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마랑, 아이들의 눈빛을 잊지 못할 거야

작성자 최우혁
인도네시아 DJ-35 · DISA/KIDS 2011. 02 스마랑

Ungaran Disabled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같은 과 친구와 함께 가기로 작년 11월에 계획을 했다. 워캠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다른 봉사활동프로그램과 달리 여행일정을 참가자가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중에 대사협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간 친구가 있는데 인천공항에서 집결한 뒤 봉사지로 가야했기 때문에 그리고 돌아오는 일정도 정해져 있어서 말 그대로 봉사활동만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워크캠프로 간 이상, 본인이 좀 더 시간을 들여 계획을 잘만 한다면 정말 뜻 깊은 여행이자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봉사활동에 의의를 둔다면 봉사활동만 하고 오는 것이 어쩌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능하면 가능할수록 대학생의 신분으로 해외를 다녀오려고 하고, 이점을 후배들에게도 강조하는 편이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취업 때문에 해외는 커녕, 국내 여행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늘어날 것이고, 워캠의 경우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나중에 취업때 이 점을 이력서에 적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봉사활동을 방자한 해외봉사가 아니냐는 부모님의 말씀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봉사활동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왕 해외나간김에 견문도 넓힐 겸 여행도 좋은 방법이라 본인은 생각한다. 워캠을 준비하는데 약 한달이 걸렸다. 하필이면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준비기간이 길었던점도 있었고, 의외로 인도네시아 정보가 너무너무 없어서 기간이 오래걸렸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자카르도 도착하고 내리자 마자 이상한 사람들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심지어 어떤사람은 짐들어주겠다고 한다. 허나 다 사기꾼들이니 절대 절대로 말도 걸지 말고 대꾸도 하지 말고 앞만 보고 그냥 갈것. 와이셔츠에 사진있는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린 공항직원인줄 알고 물었다. 그런데 답변이 끝나자 1만 루피아를 달라고 한다. 뭐 이런... 심지어 공항 경찰은 영어를 아예 못한다. 그러니 만약 숙소에서 픽업이 된다면 픽업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정말 정말 좋을 듯싶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심지어 어떤 경우는 경찰행세하며 태워다 주겠다고 한 뒤 돈과 귀중품을 갈취하고 달아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건 우리 호스텔 아주머니가 해주신말씀이다. 그러니 아무도 쉽게 말들어서 따라가지 말 것. 반면 우리 호스텔아주머니는 자카르타지역에서 엄청난 제력가이신 듯했다. 자카르타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에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는 집, 약 500평? 수영장에 갖가지 동물에 하인들에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정말 편하게 묵다 왔다. 하루 숙박은 25~30달러 이었고 밥은 한끼당 3달러. 호스텔닷컴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jakarta Bed & Breakfast' 강추다. 다만. 공항에서 너무 멀다는게 흠. 한 시간정도 걸린다. 자카르타 시내 교통상황을 고려시 최소 2시간~4시간은 예상해야 함. 그래서 한국으로 귀국할때는 5시간이나 걸려서 공항에 도착! 결국 한구가는 비행기 놓치고, 벌금물고, 표 다시사고.. 하루 더 자카르타에서 묵었다. 결국 제주도행 티켓도 취소.. 그리고 며칠뒤 반둥을 거쳐 야간열차를 타고 세마랑에 도착했다. 새벽 5시 세마랑은 물바다였다. 그 전날 밤새 미친듯이 내린 비로 물이 무릎까지 고인곳도 있었다. 일단 블루버드를 타고 데자바토 사무실로 이동을 했다. 나는 인포싯에 숙소가 학교서 20분정도 걸린다고 적혀있어서, 설마 학교 그 교실에서 잘거라곤 예상 못했다. 창문도 없고 어떻게 그곳에서 2주를 버텼는지 모르겠다. 2주동안 아이들이 있어서 즐겁고 유익했던 시간들어었지만 더운건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토했고 아침에 닭들이 날뛰어 편히 못자고 이런날의 연속이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워크캠프 하는 동안, 인도네시아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신체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겉으로 봤을 때 일반아이들과 다른점이 전혀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팀원들도 그 의견에는 관점이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았을때 가슴이 저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저린듯한 아픔이 느껴졌었다. 단순히 이들을 수용할 곳이 없어서 한번에 몰아넣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쉬움도 컸다. 하나하나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 하나하나 말을 들어주지 못했던 아쉬움, 오랜시간 같이 머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2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날 역시 그랬다. 불과 2주전만해도 아~ 여기서 어떻게 2주를 보내지 싶었는데 그새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지금 한국에서 이렇게 보고서를 쓰고 있는 지금도 아이들이 그립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장차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이번 워캠을 참가하고 난 뒤 꼭 그 길을 걸어가, 훗날 봉사자의 신분으로 다시 한번 이 웅아란 학교를 찾아가리라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