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베를린에서 만난 나의 20대, 청춘

작성자 이선경
독일 OH-W11 · 환경/건설 2015. 07 독일

Ollendorf Water Cast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살면서 한번도 외국 땅을 밟지 못했던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설렘보다 혼자 여행을 준비해야 된다는 두려움, 독일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맨 처음에는 나와 같은 기간에, 나와 같은 장소를 여행하고자 하는 한국인을 찾고자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국제워크캠프를 알게 되었고, 사전조사 없이 무작정 신청하였다.
이제부터 사전조사 없이 워크캠프를 신청했을 경우에 일어났던 경험들을 서술하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경험조차 값지고, 즐겁고, 설렜음을 미리 언급하는 바이다.
내가 신청한 워크캠프는 ㅇㅇ이다. 독일이란 나라를 가면서도 여러 도시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독일 가는 비행기는 ‘베를린행’으로 출발하였다. 워크캠프 시작 하루 전, 독일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워크캠프 소집 장소는 생각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베를린에서도 멀리 떨어진 시골이라는 것을 소집일 당일 아침에 깨달았다. 급히 짐을 들고 기차역으로 가서 해당 도시까지 가는 표를 현장에서 예매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위험한 일정을 인생 첫 여행부터 도전한 것이다. 해당 도시 기차역에 도착을 해서도 소집장소는 더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시골 마을이였다. 독일은 도시를 제외하고는 시골에는 기찻길 한복판에 내려야 한다. 구글 맵을 키고 소집장소를 검색해 보았을 때에 14km가 나왔다. 택시도 없고, 심지어 달리는 차조차 없는 기찻길 한복판에서 무슨 용기가 났었는지 14km는 걸어서 4-5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인도는 없어지고 차도만 나와 살짝 불안했고, 소나기도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해서 햇볕 나는 날씨에서 깜깜한 밤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소집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어떻게든 가야 도움을 청할 수라도 있었기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걸어나갔다. 다행히 마을까지 도착해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차로 소집장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워크캠프를 계획하는 다른 이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적어도 소집장소까지 도착하는 방법은 숙지하고 떠나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크캠프의 2주는 내가 꿈꿔오던 20대의 모습 이였다.
워크캠프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주중(월-금)에서는 성 보수(주로 잡초 제거)를 하였다. 주말에는 멤버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다른 마을을 가서 관광, 밤 문화 체험 등을 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주중에 일을 굉장히 많이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일을 한 시간은 대략 10AM-12PM, 2PM-4PM정도로 짧았다. 나머지 시간에는 티타임, 맥주타임, 마을사람들과의 핸드볼경기, 탁구 등을 하며 정겨운 시골 풍경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현지에서의 일상은 평화롭고,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매일 밤 성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타를 치면서 각자 맥주를 마시며 오순도순 노는 모습은 워크캠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모자라지 않은 장면임에 틀림없다.
워크캠프에서의 참가자는 총 14으로,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이탈리아1, 프랑스1, 체코1, 스페인2, 러시아2, 세르비아.몬테네그로4, 대만1, 그 외 1 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워크캠프 안에서의 핑크색 기류들이 기억에 남는다. 국적이 다른 친구들끼리 2주 동안 서로 짝을 지어 노는 모습은 관리자분도 처음 보신다고 하면서 즐거워하셨다. 밤마다 술을 마시는데 그때마다, 독일 마을 사람들이 한 분씩 놀러 와서 같이 노는 모습은 특별히 이 캠프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캠프를 가기 전에 나의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쑥스러워하는 학생이였다. 하지만 자기표현이 확실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생활하다 보니, 예의 바른 것과 자기표현을 확실히 하는 것의 차이를 깨달았다. 이후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당당하게 나의 의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교육봉사나, 축제봉사를 하는 다른 워크캠프에 비해 봉사의 의미를 느끼기에는 조금 다른 개념의 워크캠프였지만, 풀이 무성한 사람이 살수 없는 모습의 성을 마지막 날에 다시 볼 때에는 그보다 바람직할 수 없었다.
이 여행을 끝으로 나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시험에 맞추어 벼락치기를 하고, 여러 자격시험에 떨어지면서…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이 추억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워크캠프를 추천하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흔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안 다녀온 사람보다 시야가 넓어지고, 꿈이 커진다고 한다. 이 말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온다면, 이러한 경험을 하고 온다면, 그 사람들은 생각이 넓어질 것이라 자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