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불어, 영어, 마음으로 통하다
CHOUPP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워크캠프를 재밌게 다녀온 지인들의 추천으로 신청하게 되었고 가장 기간이 긴 프로그램을 찾아 신청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현지 문화를 깊이 체험하고 싶었고, 그 기간동안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개인 여행과 준비를 같이 했기 때문에 사소한 물품들을 전부 챙겨갔다.
비상약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한국음식을 할 기회가 있을것 같아 고추장과, 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소주 등을 챙겨서 출국했다.
워크캠프 전,후로 여행일정이 있어서 해외에서 인포싯을 받았다.
준비물로 되어있던 침낭은 긴 여행 일정으로 준비 할 수 없었고, 만약을 대비해서 캠핑용 얇은 이불을 준비해갔었다. (9월일정이라 실내취침을 하는 워크캠프로 골라 신청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9월의 프랑스는 생각보다 추워서 결국 마을주민들이 빌려주신 두꺼운 이불로 생활했다. 매트리스만 제공되었기 때문에 유용하게 썼다. 그리고 공기 주입식 쿠션을 가지고 갔다. 개인 여행중에는 이동시 베개로 사용하였고 워크캠프 기간에도 공기를 주입하여 베개로 사용했다.
준비해간 김은 내가 식사당번일때에 반찬으로 내었는데 외국 친구들이 생각외로 굉장히 좋아했다. 남은 한봉지는 유난히 김을 좋아하고 잘 먹던 러시아 친구에게 선물했다.
고추장은 International meal의 날에 비빔밥을 만들때, 고추장 파스타를 만들때 사용했다. 맵지만 맛있다며 반응은 좋았지만 매운걸 못먹는 스페인,독일 친구는 힘들어했었다.
개인 여행과 준비를 같이 했기 때문에 사소한 물품들을 전부 챙겨갔다.
비상약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한국음식을 할 기회가 있을것 같아 고추장과, 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소주 등을 챙겨서 출국했다.
워크캠프 전,후로 여행일정이 있어서 해외에서 인포싯을 받았다.
준비물로 되어있던 침낭은 긴 여행 일정으로 준비 할 수 없었고, 만약을 대비해서 캠핑용 얇은 이불을 준비해갔었다. (9월일정이라 실내취침을 하는 워크캠프로 골라 신청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9월의 프랑스는 생각보다 추워서 결국 마을주민들이 빌려주신 두꺼운 이불로 생활했다. 매트리스만 제공되었기 때문에 유용하게 썼다. 그리고 공기 주입식 쿠션을 가지고 갔다. 개인 여행중에는 이동시 베개로 사용하였고 워크캠프 기간에도 공기를 주입하여 베개로 사용했다.
준비해간 김은 내가 식사당번일때에 반찬으로 내었는데 외국 친구들이 생각외로 굉장히 좋아했다. 남은 한봉지는 유난히 김을 좋아하고 잘 먹던 러시아 친구에게 선물했다.
고추장은 International meal의 날에 비빔밥을 만들때, 고추장 파스타를 만들때 사용했다. 맵지만 맛있다며 반응은 좋았지만 매운걸 못먹는 스페인,독일 친구는 힘들어했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로 갈수있는 POITIERS.
그곳에서도 버스로 한시간이 넘게 들어가야 있는 시골마을 CHOUPPES.
이제 나에게 CHOUPPES은 주민들을 만나러 꼭 다시가고 싶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나는 3주간 너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며, 총 2달이었던 전체 개인 여행중에서도 Chouppes을 최고로 뽑겠다.
프랑스 파리에서 느꼈던 불친절함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너무도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 뿐이었고 주민들은 불어, 참가자들 대부분은 영어만 할 수 있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참가자들이 마치 조카,사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도 잘 대해주었다.
시장인 매누아를 시작으로, 마가리,돌핀,오헤리안,마틸드,마틸드2,가비,데데,룩,장폴,캐롤,미하일,미셸,줄리안, 등등 한명 한명 마을 주민들을 알고 친해질때마다 즐겁고 행복했다.
물론 불어 특유의 ㅎ을 긁는 발음이 오헤리안, 미하일 등의 이름을 부르는것을 힘들게 했지만, 그역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함께한 참가자들은 나를 포함해 총 9 명이었다.
터키2명, 스페인, 체코, 독일, 멕시코, 일본, 러시아 각 1명 이었다.
러시아 친구가 한국말을 배운 경험이 있어 첫인상때 한국어를 해서 놀라웠다.
사실 유럽 개인여행 중에는 한국말을 아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 친구덕에 기분좋게 워크캠프를 시작했다.
