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땀으로 얻은 특별한 추억

작성자 이청아
아이슬란드 WF54 · ENVI/MANU 2014. 10 - 2014. 11 Eskifjordur

East of Iceland - close to natu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 여행을 꿈 꿔 왔었다. 중요 도시만 방문하는 여러 나라 여행보다는 한 나라에 오래 머무는 여행에 관심이 있어서, 한 지역에서 그 곳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워크캠프는 다른 어느 활동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갈 여력이 되지 않을 때에도, 시시때때 가고 싶은 나라의 워크캠프를 찾아보며 프로그램을 봐왔었다. 핀란드에는 여름에만 보통 워크캠프가 개설되기에, 내 여행 시기에 맞춰 비교적 프로그램이 많은 아이슬란드에서 워크캠프를 하기로 결정했다. 항상 프로그램만 읽어왔지 지원을 하는 건 처음이라 많이 허둥댔었다. 여권부터 여행루트도 워크캠프에 맞춰 준비되어야 했었다. 지원을 하고 참가 합격 소식을 듣고 나니, 드디어 가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워크캠프에 꼭 필요하다는 침낭, 장갑 등을 구비하고, 누구일지 모를 친구를 위해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며, 조금씩 워크캠프 준비를 해왔다.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궁금함도, 기대감도 커져갔다. 특히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는 워크캠프의 이점을 가장 특성화시켜 준다고 생각해왔기에 더 기대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는 물가 자체도 비쌀 분더러, 겨울에는 동부 쪽으로 쉽게 이동할 수도 없고, 시골 지역에는 숙박시설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꿔왔던 나로서는 워크캠프로 한 지역에 머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Worldwide Friends에서 제공하는 교통편도 에스키피요르드로 갈 때는 남부로, 레이캬비크로 돌아 올 때는 북부로 오는 일정이라 간단한 관광을 하기에도 좋았다. 워크캠프가 끝나고 돌아오는 날이 레이캬비크에서 아이슬란드 에어 웨이브즈라는 음악 축제가 딱 시작되는 날이라, 시기적으로도 완벽했던 워크캠프였다. 이렇게 큰 기대를 안고 워크캠프를 꿈꾸고 있었지만, 가장 큰 기대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워크캠프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그냥 여행 도중에 만나는 친구와는 달리, 같이 힘든 일을 하며 함께 얻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룹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없지 않을 거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돈독해지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약 2주 동안 우리는 아이슬란드 동부 에스키피요르드에 머물렀다. 내가 참가했던 프로그램은 육체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 워크캠프가 빡빡한 스케줄로 피로를 준건 아니었다. 5명의 적은 인원이라, 오후면 일을 끝내고 저녁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줬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일을 바꾸거나 쉴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잔디를 까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잔디가 심겨진 커다란 흙 판을 두 명씩 옮겨 바닥에 줄 맞춰 까는 일인데, 물 먹은 흙 판이 두 명이 들기에도 무거워 떨어뜨리기가 일쑤였다. 10월 말이라 아이슬란드는 날씨가 추워 묶어놓은 흙 판들이 하나로 얼었다. 두 명씩 꽝꽝 언 잔디 흙 판들을 삽이나 망치로 깨서 보도로 옮겨놓고, 한 명은 보도에 맞게 언 잔디를 작은 칼로 자르는 일을 했다. 일을 하다가 얼음 흙 판에 발을 찧어 다치는 게 다반사였고, 멍이나 생채기가 하루걸러 생기곤 했다. 요령이 없는 첫 날은 흙 판을 옮기고 온 몸에 근육통이 생겨 저녁을 만들 때 프라이 팬을 드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식사 때 칼질을 하는 것도 고난이었다. 첫 날은 내가 왜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을까, 라는 생각에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아져갔다. 두 번째 날은 어제보다는 나았고, 세 번째 날은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우리도 그렇게 적응해가는 것 같았다. 동부의 숙소는 구 학교라, 샤워시설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걸어서 30분 거리인 마을의 수영장에서 매일 샤워를 했다. 오후면 일을 마쳐, 수영장에 갔다가 돌아오면 저녁 준비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국인 3명, 프랑스인 1명, 러시아인 1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식사는 정해진 당번에 맞춰서 준비를 했는데, 한국인이 많아서 거의 매일 한 번은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음식에 대한 준비를 많이 못 해 왔는데 친구들이 있어서 힘을 합쳐 준비할 수 있어 좋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주로 게임을 했다. 준비해 간 공기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프랑스 친구가 가져 온 도블이라는 게임을 했다. 작은 그룹이라 서로 다 잘 알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워크캠프 마지막 날에 다음 봉사자들이 숙소에 왔는데 그 중 몇 몇 참가자들이랑 같이 얘기하며 게임을 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잔디를 까는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잔디는커녕 힘든 일 조차도 해본 일이 없었다. 힘든 일을 해야 할 기회가 딱히 없었을 뿐 더러, 은연 중에 힘든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신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요구한다는 이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안될 거 뭐 있겠어, 라는 생각도 있었고, 안이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은 정말 글자 그대로 신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요구했다. 처음에 워크캠프를 상상했을 땐, 봉사활동보다 국제교류에 조금 더 초점이 가있었다. 워크캠프를 하면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겠지, 친구가 될 수 있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처음 마주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워크캠프 자체가 그렇게 낭만적이고, 편의만을 제공하는 환경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하는 봉사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종사자의 핀잔을 듣고 눈치를 보며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생각보다 존중 받으며 하는 봉사활동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원 봉사자라는 개념보다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개념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처음엔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돈을 주고 하는 고생이었다. 아무리 일이 힘들다고 해도, 봉사활동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다며 불평했고,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숙소도 쥐가 돌아다니는 환경에, 샤워 시설도 없어서 씻으러 가려면 매일 1시간을 걸어야 했고, 주말 여가시간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부정적이었던 생각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고 창 밖을 바라보면, 눈 덮인 산, 아름다운 풍경이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끔씩 운전해주는 아저씨께서 해주시는 아이슬란드 음식은 정말 맛있었고, 아침에 먹는 매일 같은 빵과 커피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가야만 하는 샤워장은 추운 날씨에 따뜻한 샤워를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되었고, 쥐가 돌아다니는 것마저 우리에게 재미있는 일이 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그간 나는 사소한 불평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힘든 일 속에서도 충분히 즐길 거리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는 봉사활동도 훨씬 더 즐길 수 있었다. 워크캠프를 통해 만나게 된 친구들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수 많은 기회들도 생겨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