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좌충우돌 프랑스 봉사, 잊지 못할 첫 해외여행

작성자 박우정
프랑스 SJ51 · 환경/보수 2015. 08 LE BUGUE

LE BUGU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5년 새해 목표에 해외여행을 다녀오자 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으로 새겼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내꿈은 점점 멀어만 갔다. 개강 후 수업을 가다가 워크캠프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참가비 50만원 저렴한 가격과 학점이수, 그리고 짧은 기간과 유럽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거다! 라는 생각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나서 부모님께 통보드렸다.
면접이 있어서 갔는데 토익, 토플, 유학까지 다녀온 학생들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많아서 기에 눌릴 뻔 했지만 침착하게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씀 드렸던 것 같다. 해외여행도 가본 적 없고 영어도 잘 하지 못하지만 첫 해외여행을 봉사로 다녀오는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일거 같다고 말씀 드렸을때 면접관께서 처음인데 괜찮겠어요? 라고 다시 한번 더 물어보셨을때 내가 잘 못 말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맇게 면접이 끝나고 합격자 발표날 내 이름은 없어서 떨어진 줄 알고 다음에 더 준비하고 가야겠다.라고 마음먹을때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참가자 한 분이 못가게 되어 참여할 수 있는 추가합격을 통보 받고 나선
알바도 알아봐서 모은 돈으로 비행기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책을 읽고 세계사 , 한국사도 더 관심갖게 되었던 것 같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다른 생김새, 다른 언어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나였고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걸 느꼈을 때 이래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을 진짜 느꼈던 거 같다.
영어 철자가 달라서 출국 조차 하지 못할뻔 했던 나는 우연의 힘으로 도움을 받아 프랑스까지 안전하게 도착 할 수 있었고 가는 중 기차가 파업해서 작은 시골마을에 내려졌는데 마을 축제 기간에 참여한 한국인 극단을 만나서 불어 하실 수 있는 분께 도움을 청해 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워크캠프 포인트 지점까지 도착했다.
프랑스 리더 2명, 프랑스인 3명, 스페인 2명,이탈리아, 모로코, 멕시코, 아프리카, 한국인, 벨기엘, 이렇게 14명과 함께 3주동안 남부프랑스 LEBUGUE에서 고대 유적지와 함께 보수공사를 했다. 같은 언어가 아니라서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고 다른 문화적 시선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우리 캠퍼들을 한국와서 다시 생각해보니깐 너무 그립다.
영어도 잘 못했던 내가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엔 같이 아쉬워하고 슬퍼하고 잊을 수 없고 배려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더 배웠다.
항상 혼자하는 걸 좋아했던 내가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함께 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엇고 인터네셔널 디너 라는 마을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는데 오시는 마을 사람들이 요리를 하나씩 해서 테이블을 채워 같이 나눠먹는 문화도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 불고기는 어딜가나 인기 최고여서 너무 뿌듯했다.
아침과 저녁은 너무 춥고 낮엔 엄청 더웠던 프랑스 .
초겨울 처럼 추웠던 날씨 덕분에 내가 준비해간 여름용 침낭은 담요가 되었고 자고 이러날때 온 몸이 아플 정도로 긴장하게 만든 추위였다. 천막 속에서 3주동안 처음보고 당황했지만 서로 좁은 공간에서 같이 있으니 하루빨리 더 친해지고 잊지 못 할 추억도 많이 생겼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욕심이 많아서 차분하지 못 했던 내가 봉사를 하면서 나에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같이 함께할때 더 행복했고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수립되었을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다른 생각이지만 똑 같아 질 수 있는 대화의 힘을 느꼈고 부딪히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마주할 수도 있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21살이라는 나이가 졸업 후 뭘 할지 취업은 어디로 할지 걱정이 많았던 내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좀더 여유있게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야 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인연은 정말 신기하고 여유와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봉사를 할 땐 내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안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해야 했나 라는 생각도 가끔 했지만 막상 다 완성이 되고 다같이 땀흘리고 그 완성된 걸 봤을때 마을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는 잊지 못 할 것이다.
시멘트도 발라보고 전기 톱도 사용해보고 한국에선 기계를 썼을 텐데 여기선 모든걸 직접 손으로하고 여자 남자 상관없이 일을 할 시간에는 집중해서 땀흘리고 쉴 땐 정말 즐겁게 놀았던 우리 워크캠프. 정말 너무 행복했고 겁만고 걱정많았던 나는 이제 다른나라 여행도 생각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좋은 점도 생각하게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더 넓어져 갔다. 이 캠프가 있고 워크캠프라는 기구를 통해서 3주라는 짧은 시간안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 너무 뿌듯하고 알차다. 그리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