연령대는 18~23까지로 비슷했고, 리더는 28살이었다. 모두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들은 영어로 소통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불어를 사용해서 리더인 스페인친구와, 체코친구가 불어와 영어를 통역해줬다.
불어 단어를 배우거나, 좋은아침, 잘먹겠습니다 등 인사를 할때마다 각국의 언어를 한번씩 물어, 따라하곤 했는데 참 재밌고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리더가 각국의 언어를 듣고 따라하는것을 좋아해서 그가 일을 갈때마다 "가자!" 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일은 룩,장폴. 두 마을 지원자와 함께 했고, 그들과 함께 기계를 사용하며 일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제거하던 나무가 가시나무라서 여기저기 긁혀 상처가 많이 났다.
긴 여정탓에 두꺼운 작업복을 챙겨가지 못한 내 책임도 있고, 나만 다친것이 아니라 다들 일하다가 조금씩 다쳤다. 이후에는 마을 주민들이 빌려준 옷을 입고 작업해서 더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여가시간은 마을사람들과 함께했었다.
마을주민 혹은 그들의 지인이 공장, 농장등을 소유하고 있어서 염소농장,와인공장,유기농 빵 공장등을 견학하였고, 옆마을 고성을 보러가고, 우리와 함께 일한 룩이 좋아하는 마상쇼도 보고, 마을사람들과 다같이 관광버스를 빌려 다른마을로 놀러도 가고 , 마틸드의 말과 룩의 당나귀도 타보고,
마을 주민 한분이 찾아오셔서 크레페를 구워주신 Crepe day,
캐롤과 미하일이 요리해서 가져다준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미하일과 마틸드의 초대로 그들의 집을 방문하여 다같이 식사도 하고, 오를리의 호수에서 소풍을 즐기고, 보트도 타고
지역 신문에도 나오고 ,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추억들을 만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소통들을 하고 돌아왔다.
마을을 떠나는 날에도 오전 7시반, 이른시간임에도 가까웠던 주민들이 모두나와 배웅해주었다. 우리의 마지막 사진도 찍고, 우리가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까지 찍어서 보내주었다. 마을 사람들을 기억해달라며 선물해준 쿠키를 받고, 한명한명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왔다. 현재는 개인여행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들에게 엽서를 쓰는중이다. '크리스마스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엽서받기'라는 소박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꼭 다시한번 가고싶은 그곳 Chouppes. 아쉬움이 가득했던 우리들은, 한달만 Chouppes에 더 있고 싶었던 우리들은, 언젠가 Chouppes에 돌아가서 그리운 그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자고 서로 약속하며 Chouppes을 떠났다.
그곳에서도 버스로 한시간이 넘게 들어가야 있는 시골마을 CHOUPPES.
이제 나에게 CHOUPPES은 주민들을 만나러 꼭 다시가고 싶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나는 3주간 너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며, 총 2달이었던 전체 개인 여행중에서도 Chouppes을 최고로 뽑겠다.
프랑스 파리에서 느꼈던 불친절함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너무도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 뿐이었고 주민들은 불어, 참가자들 대부분은 영어만 할 수 있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참가자들이 마치 조카,사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도 잘 대해주었다.
시장인 매누아를 시작으로, 마가리,돌핀,오헤리안,마틸드,마틸드2,가비,데데,룩,장폴,캐롤,미하일,미셸,줄리안, 등등 한명 한명 마을 주민들을 알고 친해질때마다 즐겁고 행복했다.
물론 불어 특유의 ㅎ을 긁는 발음이 오헤리안, 미하일 등의 이름을 부르는것을 힘들게 했지만, 그역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함께한 참가자들은 나를 포함해 총 9 명이었다.
터키2명, 스페인, 체코, 독일, 멕시코, 일본, 러시아 각 1명 이었다.
러시아 친구가 한국말을 배운 경험이 있어 첫인상때 한국어를 해서 놀라웠다.
사실 유럽 개인여행 중에는 한국말을 아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 친구덕에 기분좋게 워크캠프를 시작했다.
연령대는 18~23까지로 비슷했고, 리더는 28살이었다. 모두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들은 영어로 소통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불어를 사용해서 리더인 스페인친구와, 체코친구가 불어와 영어를 통역해줬다.
불어 단어를 배우거나, 좋은아침, 잘먹겠습니다 등 인사를 할때마다 각국의 언어를 한번씩 물어, 따라하곤 했는데 참 재밌고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리더가 각국의 언어를 듣고 따라하는것을 좋아해서 그가 일을 갈때마다 "가자!" 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일은 룩,장폴. 두 마을 지원자와 함께 했고, 그들과 함께 기계를 사용하며 일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제거하던 나무가 가시나무라서 여기저기 긁혀 상처가 많이 났다.
