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편견을 넘어, 아시아를 다시 보다
Blora Edu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작년에 에스토니아로 첫 워크캠프를 다녀오고 느낀점이 많았습니다. 그전에는 사실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워크캠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애당초 워크캠프가 유럽에서 처음 생겨난 것이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캠프 관리가 미숙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의 히우마 섬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살다온 경험은 제가 아시안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느 때보다 확연히 깨달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누가 뭐래도 동양인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경제수준이 높은 축에 속하는 한국의 국민으로서 무언가 한국인은 일본인과 마찬가지지로 다른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었습니다. 조금 더 서구화되었고, 그래서 서양과 가까우며 세상에 보다 알려져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와 특별한 인연이랄게 없는 에스토니아 사람들과 만나면서 저에 대해, 제가 온 곳인 한국에 대해 낯설게 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지만, 지구상에 어느 곳에서는 아니 실제로는 굉장히 많은 곳에서 한국은 평생 몰라도 되는 나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뒤로 등한시했던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아시안들 사이에도 그 생김새나 문화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어찌됐든 제가 세상에 나가면 아시안으로 비춰질 것은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워크캠프를 신청할 생각을 했고, 작년에는 농장일을 해보았으니 올해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저의 또다른 성향에 맞추어 KIDS 코드로 지원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현지에서의 활동은 생각보다 잘 짜여 있었고, 굉장히 체계적이었습니다. 지방 정부와도 얘기가 잘 되었던 턱에 모든 활동에서 그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Blora'라는 작은 도시에서 2주간 생활했는데, 처음 며칠은 그 지역의 교육부(?)나 도서관 등을 방문했습니다. 특히 도서관과는 이동시 차량을 제공하거나 지역 카니발에 함께 참여하는 등 계속해서 왕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로 했던 일은 지역의 여러 학교를 방문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수업을 한 것입니다. 모든 캠퍼들이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캠퍼들의 출신 국가별로 조를 꾸려 해당 국가를 소개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가져온 물건 등을 체험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교에 가면 늘 마치 유명한 스타인 마냥 각종 먹을거리와 아이들의 공연으로 환영을 받아서 저를 비롯한 모든 캠퍼들은 황송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현지인의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알고보니 그곳은 현지 기관인 'IIWC'의 디렉터의 부모님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녀가 방문해 우리들의 토론 내용을 경청하고, 그녀 자신도 의견을 보태면서 격의없는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독립 기념일을 두고 그 이전과 당일에 캠퍼들이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디렉터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독립기념일을 다국적 캠퍼들이 꼭 경험해야 할 것 같았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좋은 캠프에 지원해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총 14명의 캠퍼를 수용하기에 집이 작지 않을지 걱정했지만,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쓰시는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캠퍼들이 모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그다지 좁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청소팀과 요리팀, 그리고 정리팀으로 나뉘어서 활동했고 보통은 요리팀이 제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오전 일과가 끝나면 요리팀은 로컬시장으로 점심용 장을 봐야 했고, 오후 일과가 끝나면 바로 요리를 준비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작년에 참여했던 에스토니아 워크캠프와 비교할 때, 올해 인도네시아 워크캠프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면 캠퍼들과 많은 정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 생각에 환경적인 요소가 큽니다. 매일매일의 스케줄이 이미 정해져서 나와있기도 했고, 인도네시아는 유럽처럼 휴대폰만 들이대도 작품이 되는 그런 곳이 아닌 관계로 멋드러지고 웅장한 풍경은 흔치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만큼 좁은 공간에서 서로 살을 부닥치며 잠을 자고, 땀 흘리며 요리를 했습니다. 그러니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보다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그래서 돌이켜 회상해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한 명의 세계인으로서, 내 밖의 세상을 향한 진정한 연대의식을 배워온 느낌입니다. 작년에도 이전에도 여러번 외국을 다녀온 이력이 있지만 그때보다 더욱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음을 트는 일에 스스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단 스케줄이 빡센데(?)다가 날씨가 워낙 뜨겁다 보니 오전 일과만 끝나면 모두가 녹초 상태로 귀가해 낮잠을 자고는 했습니다. 이처럼 체력적으로 결코 쉬운 캠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캠퍼들의 절반이 일본인으로, 그 구성이 한 국가로 상당히 치우치면서 공용어가 영어인 규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는 등 생활하는데에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일무이한 서양인으로 벨기에 친구가 있었음에도 일본인 캠퍼들이 공개적인 공간에서도 본인들끼리 일본어로만 말하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진 바가 없지 않습니다. 사실 캠프가 끝날 때까지 이에 대해 일본인 친구들에게 마음의 앙금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인도네시아에 온 만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저는 있었고, 일본인 친구들이 마치 이를 방해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운이 다소 없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런 일이 발생했기에 더더욱 사회란 어떤 곳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계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 워크캠프의 개최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저 이외에 다른 두 명의 한국인 캠퍼가 더 있는 동양인이 그 수에서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면에서는 쉽게 적응한 게 사실입니다. 한국인에게 유독 우호적인 인도네시아 현지 사람들의 성향도 한 몫 하였고요. 덕분에 저는 워크캠프의 활동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고 제 자신과 사회, 그리고 워크캠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