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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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병준
네팔 FFN-11 · 환경/건설/아동/문화 2017. 07 네팔

Chitwan (Eco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네팔 워크캠프, FFN-11은 내 두 번째 해외봉사활동이다. 작년 초 인도 쿤다푸르 지역에서 처음으로 참가했던 워크캠프에 대한 기억이 지난 1년 반 동안 내게 힘을 되었고, 언젠가 또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할 것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도에 다녀오는 항공료를 포함한 전체 참가비 150만 원으로 현지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 선물하는 것이 그들이 더 바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해외봉사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또한 후진국에 대한 봉사활동이 '상대적 빈곤'과 그로 인한 불행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 꽤 오랜 시간 이에 부정적이 입장이었다. 마찬가지로, 2주간의 이번 봉사활동이 현지 인들에게 그 액수보다 더 큰 가치를 남길 수 있는가 물었을 때 나는 자신할 수 없었다.
해외봉사가 그 비용보다 더 큰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봉사자가 가진 기술과 능력이 현지인들이 갖지 못한 것이어서, 그들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혁신적인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이는 중장비 운용 기술, 건축 설계 기술일 수도 있고 공학자의 지식 혹은 예술가의 심미안일 수도 있다. 단순 노동으로 누구에게나 임금을 지급하여 행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히려 현지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팔로 떠나기 전 내 마음가짐은 전적으로 비용 이상의 도움을 주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워크캠프는 봉사활동뿐 아니라 참가자들간, 참가자와 지역주민간 문화교류활동을 포함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상악화로 기존에 예정되어 있던 치트완 국립공원 봉사활동이 취소되어 코끼리를 목욕시킬 기회는 잃었지만, 대신 카트만두 인근 캠프사이트에서 스페인, 프랑스, 대한민국에서 모인 여섯 명의 참가자가 서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날씨의 영향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오전에는 캠프 사이트 내의 농장에서 배수로를 만들었고, 점심 식사 이후에는 언덕에 걸쳐있는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네팔을 관찰하곤 했다. 둘째 주에 우리는 바네파(Banepa) 지역으로 이동했고 2015 네팔 대지진으로 일부가 붕괴된 학교 재건축을 돕기 위해 매일 아침 산 중턱까지 올랐다. 건축을 위한 기반 시설 마련, 짧은 기간 동안 우리의 일은 거기까지였고, 2주간 동고동락했던 우리는 재회를 기약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에베레스트’이다. 2주간의 캠프 기간 중 이틀의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우리 여섯 명은 히말라야 전망으로 유명한 나가라고트(Nagargot) 지역에 방문했다. 이른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전망대에 올랐고 팀원 중 한 명(Bastein)이 멀리 보이는 설산을 향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에베레스트라고 외쳤다. 여행을 떠나기 전 현지인 팀 리더로부터 날씨가 맑으면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다는 언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꽤 높아 보이는 그 산을 에베레스트로 믿었다. 심지어 일행 중 둘은 이를 SNS에 게시했다. 그것이 에베레스트가 아님이 밝혀진 것은 이틀 후 캠프사이트로 돌아와서였다. 우리는 자랑하듯 여행담을 떠들었고 일출 앞 에베레스트 전경에서 받은 감명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잠자코 듣고 있던 팀 리더는 이상함을 느꼈는지 에베레스트가 있던 방향에 대해 물었고, 실제 에베레스트는 해가 뜨는 방향이 아니라 더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날씨가 맑을 때 산맥 넘어 봉우리만 살짝 비친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그 동안 떨었던 호들갑이 생각나 하루 종일 웃었고, 어차피 아무도 진실을 모른다며 SNS 게시물도 내리지 않아 지금까지 여전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에베레스트를 만들어 버렸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스페인 여성 팀원(Clara)을 보며 이타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했다. 이타주의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주면서 느끼는 행복'이라면 클라라는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이다. 여행을 마치고 심하게 흔들리는 현지 버스 안에서 모두가 지쳐 있을 때 그녀는 마지막까지 타인을 위해 좌석을 양보했고, 바네파 숙소로 산길을 타고 이동하는 도중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나에게 교대할 것을 제안했다. 그녀의 행동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주변인들이 짊어진 부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자신의 처지와 관계 없이 고난을 나누려고 했다. 그녀의 태도는 현재 내 지향점이 되었고, 또한 나는 앞으로 그런 사람들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클라라의 선의가 내게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힘든 봉사활동을 하며 집단 속 자신의 위치를 '여성' 보다는 '구성원'으로 인식했고, 한국에서 '매너'라는 이름으로 남성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여성에 대한 '신사적 배려’는 오히려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내 호의가 여성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지 않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나는 그녀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 이상의 특별한 '매너'를 행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주의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페미니즘이 결여된 1차원적 이타주의가 타인에게 역으로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