긴 여정탓에 두꺼운 작업복을 챙겨가지 못한 내 책임도 있고, 나만 다친것이 아니라 다들 일하다가 조금씩 다쳤다. 이후에는 마을 주민들이 빌려준 옷을 입고 작업해서 더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여가시간은 마을사람들과 함께했었다.
마을주민 혹은 그들의 지인이 공장, 농장등을 소유하고 있어서 염소농장,와인공장,유기농 빵 공장등을 견학하였고, 옆마을 고성을 보러가고, 우리와 함께 일한 룩이 좋아하는 마상쇼도 보고, 마을사람들과 다같이 관광버스를 빌려 다른마을로 놀러도 가고 , 마틸드의 말과 룩의 당나귀도 타보고,
마을 주민 한분이 찾아오셔서 크레페를 구워주신 Crepe day,
캐롤과 미하일이 요리해서 가져다준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미하일과 마틸드의 초대로 그들의 집을 방문하여 다같이 식사도 하고, 오를리의 호수에서 소풍을 즐기고, 보트도 타고
지역 신문에도 나오고 ,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추억들을 만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소통들을 하고 돌아왔다.
마을을 떠나는 날에도 오전 7시반, 이른시간임에도 가까웠던 주민들이 모두나와 배웅해주었다. 우리의 마지막 사진도 찍고, 우리가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까지 찍어서 보내주었다. 마을 사람들을 기억해달라며 선물해준 쿠키를 받고, 한명한명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왔다. 현재는 개인여행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들에게 엽서를 쓰는중이다. '크리스마스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엽서받기'라는 소박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꼭 다시한번 가고싶은 그곳 Chouppes. 아쉬움이 가득했던 우리들은, 한달만 Chouppes에 더 있고 싶었던 우리들은, 언젠가 Chouppes에 돌아가서 그리운 그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자고 서로 약속하며 Chouppes을 떠났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이전에는 외국인과 소통하고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외국인에 대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캠프 이후 그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것을 알았고, 현재까지도 캠프 참가자들과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프랑스의 시골에서,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참가자들은 마을의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철길을 산책로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예전에는 철길이었고, 더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우리가 캠프를 한 기간에는 이미 철길이 제거되어 있었고, 그자리에 나무가 자라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숲 가운데로 길을 내어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산책로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 작업을 하였다. 즉, 나무를 제거하여 길을 내었는데 이 과정에서 현지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을 자원봉사자 두분과 같이 일했다. 그들은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베어냈다. 작업을 하면서 든 생각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자연을 위해서는 옳은 방식이다'였다. 기계들을 이용하긴 하지만 , 수동적인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나무를베고, 밖으로 끌어내고 걸을때마다 나무 밑동이 발에 걸려 걷기가 힘들었다. 국내 작업이었다면 커다란 작업차로 단번에 평평하게 밀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불편하더라도 하나하나 되도록 작은 가지들만을 제거했다. 전부 다 베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공간이 되었기에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그 마을의 멋진 전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Chouppes에서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아서, 외국인을 보면 거리를 두고 피했던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내가 받은 애정과 친절만큼, 한국에 오는 그들에게도 한국이 행복한 곳으록 기억되도록 돕고싶다.
프랑스의 시골에서,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참가자들은 마을의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철길을 산책로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예전에는 철길이었고, 더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우리가 캠프를 한 기간에는 이미 철길이 제거되어 있었고, 그자리에 나무가 자라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숲 가운데로 길을 내어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산책로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 작업을 하였다. 즉, 나무를 제거하여 길을 내었는데 이 과정에서 현지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을 자원봉사자 두분과 같이 일했다. 그들은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베어냈다. 작업을 하면서 든 생각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자연을 위해서는 옳은 방식이다'였다. 기계들을 이용하긴 하지만 , 수동적인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나무를베고, 밖으로 끌어내고 걸을때마다 나무 밑동이 발에 걸려 걷기가 힘들었다. 국내 작업이었다면 커다란 작업차로 단번에 평평하게 밀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불편하더라도 하나하나 되도록 작은 가지들만을 제거했다. 전부 다 베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공간이 되었기에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그 마을의 멋진 전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Chouppes에서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아서, 외국인을 보면 거리를 두고 피했던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내가 받은 애정과 친절만큼, 한국에 오는 그들에게도 한국이 행복한 곳으록 기억되도록 돕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