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밋밋한 일상 탈출, 숲에서 찾은 특별한 경험

작성자 김대호
프랑스 JR14/303 · ENVI/RENO 2014. 08 - 2014. 09 Mid pyrene, Durban-sur-arize

MILLE PATTES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4학년 27살, 취업을 앞두고 그동안의 밋밋했던 대학생활에서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지원하는 워크캠프 모집 공고에 지원! 다행히도..? 앞에 몇분이 취소를 한 덕에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참가 전 준비는 인포짓과 사전교육 그리고 워크캠프100배 즐기기 카페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짐 싸기의 핵심은 필요한 물품만을 챙겨 최대한 무게를 줄이는 것인데, 이는 위에 언급한 곳이나 사전에 캠프리더에게 연락하여 현지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얻어 준비한다.(현지날씨 낮밤 기온차나 봉사활동에 필요한 물품들 또는 캠핑을한다면 필요한 물품등등)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크캠프 시작일은 8.18일 그동안 인턴하랴 공모전 준비하랴 바쁜 여름방학을 보내고 하루일찍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나는 해외여행이 처음이다. 평소 여행다니는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해외여행은 남의 일 처럼 생각해오던 나였는데... 이런 내가 유럽에 가다니!? 파리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하고 외국땅에 발디디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만 했다.
한인민박에서 하루를 묵으며 여러가지 유럽에 관한 정보를 얻고 당일날 아침 오스텔리츠 역에서 툴루즈행 기차를 탔다. 툴루즈 까지는 무리없이 갔으나 목적지인 FOIX까지 가는데는 애를 먹었다. '포익스' 어떻게 가냐고 물어봐도 사람들은 묵묵부답, 결국 인포메이션에서 안 사실이지만 FOIX는 불어로 '포화'로 발음된다는 사실... 우여곡절 끝에 티켓을 구하고 몇번 플랫폼 찾기에서 버벅거린후 FOIX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캠프기간동안 우리를 이끌어줄 Millet Pattes 멤버들이 우리를 마중나와 있었고 Workcamp? ok?의 라는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우리는 캠프장소인 Durban-sur-Arize로 향했다. 캠프장소인 Durban-sur-Arize는 FOIX에서 차타고 30분정도 가면 나오는 마을로 피레네 산맥에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우리는 야영지까지 20여분을 또 산을 탓다. 드디어 도착한 야영지.. 야생에서의 생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야영지 곳곳에는 한국 봉사자들이 다녀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태극문양 부채, 한국지도,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저장고 등... 이중 가장 내 이목을 끈것은 아영지 입구쪽에 있는 게시판 이었다. 여러나라 말들이 적힌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숲에서 살아남았다' 라는 문구, 이걸보니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이 날 기다리는 듯 했다. 도착했을때 이미 저녁시간이라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우리는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일어서서 자기소개라도 시킬줄 알았으나 그런건 없었고 리더가 앞으로의 일정이나 이곳 정보에 관해 설명해주고 그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게임을 하였는데, 이는 처음사람이 본인의 이름을 말하고 이어 본인이름과 비슷한 단어(아무거라도 좋다)를 말한후 다음사람도 똑같은 방식인데 본인것만 말하는 것이아니라 시작은 항상 첫번째사람부터 해서 누적시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영어가 짧고 피곤한탓에 집중하기 힘들어 룰을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가, 내 차례가 오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때 프랑스 친구 사비에가 도움을 주었다. "대호, 대우??" 처음에 뭔소리지 했다가, 아.. 대우! 우리나라 기업 대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외국친구가 우리나라에서도 잊혀져 가는 기업을 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이후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는 2명씩 남자는 3명이 한 텐트에... 어찌어찌 밤을 보내고 본격적인 캠프 첫날이 밝았다. 간단히 우리 캠프에 대해 말하자면 참가자는 총 9명으로 국적은 프랑스2, 터키2, 일본2, 폴란드1, 독일1, 한국1 이었다. 우리의 미션은 중세시대때 만들어진 성의 돌담을 복구하고 주변정리 하는 일인데 돌담에 돌을 떼어내 안에 있는 흙이나 불필요한 식물을 정리한 후 깨끗이 씻고 시멘트를 발라 다시 쌓는 일이었다. 작업시간은 평일 오전9시부터 오후 12시나 1시까지 이고 주말은 자유시간 이었다. 식사당번은 두명씩 짝을 지어 하며 3주간 총 5번정도 하기로 했다.(식사당번은 당일 작업 면제!) 첫날 부터 날씨는 흐렸고 그주 내내 간헐적으로 비도와서 8월달임에도 불구하고 꽤 추웠다. 하지만 작업을 못할정도는 아니여서 스톤 클리닝 작업을 진행했다. 성비가 여자6 남자3인지라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빡센 삽질이나 곡괭이 질이 필요한 바닥작업을 하고 여자들은 돌담에 먼지나 이끼제거하는 일을 했다. 