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케냐, 열악한 환경 속 따뜻한 행복
Remanyanki Primary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독일에서 1년동안 교환학생으로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방학때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막연하게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국에서 입시공부와 바쁜 대학생활을 하다보니 아프리카까지 해외봉사를 갈 기회와 여유가 많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교환학생을 와보니 유럽과 아프리카가 지형상 가깝기도 하고 교환학생 생활은 한국 대학교 생활보다 좀 더 여유와 자유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어 이 중요한 시간들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바랬던 꿈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워크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워크 캠프 참가하는 것도 준비할 것들이 많았을텐데 독일에서 참가 준비를 하려고 하니 여러가지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타지에서 필요 서류, 준비물(예방접종,비자 등)를 준비하는 것은 언어적 한계와 독일 비자 등의 문제로 쉽지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주변 외국인 친구들, 학교 교수님들, 워크 캠프 관계자 분들께서 친절히 잘 도와 주셔서 무사히 참가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이라서 참가 전도 그렇고 참가 준비 중일 때는 더 설레고 기대가 많았었습니다. 여러 나라 친구들과 협력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같이 한다는 거.. 생각만해도 설레고 행복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대륙에 가서 한달동안 살고 지낸다는 것은 조금 두려움과 걱정이 있긴하였지만 그것보다 기분 좋은 떨림과 설렘이 더 많았었던 거 같습니다.
한국에서 워크 캠프 참가하는 것도 준비할 것들이 많았을텐데 독일에서 참가 준비를 하려고 하니 여러가지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타지에서 필요 서류, 준비물(예방접종,비자 등)를 준비하는 것은 언어적 한계와 독일 비자 등의 문제로 쉽지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주변 외국인 친구들, 학교 교수님들, 워크 캠프 관계자 분들께서 친절히 잘 도와 주셔서 무사히 참가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이라서 참가 전도 그렇고 참가 준비 중일 때는 더 설레고 기대가 많았었습니다. 여러 나라 친구들과 협력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같이 한다는 거.. 생각만해도 설레고 행복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대륙에 가서 한달동안 살고 지낸다는 것은 조금 두려움과 걱정이 있긴하였지만 그것보다 기분 좋은 떨림과 설렘이 더 많았었던 거 같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저의 팀은 프랑스 친구 2명, 일본인 친구 1명, 현지 케냐 친구 3명 그리고 저 이렇게 구성되어 활동하였습니다. 현지 활동을 하면서 굳이 특별한 에피소드보다는 일상적인 생활들이 더 기억에 남는거 같습니다. 저는 아침 새벽에는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였는데 등교하는 아이들이 항상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같이 운동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지역 주민들과 같이 물을 얻기위해 20분 걸어 강에서 물을 나르고, 아보카도 나무를 심고, 교회를 만들기위해 직접 수작업으로 벽돌을 만들고,
저녁에는 다같이 모여 캠프파이어도 하고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서로 수고했다며 하루를 마무리하고...단순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아주 가깝고 쉽게 느낄 수 있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자유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문화인 한국, 일본, 프랑스 문화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때 배운 태권도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일본인 친구는 축구를 가르쳐 주고 프랑스 친구들은 프랑스 동요를 알려주었습니다. 저 역시 그 시간에 케냐의 문화 뿐만아니라 일본, 프랑스 문화도 같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지역 아이들은 저희가 주는 작은 정보,놀이 등에 하나하나 감사히 여기고 행복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소하고 작은거 하나라도 더 나누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엄마, 아빠라는 말이 케냐에서도 발음상 우리나라처럼 엄마,아빠랑 같아서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살면서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진짜 가족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주말에는 다같이 모여 직접 케냐 음식도 만들어 먹고 제가 봉사했던 지역이 탄자니아와 가까워서 가끔 탄자니아 국경 쪽에 가서 피크닉도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저녁에는 다같이 모여 캠프파이어도 하고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서로 수고했다며 하루를 마무리하고...단순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아주 가깝고 쉽게 느낄 수 있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자유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문화인 한국, 일본, 프랑스 문화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때 배운 태권도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일본인 친구는 축구를 가르쳐 주고 프랑스 친구들은 프랑스 동요를 알려주었습니다. 저 역시 그 시간에 케냐의 문화 뿐만아니라 일본, 프랑스 문화도 같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지역 아이들은 저희가 주는 작은 정보,놀이 등에 하나하나 감사히 여기고 행복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소하고 작은거 하나라도 더 나누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엄마, 아빠라는 말이 케냐에서도 발음상 우리나라처럼 엄마,아빠랑 같아서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살면서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진짜 가족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주말에는 다같이 모여 직접 케냐 음식도 만들어 먹고 제가 봉사했던 지역이 탄자니아와 가까워서 가끔 탄자니아 국경 쪽에 가서 피크닉도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에 워크캠프를 참가한 이유는 저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 지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문화교류를 위해 참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직접 케냐에 가서 캠프 활동을 해보니 환경은 제가 상상했던 거보다 많이 열악하고 힘들었지만 현지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행복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여러 놀이감은 없지만 고무타이어, 옷으로 만든 축구공, 돌 등으로 그들만의 놀이감을 만들어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생활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봉사했던 지역은 보통 스와힐리어로 생활을 해서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못했지만 주민들, 아이들의 마음, 눈빛, 몸짓만으로도 저희들은 그들의 배려, 따뜻함, 사랑을 충분히 느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줄 알고 도와주려고 갔었지만 솔직히 심리적 환경은 제가 살고 있는 곳보다 더 행복하고 좋아보였습니다. 그 지역주민들께서 저에게 순간 순간을 어떻게 즐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을 주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실히 느끼게끔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가활동하면서 줬는 거보다 오히려 봉사하면서 느끼고 받았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물리적 환경을 지금보다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여러단체들의 꾸준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워크캠프는 저같이 대학생의 신분으로 작은 도움을 주러 가는 입장에서는 제가 줄 수 있는 거보다 얻을 수 있는게 더 많은 경험인거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그들로부터 느끼고 배운 점을 오래동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새기며 후에 더 훌륭한 어른이 되어서 제가 받았던 사랑과 행복을 다시 그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줄 알고 도와주려고 갔었지만 솔직히 심리적 환경은 제가 살고 있는 곳보다 더 행복하고 좋아보였습니다. 그 지역주민들께서 저에게 순간 순간을 어떻게 즐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을 주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실히 느끼게끔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가활동하면서 줬는 거보다 오히려 봉사하면서 느끼고 받았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물리적 환경을 지금보다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여러단체들의 꾸준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워크캠프는 저같이 대학생의 신분으로 작은 도움을 주러 가는 입장에서는 제가 줄 수 있는 거보다 얻을 수 있는게 더 많은 경험인거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그들로부터 느끼고 배운 점을 오래동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새기며 후에 더 훌륭한 어른이 되어서 제가 받았던 사랑과 행복을 다시 그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