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영국 워크캠프, 맛없는 음식과의 사투
GREEN EARTH AWAKENING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Hello, my name is DIO]
워크캠프가 있기 전 MALTA라는 나라에서 영어공부를 하며 느낀건데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름이 어지간히 어려웠던 모양이다. 자꾸만 켱선/캉썬/캥썬 등 희한한 발음들로 부르는가 하면
잘 기억하지 못해서 항상 이름을 다시 알려주고 하는 일들이 반복
워크캠프가 있기 전 MALTA라는 나라에서 영어공부를 하며 느낀건데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름이 어지간히 어려웠던 모양이다. 자꾸만 켱선/캉썬/캥썬 등 희한한 발음들로 부르는가 하면
잘 기억하지 못해서 항상 이름을 다시 알려주고 하는 일들이 반복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영국에가면 OOO OO을 조심하세요]
로마에 있을 때였다. 동행들과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 영국을 먼저
다녀온 사람이 있길래 물어봤다.
“영국에선 뭘 조심해야되죠?”
“어… 영국에 가면요…. 맛없는 음식 조심하세요.”
“…….”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기도 하단다. 그리고 난 워크캠프 첫날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정말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정성들여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밤에
텐트에서 덜덜 떨며 잠이드는 순간보다 다음 날 아침의 공포가 더 끔찍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3일… 적응하는데 딱 3일 걸렸다.
그 이후부터는 누워도 배를 언덕으로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엔 챙겨간 고추장과 보크라이
스의 위력이 곁들여지긴 했었지만 3일이 지나고 나니 그 마저도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GREEN AWAKENING FEST"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기는 단 한점도 주어지지 않았다.
당근, 토마토, 감자, 사과, 바나나 등 평소에 즐기지 않던 건강식품들이 즐비했다. 재료
만 떠올려보니 그리 맛없을 것도 없는데… 역시 문화가 다른가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영국이란 곳을 알차게 경험한 것 같아 뿌듯하다.
로마에 있을 때였다. 동행들과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 영국을 먼저
다녀온 사람이 있길래 물어봤다.
“영국에선 뭘 조심해야되죠?”
“어… 영국에 가면요…. 맛없는 음식 조심하세요.”
“…….”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기도 하단다. 그리고 난 워크캠프 첫날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정말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정성들여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밤에
텐트에서 덜덜 떨며 잠이드는 순간보다 다음 날 아침의 공포가 더 끔찍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3일… 적응하는데 딱 3일 걸렸다.
그 이후부터는 누워도 배를 언덕으로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엔 챙겨간 고추장과 보크라이
스의 위력이 곁들여지긴 했었지만 3일이 지나고 나니 그 마저도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GREEN AWAKENING FEST"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기는 단 한점도 주어지지 않았다.
당근, 토마토, 감자, 사과, 바나나 등 평소에 즐기지 않던 건강식품들이 즐비했다. 재료
만 떠올려보니 그리 맛없을 것도 없는데… 역시 문화가 다른가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영국이란 곳을 알차게 경험한 것 같아 뿌듯하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컬쳐쇼크를 즐기다]
카페, 세미나실, 사우나 그리고 샤워하는 곳 마저 천막으로 직접 만들었던 그곳에서의 나날들은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주목했던건 그들의 발이었다. 밤이면 한국의 초겨울을 웃도는 추위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대부분) 맨발이었다.
크리스라는 한 친구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심지어 더러운 화장실을 들어갈 때에도 맨발이었다. 진지하게 ‘신발이 없는걸까’ 하는 생각
에 다다랐을 때쯤 그가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하고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었지만 캠프 중간쯤엔 어느새 나도 맨발로 다니며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두번째 충격이었던 것은 남녀가 함께 즐기는 사우나였다. 만들면서 단한번도 ‘왜 한개만 만들지?’라는 생각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 깨달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야심차게 나 역시 다벗고 들어갔다.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없을 시간을 틈타 들어갔긴 했지만 그럼에도 옷을 벗는 것은 부끄러웠다.
