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벽돌 한 장, 프랑스에 지은 우정
MALESTROI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신청한 목적은 복합적이였다,평소 봉사에 관심이 있었으나 혼자 개별적으로 하는 봉사엔 항상 한계가 있었고,부족했던 점이 많아 시행착오도 많았기때문이다.몇 년 전 인도에 개인적으로 찾아가 봉사했던 마더테레사 하우스의 경우 현지에서 배앓이와 여러가지 난관등으로 인해 봉사를 흡족하게 수행하지 못하던 중에 마침 인도로 워크캠프에 참여차 온 경민이라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고 친구의 성공적인 워크캠프를 보면서 나 또한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신구대학교에 재입학 한 뒤 워크캠프에 대해 알게되었고 용기를 내서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속에 있던 나는 내가 과연 프랑스에 가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흔히 알고있는대로 선진국이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생각해온 봉사와는 거리가 먼 터였다, 쁠로에므헬에 도착해 나는 난관을 만나게되었다 ,인포짓에서는 쁠로에흐멜 기차역이 미팅포인트였지만 현지인들이 쁠로에므헬에는 기차역이 없다고 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몇번이고 나의 인포짓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뿐이였다
그러다 한 커플이 혹시 구기차역을 말하는거냐고 물어왔다 확신은 없었지만 쁠로에흐멜에 유일한 기차역은 그 곳이라길래 길을 안내받아 열심히 도착했다,미팅시간이 다가왔지만 구 기차역에는 아무도 오지않았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인포짓 번호로 전화를 걸어주실수있냐고 부탁드렸다
지역주민의 도움으로 기관과 연락이 닿았지만 돌아가는 길을 몰라 한참을 헤매다 다시 돌아와 무거운 배낭이 원망스러워 주저 앉아있을때, 관련기관에서 기차역으로 차를 보내줘 정말 다행이였다,말레스토아는 정말 아름다운 한적한 시골 마을이였다
내가 묵은 숙소는 통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였지만 꽤나 아늑하고 정겨웠다
우리는 도미토리베드를 각각 선택하였다 방이 두곳이 있었는데 나는 대만,말리,프랑스 친구와 방을 같이 사용하게되었다
두번째날부터 각자 워크캠프에 왜 왔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우리가 만들 판매용하우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처음엔 겁이 났다 톱질 한번 해보지 못한 내가 과연 집 5채를 지을 수 있을것인가 확신이 서지않았다
다음날부터 우린 본격적으로 목재를 나르고 톱질과 다양한 작업을 하기시작했다 내 체구에 비해 훨씬 큰 목재들을 나를 때는 버겁기도했으나 하루 일을 끝내고 땀을 식히며 숙소로 돌아가는길은 꽤나 행복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많다보니 트러블이 생기는 일이 가끔 있었다
주로 무슬림친구들의 식생활에서 오는 문제가 가장 컸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다른 유럽친구들은 단백질이 필요하다며 식단을 가지고 한참을 싸웠다
소고기를 사기에 우리의 예산은 한없이 부족했고,돼지는 무조건 제외,
그 뒤로 결국 모든 메뉴의 고기는 치킨이 유일했지만
고성 섞인 다툼을 안들을 수만 있다면 치킨 몇주쯤 먹는게 머 대수일까 싶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도 생일을 워크캠프 활동 중에 보내게되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큰 페이지에 각 나라의 언어로 생일을 축하한다고 적어주었고 저녁엔 브라우니케이크를 구운뒤 파티를 열어주었다
너무나도 고맙고 행복한 밤이였지만 생일 당일 오후에 실수로 맨홀에 빠져 전신에 근육통이 너무 심한터라 고맙다는 말만 연신 하고는 일찍 잠에들었다,프랑스의 맨홀은 한국과 다르게 고무로 되어있어 빨래를 널다 주의깊게 보지못한 내가 발을 헛딛어 맨홀안으로 빠졌고 10분넘게 손끝으로 맨홀 끝을 잡고 매달려있었다,점점 빨려들어가는 나를 숙소 옆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구조해 주셨다
생일날 프랑스 맨홀에 빠지다니,정말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을것같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 최악의 생일이라며 투덜거렸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나는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한다,생일 날 생사의 고민에 빠지다니 나름 흥미롭지 않은가싶다
흔히 알고있는대로 선진국이기 때문에 기존에 내가 생각해온 봉사와는 거리가 먼 터였다, 쁠로에므헬에 도착해 나는 난관을 만나게되었다 ,인포짓에서는 쁠로에흐멜 기차역이 미팅포인트였지만 현지인들이 쁠로에므헬에는 기차역이 없다고 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몇번이고 나의 인포짓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뿐이였다
그러다 한 커플이 혹시 구기차역을 말하는거냐고 물어왔다 확신은 없었지만 쁠로에흐멜에 유일한 기차역은 그 곳이라길래 길을 안내받아 열심히 도착했다,미팅시간이 다가왔지만 구 기차역에는 아무도 오지않았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인포짓 번호로 전화를 걸어주실수있냐고 부탁드렸다
지역주민의 도움으로 기관과 연락이 닿았지만 돌아가는 길을 몰라 한참을 헤매다 다시 돌아와 무거운 배낭이 원망스러워 주저 앉아있을때, 관련기관에서 기차역으로 차를 보내줘 정말 다행이였다,말레스토아는 정말 아름다운 한적한 시골 마을이였다
내가 묵은 숙소는 통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였지만 꽤나 아늑하고 정겨웠다
