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용기와 성장의 발걸음 지친 일상, 밀라노에서

작성자 남예선
이탈리아 LUNAR 09 · 축제 2015. 07 lotto, 밀라노, 이탈리아

San Siro Street Festiva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끊임없는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에 지쳐 탈출구가 필요했다.
좋지 않은 가정형편상 부모님께서도 맘편히 가본 적 없는 국내여행을 나 혼자 몇박씩 간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고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해외여행이 두려웠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꿈만 꿔보고 스스로 적극적인 방법으로 시도해 본적이 없었다.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그저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여행은 어떠했는지, 숙박비나 교통비는 얼마나 들었는지' 등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때 마침 그 친구가 내 금전적 사정을 듣더니 '워크캠프'를 추천해준 것이다.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워크캠프 설명회 참석을 비롯해 사이트,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첫 여행을 해외여행으로 덜컥 결정을 하였다.
여권 발급, 적금통장 개설, 한국장학재단 생활금대출, 여행루트짜기 등을 하며 워크캠프 사이트에 참여리스트가 뜨길 기다렸다. 드디어 리스트가 떴고 이탈리아 워크캠프를 신청하였고 확정발표가 났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소하게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길 바랐고, 나는 홀로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며, 내가 하고싶어하는 무언가를 찾길 소망했던 여행길의 시작이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SAN SIRO STREET 축제를 도왔다. 축제준비! 얼마나 가슴이 뛰고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치만 기대와는 다르게 소규모의 축제였고, 준비를 돕는다기 보다는 잡일꾼에 가까웠다. 그래서 솔직히 불만도 많았다. 다만, 영어를 못하기에 따랐을 뿐이다.
오늘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데리고 나가더니 허름한 아파트 단지와 길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도착해서는 '오늘 본 것들에 대해 너의 생각을 말해봐'라고 했을 때 그 당혹감은..워크캠프의 막바지 때 쯤에서야 그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많이 황당했다.
산시로 축제가 우리나라로 따지면 재개발지역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을 위해 재개발 혹은 주민퇴출 등을 반대하고 잠깐의 축제를 통해 저소득층 가정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목적이었다.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돕길 바랐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테이블 만들기였다. 매우 무거웠지만 처음으로 캠프멤버들과 합동하여 일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 뜻 깊었다. 축제 기간 중에는 BAR에서 음료를 팔았던게 가장 재밌었는데, 지역주민들과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 때문에 손짓 발짓 해가면서 의사소통하는 것은 꽤나 유쾌한 경험이었다.
또한 투쟁 끝에 얻은 자유시간을 통해 이탈리아 꼬모, 두오모, 산시로스타디움 등에 캠프멤버들과 가서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겼다. 원래 스케쥴에는 자유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워크캠프 경험이 많았던 친구들이 캠프리더들에게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하여 약 2일 정도의 free time을 얻어냈다. 이는 무척이나 신선한 사건이었다. '이곳이 외국이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달까?
함께 참가한 멤버들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것 투성이다. 한국, 타이완, 터키, 스페인, 폴란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은 영어에 서툰 나와 한국인 친구(1명)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걸려고 노력했고, 함께 여행하길 제안했으며,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려 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먼저 언급할 것은 나는 워크캠프를 중간에 끼고 앞 뒤로 약 2주씩 아일랜드와 스페인을 홀로 여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제목 그대로 나에게 있어서 큰 터닝포인트였다. 본래 외국어공부를 싫어하던 내가 스스로 토익과 회화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고, 무언가 하고싶은 것이 생김으로서 항상 '휴학 반대'를 외치시던 부모님을 설득하여 4학년 2학기를 남겨둔 채 휴학을 결정하고 밀어부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어쩌면 이는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겪었던, 자유롭고 여유로운 '나'를 위해서 사는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이 조금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워크캠프는 매번 같은 생활이 반복되어 어쩌면 조금 무기력했던 삶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이 활기가 나의 1년 간의 휴학기간 동안 쭉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나의 삶 전체에서 하나의 에너지원이 되길 바란다.
생에 첫 여행을 해외로 떠난 나에게는 외국에서 물건을 사고 호스텔을 찾고 metro, trein, 버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마치 5~6살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치만 나는 끝내 해냈고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하였다. 남자들의 군대 경험에 비해서는 다소 짧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이번 한달의 고행으로 나는 "무엇이든 하면 된다."라는 것을 배웠고, '내 발음을 알아듣긴 하는구나' 라던가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나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처음이 어렵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사실 이미 부모님께도 휴학 막바지에 동남아 혹은 아시아권으로 여행을 한번 더 가겠다고 선언해 놓은 상태이다. 처음은 항상 어렵고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다만, 무섭다고 첫 발을 떼지 않으면 항상 제자리 걸음을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