들어가니 왜 옷을 벗고 들어와야 되는지 깨달았다. 너무 뜨거웠다. 한 80도쯤…?
숨쉬기도 버거운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어둠과 한껏 동화된 흑인친구 오메가였다.
나란히 앉아 나눴던 몇분간의 대화, 그리고 십여분간의 침묵은 아직도 뜨겁기만하다.
결국 여자들이 들어와 얼굴을 붉히며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낯설고 참신했던 경험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는 365일 펼쳐지는 캠프파이어였다.
첫날부터 떼웠던 장작은 하루도 끊기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따뜻한 불길로 우릴 감싸주
었다. 아무래도 모두들 캠프파이어를 목적으로 이 축제를 참여하는 듯 하는 공연도 일품
이었다. 하나같이 수준 높은 기타 연주를 하는가 하면 젬베, 우크렐레, 마라카스(?) 등
멋진 악기들로 화음을 이루며 연주하기도 했다. 심지어 축제가 시작된 후에는 바이올린
에 플룻까지…! 분명 캠프파이어 공연을 목적으로 축제에 온게 틀림없다.
이런 신선한 충격들 덕분에 16일이라는 짧은 시간은 더욱 더 짧게 느껴졌다.
이 공간에 그 시간들 모두를 담을 수 없는 것이, 그 때의 사소한 하나하나들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함께 지내며 친아빠처럼 챙겨주던 다니엘, 축구선수라며 항상 비행기를 태워주던 자이
야라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공감해주던 다이어, 그리고 16일간 동거동락했던 사랑
스런 동료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고 싶다.
카페, 세미나실, 사우나 그리고 샤워하는 곳 마저 천막으로 직접 만들었던 그곳에서의 나날들은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주목했던건 그들의 발이었다. 밤이면 한국의 초겨울을 웃도는 추위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대부분) 맨발이었다.
크리스라는 한 친구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심지어 더러운 화장실을 들어갈 때에도 맨발이었다. 진지하게 ‘신발이 없는걸까’ 하는 생각
에 다다랐을 때쯤 그가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하고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었지만 캠프 중간쯤엔 어느새 나도 맨발로 다니며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두번째 충격이었던 것은 남녀가 함께 즐기는 사우나였다. 만들면서 단한번도 ‘왜 한개만 만들지?’라는 생각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 깨달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야심차게 나 역시 다벗고 들어갔다.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없을 시간을 틈타 들어갔긴 했지만 그럼에도 옷을 벗는 것은 부끄러웠다.
들어가니 왜 옷을 벗고 들어와야 되는지 깨달았다. 너무 뜨거웠다. 한 80도쯤…?
숨쉬기도 버거운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어둠과 한껏 동화된 흑인친구 오메가였다.
나란히 앉아 나눴던 몇분간의 대화, 그리고 십여분간의 침묵은 아직도 뜨겁기만하다.
결국 여자들이 들어와 얼굴을 붉히며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낯설고 참신했던 경험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는 365일 펼쳐지는 캠프파이어였다.
첫날부터 떼웠던 장작은 하루도 끊기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따뜻한 불길로 우릴 감싸주
었다. 아무래도 모두들 캠프파이어를 목적으로 이 축제를 참여하는 듯 하는 공연도 일품
이었다. 하나같이 수준 높은 기타 연주를 하는가 하면 젬베, 우크렐레, 마라카스(?) 등
멋진 악기들로 화음을 이루며 연주하기도 했다. 심지어 축제가 시작된 후에는 바이올린
에 플룻까지…! 분명 캠프파이어 공연을 목적으로 축제에 온게 틀림없다.
이런 신선한 충격들 덕분에 16일이라는 짧은 시간은 더욱 더 짧게 느껴졌다.
이 공간에 그 시간들 모두를 담을 수 없는 것이, 그 때의 사소한 하나하나들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함께 지내며 친아빠처럼 챙겨주던 다니엘, 축구선수라며 항상 비행기를 태워주던 자이
야라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공감해주던 다이어, 그리고 16일간 동거동락했던 사랑
스런 동료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