우리는 도미토리베드를 각각 선택하였다 방이 두곳이 있었는데 나는 대만,말리,프랑스 친구와 방을 같이 사용하게되었다
두번째날부터 각자 워크캠프에 왜 왔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우리가 만들 판매용하우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처음엔 겁이 났다 톱질 한번 해보지 못한 내가 과연 집 5채를 지을 수 있을것인가 확신이 서지않았다
다음날부터 우린 본격적으로 목재를 나르고 톱질과 다양한 작업을 하기시작했다 내 체구에 비해 훨씬 큰 목재들을 나를 때는 버겁기도했으나 하루 일을 끝내고 땀을 식히며 숙소로 돌아가는길은 꽤나 행복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많다보니 트러블이 생기는 일이 가끔 있었다
주로 무슬림친구들의 식생활에서 오는 문제가 가장 컸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다른 유럽친구들은 단백질이 필요하다며 식단을 가지고 한참을 싸웠다
소고기를 사기에 우리의 예산은 한없이 부족했고,돼지는 무조건 제외,
그 뒤로 결국 모든 메뉴의 고기는 치킨이 유일했지만
고성 섞인 다툼을 안들을 수만 있다면 치킨 몇주쯤 먹는게 머 대수일까 싶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도 생일을 워크캠프 활동 중에 보내게되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큰 페이지에 각 나라의 언어로 생일을 축하한다고 적어주었고 저녁엔 브라우니케이크를 구운뒤 파티를 열어주었다
너무나도 고맙고 행복한 밤이였지만 생일 당일 오후에 실수로 맨홀에 빠져 전신에 근육통이 너무 심한터라 고맙다는 말만 연신 하고는 일찍 잠에들었다,프랑스의 맨홀은 한국과 다르게 고무로 되어있어 빨래를 널다 주의깊게 보지못한 내가 발을 헛딛어 맨홀안으로 빠졌고 10분넘게 손끝으로 맨홀 끝을 잡고 매달려있었다,점점 빨려들어가는 나를 숙소 옆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구조해 주셨다
생일날 프랑스 맨홀에 빠지다니,정말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을것같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 최악의 생일이라며 투덜거렸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나는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한다,생일 날 생사의 고민에 빠지다니 나름 흥미롭지 않은가싶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 작업을 시작할때는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의 형태가 완성되자 감탄이 절로나왔다
내가 정말 집을 지었다니!
물론 나 혼자서는 죽었다깨어나도 할 수 없었겠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일한 성과가 조금씩 들어나자 성취감에 정말 기뻤다
물론 문제점도 있었다,다른 문제들은 크게 신경쓰이지않았지만 유럽친구들의 지나친 스킨십과 애정표현에 한국에서 자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당황스러울때가 많았다
매일 의견을 내는 시간에 나는 용기내서 말했다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심한 애정표현은 하지않는다고 숙소는 다같이 쓰는 공간이기때문에 자제해줄것을 바랬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유럽친구들의 이해할수없다는 표정와 웃음뿐이였다
물론 우리는 아주 먼 지역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오랜기간 살아왔기때문에 문화차이는 있을수 밖에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가 만든 집은 마을의 축제 때 쓰이는 용도였다
나는 말레스토아를 떠나지만,만든 집들은 거기 그자리에 남아 마을의 다양한 행사와 축제에서 쓰일 생각을 하니 정말 뜻 깊었다
말레스토아에서 3주는 나에게 정말 특별하고 인상깊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많은 것을 배웠고,경험했으며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얻었다
21일은 정말 쓰고도 달콤한 시간이이였다
내가 정말 집을 지었다니!
물론 나 혼자서는 죽었다깨어나도 할 수 없었겠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일한 성과가 조금씩 들어나자 성취감에 정말 기뻤다
물론 문제점도 있었다,다른 문제들은 크게 신경쓰이지않았지만 유럽친구들의 지나친 스킨십과 애정표현에 한국에서 자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당황스러울때가 많았다
매일 의견을 내는 시간에 나는 용기내서 말했다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심한 애정표현은 하지않는다고 숙소는 다같이 쓰는 공간이기때문에 자제해줄것을 바랬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유럽친구들의 이해할수없다는 표정와 웃음뿐이였다
물론 우리는 아주 먼 지역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오랜기간 살아왔기때문에 문화차이는 있을수 밖에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가 만든 집은 마을의 축제 때 쓰이는 용도였다
나는 말레스토아를 떠나지만,만든 집들은 거기 그자리에 남아 마을의 다양한 행사와 축제에서 쓰일 생각을 하니 정말 뜻 깊었다
말레스토아에서 3주는 나에게 정말 특별하고 인상깊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많은 것을 배웠고,경험했으며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얻었다
21일은 정말 쓰고도 달콤한 시간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