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핫야이, 봉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
Creative English Teach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3주의 여행 시간 동안 보다 알차게 보내고, 태국이라는 나라를 더 잘고 싶어서였다. 평소에 체험활동이라던가 해외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처음 핫야이역에 도착해 워크캠프 멤버들을 만났을 때 모두들 서글서글한 인상이라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있다. 태국인 1명, 독일인 1명, 일본인 3명, 한국인 3명, 베트남인 1명, 벨기에인 1명, 총 10명으로 구성되어있었고, 아무래도 한국인들과 가장 먼저 친해졌고, 같은 아시아 권이라서 그런지 일본인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때때로 한국인들끼리 지나치게 한국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바람에 다른 캠프 멤버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부분은 당시에도 고칠 수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처음 핫야이역에 도착해 워크캠프 멤버들을 만났을 때 모두들 서글서글한 인상이라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있다. 태국인 1명, 독일인 1명, 일본인 3명, 한국인 3명, 베트남인 1명, 벨기에인 1명, 총 10명으로 구성되어있었고, 아무래도 한국인들과 가장 먼저 친해졌고, 같은 아시아 권이라서 그런지 일본인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때때로 한국인들끼리 지나치게 한국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바람에 다른 캠프 멤버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부분은 당시에도 고칠 수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우리는 핫야이 시티 근처의 시골 마을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매우 작은 마을이라 근처에 학교는 하나 있었고, 그 학교는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다니고 있었다. 그 학교에 이렇게 외국인이 온 것이 처음이었던지,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까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많은 배려를 해줬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학생들과 친해지면서 수업 내용이 레크레이션 쪽으로 흘러간 면이 없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에 대한 집중도나 열의가 높은 편이었고, 특히 유치원생들은 우리를 올라타고 깨물고 놀고 싶어했기 때문에, 캠프가 끝날 때쯤에는 대부분의 캠퍼들이 유치원 반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캠퍼들에게 핫야이 시내를 구경시켜 주고, 식사를 대접해주곤 했다. 캠프가 끝나기 하루 전 날, 한 사람씩 흩어져 학생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진짜 태국의 생활 방식을 접할 수 있었다. 사실, 도착하기 전, 핫야이가 태국 제 3의 도시라는 말을 듣고 어느 정도 규모 있고 발달한 도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 옛 태국의 생활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평일에는 수업을 마치고 밤에 수업 계획이나 설거지, 청소, 식사 등의 활동 당번을 정하는 내용의 미팅을 했다. 초반에 친해지기 위해 게임을 했는데 한국식과는 다른 여러 가지 게임을 접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Sharing market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이것은 출발 전 워크캠프 리더가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 또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는 것을 하나씩 가져와 다른 이들과 물물교환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인 작가가 썼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책과 전통 문양이 들어가 있는 보석함을 가져갔고, 각각 두 일본인 친구에게 돌아갔다. 알고 보니 보석함에는 팔찌가 하나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캠프 기간 중 생일이었던 캠프 멤버 중 가장 연장자이자, 배울 점이 정말 많았던 벨기에인 도미니크에게 주었다. 도미니크가 나중에 고맙다며 나에게 뽀뽀를 해줬다. 나는 독일인 리더 카이에게서 오바마 에세이 원서를 받았다.
평일에는 수업을 마치고 밤에 수업 계획이나 설거지, 청소, 식사 등의 활동 당번을 정하는 내용의 미팅을 했다. 초반에 친해지기 위해 게임을 했는데 한국식과는 다른 여러 가지 게임을 접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Sharing market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이것은 출발 전 워크캠프 리더가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 또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는 것을 하나씩 가져와 다른 이들과 물물교환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인 작가가 썼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책과 전통 문양이 들어가 있는 보석함을 가져갔고, 각각 두 일본인 친구에게 돌아갔다. 알고 보니 보석함에는 팔찌가 하나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캠프 기간 중 생일이었던 캠프 멤버 중 가장 연장자이자, 배울 점이 정말 많았던 벨기에인 도미니크에게 주었다. 도미니크가 나중에 고맙다며 나에게 뽀뽀를 해줬다. 나는 독일인 리더 카이에게서 오바마 에세이 원서를 받았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마지막까지 워크캠프 멤버 전원과 친해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먼저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문화적 차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 또는 사고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에 있는 것 같다. 영어 실력의 부족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이번 워크 캠프에 참가하면서 무엇보다도 ‘봉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참가하기 전까지는 봉사하면 힘듦, 희생, 고됨, 의무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는데, 워크캠프를 참가하면서 봉사가 즐기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방학 때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부분의 아쉬움도 다음 워크캠프에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앞서 체험한 하나의 경험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 더 넒은 세상을 접하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됐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번 워크캠프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더 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 워크 캠프에 참가하면서 무엇보다도 ‘봉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참가하기 전까지는 봉사하면 힘듦, 희생, 고됨, 의무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는데, 워크캠프를 참가하면서 봉사가 즐기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방학 때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부분의 아쉬움도 다음 워크캠프에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앞서 체험한 하나의 경험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 더 넒은 세상을 접하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됐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번 워크캠프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더 없이 소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