에 웃을 수 있던 그 순간도 그립지만 더 그리운건 획일화된 사회에 물들어 가던 나에게 일침을 가하던 그들의 쓴소리다. "Just Be yourself"
Souvenir은 프랑스 어로 '기억, 추억'이라는 뜻이라고 벨기에 출시 친구였던 Hugo가 말해줬었다. French speaker였던 그는 언제나 프랑스어로 된 단어를 가르쳐 주곤했었다. 어쨌든 미국에서는 기념품이라는 뜻의 Souvenir. 나에게 가장 소중한 기념품은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추억과 기억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준 기념품은 그 어느것 보다 값지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Priceless) 선물을 준 친구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준 그들이었고 또 내가 원하는 꿈을 향해 돌진 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게 해 준 그들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어느 날 밤. 별처럼 반짝이던 수많은 별들과 그리고 그아래의 친구들과 나. 맥주한잔에 웃을 수 있던 그 순간도 그립지만 더 그리운건 획일화된 사회에 물들어 가던 나에게 일침을 가하던 그들의 쓴소리다. "Just B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