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오지에서 만난 봉사의 참 의미
RacingThe Plane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오지레이스는 8일동안 레이서들이 250km의 오지 지형을 걷거나 뛰어서 완주하는 경기입니다. 이 때 텐트와 물을 제외한 음식, 옷, 침낭 등은 모두 가방에 메고 달려야 합니다. 일종의 극한레이스입니다.
원래 오지레이스를 참가하고 싶었고, 봉사자로 참가시 비행기표만 내도 되기에 지원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때마침 예전부터 가고싶었던 지구반대편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레이스가 열리기에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봉사활동 참가에는 두가지 관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스태프 멤버의 요구사항중 하나가 영어에 매우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영어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간의 제 영어실력을 테스트도 할겸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지원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슬란드로 가는 준비 자체도 큰 도전 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유럽 서쪽 끝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아이슬란드는 정보도 별로없어서 준비가 힘들었습니다. 침낭 및 두꺼운 옷을 준비하고, 영어로 된 스태프 안내서를 보고 비즈니스 서류를 이메일로 주고 받고. 아이슬란드에 가기위해 각종 예약을 혼자 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오지레이스를 바로 옆에서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들과 함께 영어로 일하는 것은 두렵기도, 흥분되기도 했습니다.
원래 오지레이스를 참가하고 싶었고, 봉사자로 참가시 비행기표만 내도 되기에 지원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때마침 예전부터 가고싶었던 지구반대편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레이스가 열리기에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봉사활동 참가에는 두가지 관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스태프 멤버의 요구사항중 하나가 영어에 매우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영어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간의 제 영어실력을 테스트도 할겸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지원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슬란드로 가는 준비 자체도 큰 도전 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유럽 서쪽 끝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아이슬란드는 정보도 별로없어서 준비가 힘들었습니다. 침낭 및 두꺼운 옷을 준비하고, 영어로 된 스태프 안내서를 보고 비즈니스 서류를 이메일로 주고 받고. 아이슬란드에 가기위해 각종 예약을 혼자 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오지레이스를 바로 옆에서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들과 함께 영어로 일하는 것은 두렵기도, 흥분되기도 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270여명의 레이서들이 참가했고, 저의 주요 업무는 레이서들을 위해 텐트를 치고 철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레이스 3일 전에 모여서 운영요원끼리 레이스 루트를 다 돌아보고 소형, 대형 텐트 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운영요원은 약 25명으로 대부분이 유럽인이었고 아시아인은 3명, 한국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현지 사정을 고려해 아이슬란드인도 2명 가량 있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30인 대형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고, 첫날의 베이스캠프 예정지에서 자다가 새벽에 강풍으로 텐트들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 캠프를 산 꼭대기에서 그 밑으로 옮겨서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레이스 도중에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주변 학교의 강당으로 숙소가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레이스 기간동안 매일 새벽 5시반에 일어나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등 레이스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8시에 레이서들이 출발하기 전에는 빈 텐트부터 철거하여 미리 레이스의 끝지점으로 가서 빠른 시간안에 텐트를 다시 쳤습니다.
텐트를 다 치고나면 오후 2시내외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레이서들의 도착을 기다리며 중간중간 텐트의 상태점검을 하고, 매니져팀의 지시사항을 들으며 추가적인 일들을 했습니다. 가끔씩 매니져가 사주는 콜라와 빵, 과자는 그 무엇보다도 맛있는 꿀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소소한 음식에 행복했고, 레이서들이 전하는 감사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레이스 3일 전에 모여서 운영요원끼리 레이스 루트를 다 돌아보고 소형, 대형 텐트 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운영요원은 약 25명으로 대부분이 유럽인이었고 아시아인은 3명, 한국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현지 사정을 고려해 아이슬란드인도 2명 가량 있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30인 대형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고, 첫날의 베이스캠프 예정지에서 자다가 새벽에 강풍으로 텐트들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 캠프를 산 꼭대기에서 그 밑으로 옮겨서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레이스 도중에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주변 학교의 강당으로 숙소가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레이스 기간동안 매일 새벽 5시반에 일어나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등 레이스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8시에 레이서들이 출발하기 전에는 빈 텐트부터 철거하여 미리 레이스의 끝지점으로 가서 빠른 시간안에 텐트를 다시 쳤습니다.
텐트를 다 치고나면 오후 2시내외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레이서들의 도착을 기다리며 중간중간 텐트의 상태점검을 하고, 매니져팀의 지시사항을 들으며 추가적인 일들을 했습니다. 가끔씩 매니져가 사주는 콜라와 빵, 과자는 그 무엇보다도 맛있는 꿀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소소한 음식에 행복했고, 레이서들이 전하는 감사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이 레이스는 저에게 크게 두가지 자극을 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에 대한 자극입니다. 참가자의 요구사항이 very fluent in English였던만큼 하나같이 영어를 잘했습니다. 유럽인이 90퍼 이상이었는데 각자의 억양으로 농담과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듣기를 중심으로 한 회화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째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레이스를 하면서 봉사의 의미에 대해 강하게 느꼈습니다. 춥고 배고프지만 운영요원들에게 소한 감사를 전하는 레이서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 후 항상 보람찬 일, 가슴뛰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구 반대변의 작은 땅 아이슬란드에 갔던 이 경험은 제 대학생활의 2막을 열어 주었습니다. 저의 대학생활은 아이슬란드 전 후로 나뉩니다. 영어, 봉사, 다양한 경험에 대한 자극이 된 이 경험을 떠올리며 언젠가 또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에 대한 자극입니다. 참가자의 요구사항이 very fluent in English였던만큼 하나같이 영어를 잘했습니다. 유럽인이 90퍼 이상이었는데 각자의 억양으로 농담과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듣기를 중심으로 한 회화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째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레이스를 하면서 봉사의 의미에 대해 강하게 느꼈습니다. 춥고 배고프지만 운영요원들에게 소한 감사를 전하는 레이서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 후 항상 보람찬 일, 가슴뛰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구 반대변의 작은 땅 아이슬란드에 갔던 이 경험은 제 대학생활의 2막을 열어 주었습니다. 저의 대학생활은 아이슬란드 전 후로 나뉩니다. 영어, 봉사, 다양한 경험에 대한 자극이 된 이 경험을 떠올리며 언젠가 또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