일의 난이도는 못할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은... 여자들은 힘들다고 느꼈을것 같다. Millet Pattes의 멤버들이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꽤 고생했을듯 싶다. 사실 일은 그렇게 힘든게 아니었다, 더 힘든것은 생활! 전기도 없고 물은 한정되 있다. 평소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던 일상적인 것들이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온수 샤워를 하려면 팩에 물을 담아 햇볕에 데워야 하는... 잠자리는 군대 이후 오랜만에 야외 취침인지라 자고나면 항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처음 이삼일정도는 내가 왜 이런고생을 사서 하는가? 란 생각에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우리가 간 그주에는 목요일부터 마을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마을로 내려가 축제를 즐겼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의 넉넉한 인심 덕에 이곳의 전통 음식이나 전통주, 와인을 마음껏 맛볼 수 있었고, 그들의 축제나 생활양식, 문화를 조금이나마 보고,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일반여행을 와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뜻 깊은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한주를 보내고 다음주에는 우리가 마을사람들을 캠프에 초대하는 인터네셔널 파티를 열었다. 캠프 참가자들이 각국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에게 대접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우리는 손수 각 나라 인사말이 담긴 포스터를 제작해 마을사람들에게 홍보까지 하였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던 나는 뭘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고민하다 검증된 코리안푸드인 불고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사전에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는 얼마 남지 않았던 탓에, 현지에서 구한 간장(소이소스)와 미리준비해간 MSG(다시다)...를 조합해 환상의 소스를 만들었다. 여기에 마늘과 파같은 원래의 재료 뿐만 아니라 와인이나 과일즙 같은 추가적인 재료를 넣고 고기를 숙성시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준비시간 까지 3~4시간? 공들인 불고기가 완성되었고 맛을 본 동료 사비에에게 oh Fucking Good! 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은 뒤 나는 불고기의 성공을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메뉴들도 인기가 많았지만, 인터네셔널 파티에서 최고인기메뉴는 역시 불고기였고 몇몇 마을사람들은 고맙다며 나한테 찾아오기 까지 했다. 참 보람있는 순간이었다!(MSG의 힘이 컷다...) 또한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음식을 가지고 오기도 했는데, 그 중 수제로만든 체리파이와 화이트와인 까르비네 쇼비뇽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간소스의 돼지등갈비찜? 은 정말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먹방을 하며 한주를 보내고 어느덧 마지막 주가 되었다. 벗어나고만 싶던 이곳은 우리의 일상과 분리되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고, 어느덧 완벽히 적응하여 친해진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애틋하고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캠프종료 하루전인 금요일! 그날은 작업도 제끼고 워크캠프의 대미를 장식할 카뉴잉을 하러갔다. 카뉴잉은 카누를 타는게아니라...(난 도착하기 직전까지 카누인줄 알았다) 자연에 있는 계곡이나 폭포를 줄이나 안전장치를 연결하여 사람의 힘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계곡 어드벤쳐라고나 할까? 피도 잘 안통하는 쫄쫄이 배씽수트를 입고 전문가 아저씨의 리딩하에 자연그대로의 계곡을 줄을 이용하거나 고리를 잡고 혹은 그대로 미끄럼틀 타서! 매우 재미있게 내려왔다. 이때 유일하게 나만 수영을 못하는 지라 고생을 좀하였지만 동료들의 도움덕에 잘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할 만 했으나 마지막 관문인 약 50m? 폭포를 내려 오는 것은 쉽지않았다. 말이 오십미터지 위에서보면 하.. 답이 안나왔다. 원래 높은거 좀 무서워하는데 그냥 위에 있는것도 아니고 줄을 타고 50m를 내려와야한다. 아무리 안전장치가 있다해도 좀... 하지만 여자애들도 방긋방긋 웃으며 먼저 내려가는데 어찌 못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꽤 무서웠지만 최대한 빨리! 벽만보고! 순식간에 내려왔다. 10m쯤 남아서 밍기적되니 먼저 내려와 있던 동료들이 '알레 대호!' 하며 응원해주었다. 밑에 도착하고 동료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니 나보다 어린친구들이지만 참 의지되고 든든함을 느꼈다... 더불어 해냈다는 성취감도 플러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내가한 카누잉과 정글의법칙에서 유이한거랑 좀 비슷한것 같았다.) 카누잉을 마치고 우리는 밤 10시까지의 대대적인? 식사준비 끝에 다양한 음식들을 마련하고 밤새 술마시고 얘기하며 아쉬운 마지막밤을 보냈다.
