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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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 Fun in the South(1: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회사를 퇴사한 후 모교 교수님께 부탁해 수학을 공부했다.
고교 시절 수학을 끝까지 - 사실 끝이 없는 것이지만 - 공부해보지 못해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내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를 앞둔 4월 초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1. 인구가 적은 곳이어서 붐비지 않을 것
2. 지금 나이에 가야만 하는 곳일 것
3.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일 것
4. 완전히 다른 자연환경이 있는 곳
5. 덥지 않을 것
다음 날 아침 수업을 나가지 않고 인천-파리 그리고 파리-레이캬비크 행 편도 비행기표를 예매한 나는 70리터짜리 배낭에 청바지 두 벌과 티셔츠를 쑤셔 넣고는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교 시절 수학을 끝까지 - 사실 끝이 없는 것이지만 - 공부해보지 못해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내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를 앞둔 4월 초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1. 인구가 적은 곳이어서 붐비지 않을 것
2. 지금 나이에 가야만 하는 곳일 것
3.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일 것
4. 완전히 다른 자연환경이 있는 곳
5. 덥지 않을 것
다음 날 아침 수업을 나가지 않고 인천-파리 그리고 파리-레이캬비크 행 편도 비행기표를 예매한 나는 70리터짜리 배낭에 청바지 두 벌과 티셔츠를 쑤셔 넣고는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바람의 나라'- 게임 아님 - 라는 문장보다 아이슬란드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커다란 폭포나 호수 근처에 가려면 정말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과 맞서야 한다. 대서양과 북극사이에 위치한 탓에 그 엄청난 자연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나라가 아이슬란드이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나를 포함 6명으로 구성되었다. 4명의 참가자가 북유럽이나 동유럽에서 왔기에 처음에 서로의 이름을 외우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름이 축약(?)되면서 어느새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저녁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주었는데 슬로바키아에서 온 여성을 제외한 모두가 맵다고 나리를 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하이킹을 갔는데 툰드라 지대의 대 자연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신이 남부 아이슬란드 어딘가를 걷고 있다면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은 뜨거운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 몸을 담그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 팀은 나를 포함 6명으로 구성되었다. 4명의 참가자가 북유럽이나 동유럽에서 왔기에 처음에 서로의 이름을 외우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름이 축약(?)되면서 어느새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저녁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주었는데 슬로바키아에서 온 여성을 제외한 모두가 맵다고 나리를 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하이킹을 갔는데 툰드라 지대의 대 자연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신이 남부 아이슬란드 어딘가를 걷고 있다면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은 뜨거운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 몸을 담그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유럽대륙과 한참을 떨어진 거리이지만 똑같은 동물과 식물이 자라고 있다. 대륙이동설 등의 학설을 떠올리는 것은 여행과 어울리지 않으니 자연의 신비로움에 그저 감동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새 나와 친구들은 돌아갈 때 쯤엔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 한국가에서 온 것처럼 같이 한국영화를 보고 프랑스 코미디를 보고 손에 진흙을 뭍히며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언제가는 나의 키보다 크게 자라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큼 우리도 자라 있을 것이다.
어디론가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따뜻함을 가져다 준다. 그 길은 내가 걸었던 길이며 그 끝에는 나의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와 친구들은 돌아갈 때 쯤엔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 한국가에서 온 것처럼 같이 한국영화를 보고 프랑스 코미디를 보고 손에 진흙을 뭍히며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언제가는 나의 키보다 크게 자라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큼 우리도 자라 있을 것이다.
어디론가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따뜻함을 가져다 준다. 그 길은 내가 걸었던 길이며 그 끝에는 나의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