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대만, 낯선 땅에서 만난 그리움
Be a Temporary Grandson! Pass Love for Elderli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어렸을 때 해외봉사를 텔레비전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인생에 한 번쯤은 해외봉사를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너무나도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친구의 소개로 워크캠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원자가 많다고 들어서 설마설마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지원서를 작성해서 지원하게 되었는데 설마설마했는데 내가 그중에 뽑혔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과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전에 해외로 나간 적도 없는데 내가 해외로 어떻게 봉사를 가지?, 영어도 잘 못하면서 거기서 어떻게 생활을 하지? 가기도 전에 많은 걱정을 했지만 그 많던 걱정도 잠시 워크캠프를 준비하면서 오티도 갔다 오고 안전교육도 받고 절차를 차차 밟아 가면서 걱정도 사라져 갔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가서 의지도 하면서 부담도 덜하고 다행이었던 것 같다. 인포싯에 나와있는 준비물을 챙기면서 한복, 호떡믹스, 불고기 소스, 공기, 한국 지도 등으로 한국에 대해서 소개하려니 점점 기대가 되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타이베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하루 전날 대만에 도착하였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고 해서 늦게 도착하리라 생각을 하고 숙소도 잡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고 우리의 목적지인 가오슝으로 가는 일이 너무 순조로워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버려서 이도 저도 안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만의 날씨에 몸은 이미 지칠 때로 지쳤고 짐은 또 어찌나 무겁던지 그렇게 나랑 친구는 기차역에서 노숙? 을 하면서 시간을 버티다가 안되겠기에 모이는 당일 아침 연락리더에게 연락해서 활동 장소로 먼저 가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와서 현지 봉사자들도 도착 전 시간이었다. 리더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모이는 장소인 차오저우 기차역에서 우리의 이름이 쓰인 카드를 들고 환영해주려고 했다고 한다고 들으니 더더욱 미안해졌다. 그리고 첫날 누구보다 일찍 시작해서 그런지 몸도 지쳤고 우려했던 영어 문제가 가장 컸다.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의사소통이 안되니깐 이거 중도 하차해야 되는 거 아닌가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 날부터 다행히도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몸으로 활동하는 시간을 가져서 첫날보다는 덜 힘들었다. 일명 노인체험이라고 나이가 들면 시력이 나빠지니 노란 불투명한 안경을 쓰고, 허리가 구부정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끼를 입고 다리 보호대에 연결해서 구부정하게 만들고 발에 깁스도 하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근처에 있는 세븐일레븐 마트에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짝을 지어서 미션을 했다. 노인체험을 해보니 허리가 구부정하니 허리도 너무 아프고 눈도 잘 안 보여서 글자도 잘 보이지도 않고 색도 잘 보이지 않았다. 대만은 한국보다 노령화가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봉사하러 간 곳은 원래는 노인들이 별로 살지 않는 마을인데 혼자 사시는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 2년 만에 노인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었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적적하시지 않게 회관에 모여서 음악 연주도 하고, 글자도 배우는 프로그램이 잘 돼있는 것 같다. 캠프 4일차쯤 우리는 가오슝 근처에 있는 섬으로 1박2일 여행도 갔다 왔다. 처음 보는 경치에 오토바이를 타는 새로운 경험도 해서 너무 재밌었고 더욱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2주 동안 그 마을 벽화도 색칠하고, 그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집들을 다니면서 손녀, 손자같이 말동무도 되드리고, 한국말로 곰 세 마리 노래도 같이 불러드리고, 몸이 불편하시고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요양원 같은 곳에 가서 작은 공연 같은 것도 했는데 너무들 좋아해 주시고 어떤 할아버지는 감동을 받으셨는지 눈물을 흘리셨다. 그것을 본 몇몇의 봉사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정이 들었는지 너무 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캠프가 끝나갈 때쯤에 우리는 문화의 밤이라고 각자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지역봉사자들과 같이 먹는 시간도 가지고 각자의 나라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도 가지고 그중 나랑 내 친구는 아리랑 노래를 봉사자들과 함께 불렀다.
끝날 줄 몰랐던 캠프가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고 2주 동안 함께 해온 봉사자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아쉬움의 눈물도 같이 흘렸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 했던 2주 동안 캠프하면서 활동했던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은 카드를 선물로 받아서 너무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이 기억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둘째 날부터 다행히도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몸으로 활동하는 시간을 가져서 첫날보다는 덜 힘들었다. 일명 노인체험이라고 나이가 들면 시력이 나빠지니 노란 불투명한 안경을 쓰고, 허리가 구부정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끼를 입고 다리 보호대에 연결해서 구부정하게 만들고 발에 깁스도 하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근처에 있는 세븐일레븐 마트에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짝을 지어서 미션을 했다. 노인체험을 해보니 허리가 구부정하니 허리도 너무 아프고 눈도 잘 안 보여서 글자도 잘 보이지도 않고 색도 잘 보이지 않았다. 대만은 한국보다 노령화가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봉사하러 간 곳은 원래는 노인들이 별로 살지 않는 마을인데 혼자 사시는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 2년 만에 노인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었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적적하시지 않게 회관에 모여서 음악 연주도 하고, 글자도 배우는 프로그램이 잘 돼있는 것 같다. 캠프 4일차쯤 우리는 가오슝 근처에 있는 섬으로 1박2일 여행도 갔다 왔다. 처음 보는 경치에 오토바이를 타는 새로운 경험도 해서 너무 재밌었고 더욱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2주 동안 그 마을 벽화도 색칠하고, 그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집들을 다니면서 손녀, 손자같이 말동무도 되드리고, 한국말로 곰 세 마리 노래도 같이 불러드리고, 몸이 불편하시고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요양원 같은 곳에 가서 작은 공연 같은 것도 했는데 너무들 좋아해 주시고 어떤 할아버지는 감동을 받으셨는지 눈물을 흘리셨다. 그것을 본 몇몇의 봉사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정이 들었는지 너무 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캠프가 끝나갈 때쯤에 우리는 문화의 밤이라고 각자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지역봉사자들과 같이 먹는 시간도 가지고 각자의 나라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도 가지고 그중 나랑 내 친구는 아리랑 노래를 봉사자들과 함께 불렀다.
끝날 줄 몰랐던 캠프가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고 2주 동안 함께 해온 봉사자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아쉬움의 눈물도 같이 흘렸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 했던 2주 동안 캠프하면서 활동했던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은 카드를 선물로 받아서 너무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이 기억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이번 봉사 프로그램을 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 시간에 특히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살아계셨다면 어땠을까? 내가 할머니를 만나러 잘 가지 않았을까? 나도 할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서 평소 개의치 않게 생각해왔으나 이번 캠프를 통해서 혼자 사시는 노인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캠프를 하면서 영어를 잘 못 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잘 되지는 않아서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공부를 좀 더해서 언어가 능숙해진다면 다른 캠프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느낀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것 같아 좋다.
물론 캠프를 하면서 영어를 잘 못 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잘 되지는 않아서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공부를 좀 더해서 언어가 능숙해진다면 다른 캠프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느낀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것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