떠나는 날은 의외로 담담했다. 나는 곧있을 바르셀로나로의 여행생각에 머리가 복잡했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툴루즈에서 몇일 놀기로 하였기에 슬픈 작별의 분위기 같은 것은 없이 전부 시원섭섭한듯 했다. 하지만 캠프를 떠나기전 우리가 머물렀던 이곳저곳을 사진 찍으며 왠지 모를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우리가 자던 야영지, 밥 먹고 떠들던 식탁, 하루라도 조용한적이 없었던 부엌 그리고 따뜻한 난로가 있는 아늑한 쇼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밤새 카드게임 했던 통나무집 까지... 지금 떠나면 여기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란 생각에 무척 아쉬웠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캠프를 벗어나 정들었던 Millet Pattes 멤버 에릭형, 제프형, 잭형등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내가 허리를 굽혀 몇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니 그걸 또 계속 따라하는 형들을 보며 아쉬운 감정을 약간이나마 날릴 수 있었다.
포화역에서 그리고 툴루즈에서 아이들과 차례로 헤어질때 그때서야 이별이 실감났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서로를 보며 인사하던 그 때 3주라는 짧은시간에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참 많이 정이 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쉽지만 앞으로 서로 연락하기로 하며 내 생애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던 워크캠프가 끝이 났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힌다, 외국인들과 교류를 통해 글로벌마인드를 익힌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다. 해외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목적일 것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취업에 필요한 스펙쌓기의 하나로써 워크캠프를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가기전에는 다녀온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부분에 대해선 '뭐 해외 다녀와봤자 별거 있겠어? 혹은 '고작 한달정도인데 특별히 배우는게 있겠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활하며 그리고 다녀와서 느낀점은 적어도 해외 워크캠프는 단순 스펙쌓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짧은시간이지만 외국에 나가 한국사람 하나도 없이 외국친구들과 몇 주간 일하고 생활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우리나라에만 한정되어 있던 우물안 개구리 같았던 시야가 넓어지며 나 스스로 발전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외국친구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접하며 다양성을 배우고 말로만 듣던 글로벌마인드에 대해 몸소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에 의사소통에 필요한 영어 실력 향상은 덤으로 얻게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의미있는 것을 깨닫았는데, 그건 바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자부심 이다. 내가 식사당번때 외국친구들에게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같은 조미료를 활용해 우리나라 스타일 음식을 만들어주면 너무나 좋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 음식이 그 독특한 풍미때문에 외국사람들의 입맛이 맞지 않을거란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적어도 내가 겪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간장, 고추장 소스로 만든 모든 음식들을 무척 좋아했다.(심지어 빵에다 고추장을 발라먹을 정도)내 생각에는 유럽인들의 입맛에만 맞다면 몸에좋은 웰빙, 슬로우푸드를 선호하는 그들의 특성상 한국음식은 그들이 선호할만한 조건에 완벽히 부합한다. 그러나 유럽에는 이러한 음식을 맛보기도 식재료를 구하기도 힘들다. 유럽에 활발히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 음식점이나 식품회사가 없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다.
그리고 외국 친구들은 우리나라 노래나 영화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았다. 일본친구들은 말할것도 없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영화, 드라마를 한번씩 접해본 경험이 있었고 인상깊게 보아 줄거리까지 나에게 설명할 정도였다. 특히 싸이나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K-POP 같은 경우, 노래뿐만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한 대단한 무대라고 정말 대단하고 멋있다고 하여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할 정도였다. 이 밖에 젓가락문화와 그 유용성, 태극문양이나 그 외 한국전통문양에 대해 아름답다는 칭찬, 한글의 우수성(특히 한글 모양 디자인이 멋있다는 말이 많았다.) 등등 이토록 외국사람들은 한국문화에 대해 신기해하고 좋아하고 가치를 인정하였다. 이렇게 우수한 우리것을 혹시 나는(혹은 우리나라사람들은) 이제껏 너무나 당연시 하거나 아니면 옛날것이라고 하찮게 보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반성하게 되는 기회였다. 그리고 우리것을 잘 보존하는 일에, 나아가 해외에도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 앞으로 물심양면으로 힘써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