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탄자니아, 사랑을 나누고 돌아오다
Cultural Exposu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호주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로 모아온 돈을 아프리카 봉사에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밥알을 남겼을 때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부모님의 교육을 이제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참가 전 준비로는 봉사자들 집합장소와 시간에 맞추어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이 가장 먼저였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지역에 대한 약간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황열병, 장티푸스, A형 간염 주사를 미리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호주여행으로 쌓은 노하우로 봉사를 위한 짐을 꾸렸습니다. 한국의 초콜릿 바, 에너지 바 등의 과자를 챙겨 아프리카 대륙을 밟고 직접 손으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봉사활동이 끝나면 세상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2012년 7월 탄자니아로 떠났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1. 탄자니아 봉사활동 스케줄 중 하나는 탄자니아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요리를 하거나 지역주민이 쓰는 옷감에 색을 입히거나 바나나 잎으로 바구니 같은 도구를 만드는 것 그리고 일회용문신인 헤나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 중 제일 기분이 좋았던 것은 요리를 만들어 봉사자들이 지역주민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2. 봉사활동 중 가장 힘들었던 지역병원 페인트칠하기입니다. 적은수의 지역병원이 있지만 그마저도 낡고 오래되어 보수관리가 필요하였는데, 거미줄 청소와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의미 있고 보람된 봉사였습니다.
3. 자유시간이 있는 날 지역학교로 봉사자들끼리 축구를 하러 갔었는데 한 반의 학생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쇠로된 창문너머로 인사를 주고받던 중 보이는 것이 한 구석에 계신 선생님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흥분된 아이들을 포기한다는 듯이 쳐다보셔서 포레사나(미안합니다)를 계속 말했습니다.
4. 고아원에 가는 날은 매일 울었습니다. 자신의 생일을 아는 아이들이 없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군인입니다. 의식주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과자들을 나누어 주며 안타까움을 달래고 여러 놀이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아기가 저를 보기만하면 웃어서 그 아이를 특히 예뻐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2. 봉사활동 중 가장 힘들었던 지역병원 페인트칠하기입니다. 적은수의 지역병원이 있지만 그마저도 낡고 오래되어 보수관리가 필요하였는데, 거미줄 청소와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의미 있고 보람된 봉사였습니다.
3. 자유시간이 있는 날 지역학교로 봉사자들끼리 축구를 하러 갔었는데 한 반의 학생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쇠로된 창문너머로 인사를 주고받던 중 보이는 것이 한 구석에 계신 선생님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흥분된 아이들을 포기한다는 듯이 쳐다보셔서 포레사나(미안합니다)를 계속 말했습니다.
4. 고아원에 가는 날은 매일 울었습니다. 자신의 생일을 아는 아이들이 없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군인입니다. 의식주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과자들을 나누어 주며 안타까움을 달래고 여러 놀이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아기가 저를 보기만하면 웃어서 그 아이를 특히 예뻐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마지막으로 고아원을 떠날 때 펑펑 울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했던 순간동안 나누었던 정과 사랑을 기억하며 봉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매일아침 동네한바퀴 같이 뛰던 아이들이 이제껏 그래왔던 봉사자가 없었는지 다음날엔 누구와 뛰느냐며 이야기할 때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고 그들도 나와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탄자니아에서의 첫 번째 봉사를 끝내고 두 번째 봉사를 시작하기까지 2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킬리만자로 정산등반과 세렝게티 국립공원투어를 하였는데 봉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현지가이드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대우가 달랐습니다. 정말 보람된 일을 하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다음 봉사활동을 준비하였습니다. 봉사하는 동안 스와힐리를 많이 배웠기 때문에 다음 봉사는 더욱 자신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