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네팔, 교육에서 희망을 보다
Children Development Project 2015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오래전부터 워크캠프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마침 시기가 잘 맞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고, 이 경우에는 선택의 범위가 꽤 다양해서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특히 나는 개발도상국의 교육 현장으로 가보고 싶었다. 향후 교육계에 종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2000년 유구한 역사가 피폐해지게 되었지만,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의 노력으로 인해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힘이 교육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개발도상국 역시 현실을 타개할 방책을 교육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개발도상국 교육의 현주소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 내 목표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보통의 워크캠프 프로그램은 19명 정도를 정원으로 하지만, 내가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5명 정원의 소규모 워크캠프였다. 따라서 다수의 워크캠퍼들과 생활하며 문화교류하는 측면보다는 현지인과 소통하는 부분에 더욱 초점을 둘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해외 워크캠퍼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나는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워크캠프에 참가한 사람은 한국인 둘 뿐이었다. 애초에 오기로 했던 외국인 참가자는 오기 전에 취소를 한 모양이다. 해외 워크캠퍼가 아주 없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이것도 별로 큰 문제는 못되었다.
그렇게 우리 한국인 봉사자 두 사람은 네팔 작은 산골마을의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가르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이며, 그 사이에 잠깐 페인트칠과 같은 부수적인 일도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 봉사단체와 현지인 봉사자 리더, 그리고 학교 담당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워크캠프가 끝나는 날까지 페인트칠만 해야했기 때문이다. 페인트칠이 나빴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리고 처음에 하기로 되있던 일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전혀 소통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게 안타까운 것이다. 현지인 봉사자 리더에게 이에 대한 컴플레인을 해보았지만, "이 학교가 사립학교라서 학교 교장이 많이 엄격하다, 어쩔수가 없다"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크게 낙담했다. (워크캠프가 다 끝나고 현지 봉사단체 매니저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현지인 봉사자 리더가 매니저에게 이런 문제를 보고했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야 착오를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하게 될 워크캠퍼들은 현지봉사단체 매니저와 직접 소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여, 더욱 만족스러운 워크캠프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벽화를 그리는 것은 보람되고 또 재밌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의 주된 목적은 아이들의 배움의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워크캠프가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학교 아이들 덕분이다. 우리가 빈 교실에 흰 바탕을 칠하고 벽화로 빼곡히 채우는 동안, 학교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다가와서 웃고 말걸어주었다. 나는 그것이 참 고마웠다. 처음에는 수줍게 인사하고 이름을 묻는 정도의 대화 밖에 하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꽤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물론 벽화를 칠하면서.) 그렇게 먼저 다가와준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이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물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관심이 나를 힘나게 해주었다.
이렇게 네팔에 있는 내내 내게 즐거움과 위로운 준것은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고, 낯선 인방인이 나에게 언제나 친절했다. 말 그대로 발디딜곳 없던 만원 버스안에서 자리를 양보해준 한 '여인',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었던 카페 직원, 막차를 놓친 우리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택시를 타도록 도와준 버스기사아저씨 등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여행지의 편리한 문명보다 그 나라 현지인들의 살가운 정이 여행자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한국인 봉사자 두 사람은 네팔 작은 산골마을의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가르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이며, 그 사이에 잠깐 페인트칠과 같은 부수적인 일도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 봉사단체와 현지인 봉사자 리더, 그리고 학교 담당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워크캠프가 끝나는 날까지 페인트칠만 해야했기 때문이다. 페인트칠이 나빴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리고 처음에 하기로 되있던 일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전혀 소통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게 안타까운 것이다. 현지인 봉사자 리더에게 이에 대한 컴플레인을 해보았지만, "이 학교가 사립학교라서 학교 교장이 많이 엄격하다, 어쩔수가 없다"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크게 낙담했다. (워크캠프가 다 끝나고 현지 봉사단체 매니저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현지인 봉사자 리더가 매니저에게 이런 문제를 보고했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야 착오를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하게 될 워크캠퍼들은 현지봉사단체 매니저와 직접 소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여, 더욱 만족스러운 워크캠프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벽화를 그리는 것은 보람되고 또 재밌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의 주된 목적은 아이들의 배움의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워크캠프가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학교 아이들 덕분이다. 우리가 빈 교실에 흰 바탕을 칠하고 벽화로 빼곡히 채우는 동안, 학교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다가와서 웃고 말걸어주었다. 나는 그것이 참 고마웠다. 처음에는 수줍게 인사하고 이름을 묻는 정도의 대화 밖에 하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꽤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물론 벽화를 칠하면서.) 그렇게 먼저 다가와준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이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물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관심이 나를 힘나게 해주었다.
이렇게 네팔에 있는 내내 내게 즐거움과 위로운 준것은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고, 낯선 인방인이 나에게 언제나 친절했다. 말 그대로 발디딜곳 없던 만원 버스안에서 자리를 양보해준 한 '여인',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었던 카페 직원, 막차를 놓친 우리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택시를 타도록 도와준 버스기사아저씨 등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여행지의 편리한 문명보다 그 나라 현지인들의 살가운 정이 여행자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물론 모든 일에 명암이 있듯이, 네팔 현지의 생활이 전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위생관념이나 교통안전에 대한 의식같은 부분은 상당히 미약하다. 어떤 부분들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를 가든지, 자국을 떠난 타국에서 어려운 점을 만나는 건 통과의례와 같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꿈꾸는 분들에게 나는 '일단 와보라'고 말하고 싶다. 노동하는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고, 그런 와중에도 여유로운 네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