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삽질로 다져진 우정, 트로이나 워크캠프
Naturalistic route around lake Sartor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학기 초부터 4학년이나 된 만큼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 공지사항을 통해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도 해외로 나가는 것도 모두 다 생소했던 저에게는 조금 망설여졌지만 워크캠프라면 요번 방학을 ‘도전’이라는 타이틀 아래 보낼 수 있겠다하는 생각에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합격이 되었고, 안내순서에 따라 신청절차를 밟았습니다. 제 캠프는 7월 말부터 시작이어서 본격적인 준비는 6월부터 했습니다. 이어서 받은 인포싯을 통해 캠프에 대한 정보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의 워크캠프 후기와 사전교육이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처음인 저에게 도전이라는 무게를 이겨내는 것이랄까. 불평을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어보고 함께 봉사해보며 경험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 가장 고민이기도 했고, 기대되기도 했던 부분! 공통어인 영어로 소통을 하면서 제 영어실력도 조금은 향상시키고 싶었습니다.
모든 게 처음인 저에게 도전이라는 무게를 이겨내는 것이랄까. 불평을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어보고 함께 봉사해보며 경험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 가장 고민이기도 했고, 기대되기도 했던 부분! 공통어인 영어로 소통을 하면서 제 영어실력도 조금은 향상시키고 싶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제 봉사내용은 마을에 사토리 호수라는 인공호수 주변의 산책로를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말만 들으면 간단한 봉사일 것 같지만 내용은 상당히 힘든 수준의 봉사였습니다. 소위 ‘노가다’라고 부르는 공사판 막일 같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호수는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호수 주변은 훨씬 척박했습니다. 산책로라고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하고 비슷했습니다. 갑자기 목장갑과 곡괭이, 삽을 주더니 흙하고 돌하고 나무밖에 없는 곳에 다리를 놓고 울퉁불퉁한 땅을 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넓고 평평하게 잘 다듬어서 길을 내는 일을 기계 하나 없이 맨손으로 15명 남짓되는 사람들이 매일 5시간동안 일궈냈습니다. 워크캠프 참가자는 세르비아 2명, 터키 2명, 스페인 2명, 한국 2명, 프랑스와 러시아, 폴란드 각각 1명씩 총 11명, 지역주민들은 5명에서 15명까지 일을 할 때마다 다른 인원들이 투입됐습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7시에 일터로 향했고, 12시 반쯤 되었을 때 다시 숙소인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매일같이 일을 나가면서 늘 땀으로 젖고 옷과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고 팔과 다리에는 알이 배겨도 내가 그래도 이 마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은 제가 일이 끝나는 날까지 저에게 버팀목이 되주었던 듯 합니다.
그렇지만 워크캠프를 지내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관문은 바로 문화차이었습니다. 외국을 처음 나가본 것이었고, 이런 활동이 처음이었기에 그 곳의 문화, 환경은 여러 가지로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이해하기 또한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동양인들은 단 둘 뿐이었으니 그것이 더 깊이 와닿았을지 모릅니다. 모두들 친절했지만 설명도 없이 당연하단 듯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보름이라는 시간동안 정말 마지막 며칠에 겨우 적응을 해서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를 지나친 애정행각을 비롯한 개방적이고 느긋한 사고방식 때문에 적응하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여자들만 있는 방에 남자가 들어와 침대에서 둘이서 자는 등의 행동들은 리더에게 이야기를 해도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배려가 있었다면 훨씬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이 행복했던 에피소드를 말해보려 합니다. 제 캠프 기간은 7월 28일부터 8월 11일까지였고, 제 생일은 8월 10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보내는 타국에서의 생일이기에 부모님은 가까이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셨고, 저도 조금은 외로운 생일을 맞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생일이 캠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어서 더더욱 생일에 대한 제 인지정도가 떨어졌었습니다. 다들 아쉬워했고 마지막 밤을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보내고자 했었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한마디를 했고, 웃고 떠들면서 다같이 파티분위기로 저녁식사를 마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23개의 불이 켜져 있는 작은 초들이 꽂힌 케이크가 점점 제 앞으로 전해져 오는 겁니다. 그건 함께 일한 식구들이 준비한 작은 서프라이즈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저의 생일을 축하해주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속으로 애정 듬뿍 담긴 포옹을 받아보았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여러 번 그리고 여러 나라 말들로 들어봤던 날이다. 고마운 마음에 절대 잊을 수 없는 23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워크캠프를 지내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관문은 바로 문화차이었습니다. 외국을 처음 나가본 것이었고, 이런 활동이 처음이었기에 그 곳의 문화, 환경은 여러 가지로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이해하기 또한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동양인들은 단 둘 뿐이었으니 그것이 더 깊이 와닿았을지 모릅니다. 모두들 친절했지만 설명도 없이 당연하단 듯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보름이라는 시간동안 정말 마지막 며칠에 겨우 적응을 해서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를 지나친 애정행각을 비롯한 개방적이고 느긋한 사고방식 때문에 적응하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여자들만 있는 방에 남자가 들어와 침대에서 둘이서 자는 등의 행동들은 리더에게 이야기를 해도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배려가 있었다면 훨씬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이 행복했던 에피소드를 말해보려 합니다. 제 캠프 기간은 7월 28일부터 8월 11일까지였고, 제 생일은 8월 10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보내는 타국에서의 생일이기에 부모님은 가까이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셨고, 저도 조금은 외로운 생일을 맞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생일이 캠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어서 더더욱 생일에 대한 제 인지정도가 떨어졌었습니다. 다들 아쉬워했고 마지막 밤을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보내고자 했었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한마디를 했고, 웃고 떠들면서 다같이 파티분위기로 저녁식사를 마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23개의 불이 켜져 있는 작은 초들이 꽂힌 케이크가 점점 제 앞으로 전해져 오는 겁니다. 그건 함께 일한 식구들이 준비한 작은 서프라이즈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저의 생일을 축하해주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속으로 애정 듬뿍 담긴 포옹을 받아보았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여러 번 그리고 여러 나라 말들로 들어봤던 날이다. 고마운 마음에 절대 잊을 수 없는 23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상대적이라는 말을 몸소 느끼고, 정확히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 점, 내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던 저는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도 소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말 영어는 필수라는 점, 부정적인 마인드는 저를 해치는 데에 쓰이기에 긍정적인 마인드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전만으로도 가치있었지만 그 이외의 소중한 것들을 훨씬 많이 얻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4학년의 여름방학을 워크캠프에 투자했다는 것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떠나고, 봉사하고, 어울림으로써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수많은 깨달음을 얻은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