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 30 !

작성자 권현경
케냐 CIVS/STV-01 · 교육/농업/청소년 2018. 01 아프리카

Cranes of Dago Thim Self Help Grou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5년전 25살, 방황하던 시절 카페에서 해외봉사 잡지를 보게되었다. 한 여학생이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혀왔다는 말에 솔깃했다. 아프리카라는 그 넓은 땅덩어리에 가면 나도 마음이 넓어질 수 있을지.. 하는 막연한 동경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보다. 항상 가야지, 가야지, 내년엔 꼭 가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다가 30이 되기 전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위험하다고 하는 아프리카에서 죽더라도 30살은 꼭 아프리카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떠나게 되었다. 12월 초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먼저 여행하고 일정에 맞게 케냐로 들어가게 되었다. 혼자 봉사활동을 가면 정보도 없고 여자이기에 분명 위험할 것 같아서 워크캠프를 통해 가게 되었다. 워크캠프 예비소집일에 가보니 아프리카 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쉽게 가지 않기에 아프리카는 내게 더 매력적이었다. 워크캠프라는 단체가 내겐 보험처럼 든든했다. 데이터가 절대 잘 안터지는 그런 곳에서는 특히 더..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남아공을 한달 먼저 여행하고와서인지 아프리카라는 나라가 익숙해졌지만,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두려웠다. 혹시나 다른 봉사원들을 만나지 못해 국제 미아가 되면 어떡하지 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다행이 아무탈 없이 픽업 나온 봉사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혼자 한국인일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도 윤정언니와 민우가 3주를 같이했다. 나포함 한국인 3명, 벨기에 여자1명, 네덜랜드 남자 1명 나머지 아프리카 봉사원들. 여자들의 숙소는 그곳에 있던 집 3채 중 사랑채처럼 조금한 집이었는데 방이 두개로 나누어져서 침대와 바닥에 생활하였고, 쇼파 있는 방은 우리 모두의 회의실 겸 휴식 공간이었다. 마치 그곳은 우리나라 30년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물을 직접 우물로 가서 기어와야 했고, 화장실도 2분정도 떨어진 자연화장실, 정전이 이틀에 한 번씩 되었고, 거울도 없어 피부가 망가지는지도 살이찌는지도 몰랐다. 또한 저녁 6시만 되면 어두컴컴해지기에 여자들은 3인 1조로 화장실 동기가 되었다. 화장실 밖에서 노래를 틀고 어두운 화장실 안을 나무문 사이로 비춰주며,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질문들을 서로 하며 더 친해졌다. 또한 집 뒷마당의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자연 샤워실을 이용하면서, 누가 오는지 망을 봐주면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 같다.
봉사원들이 다같이 첫 날, 처음으로 한 일이 규칙을 정하는 것이었다. 아침 8시에 기상으로 아침먹기, 팀을 정해 번갈아가며 일하기, 주말에는 주말 활동하기 부터 서로 존중하기,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기등 몇가지가 정해졌다. 다음 날부터 일 하기 힘든 어르신들의 밭을 갈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놀아주고, 영어를 가르쳐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밭을 가는 날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해가 더 뜨겁기 전에 일을 마쳐야 했다. 11시가 되면 식사팀은 음식을 만들러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천천히 마무리 하고 와서 오전을 보내고, 2시쯤 오후에는 주변 집들을 방문했고, 그러다 보면 저녁시간이 와서 밥을 먹고 8시쯤에는 모닥불을 켜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갖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잠을 자야하는 시간이었다. 일하고, 밥먹고 이야기 하고 이런 단순한 활동만으로도 시간이 빨리 갔다. 아마 물을 기어오고, 음식을 가스레인지 없이 불을 지펴 음식을 손수 해먹어서 그것도 하나의 일들이어서 일까. 카톡, SNS, 인터넷 쇼핑과에 중독되었있던 내게 운 좋으면 카톡이 하루에 한번 될까 말까 하는 그곳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보다 나 자체만으로의 만족감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에 내가 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것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지금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더 신중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아프리카에서 쓰는 영어가 우리가 배운 영어와는 다르기도 했고, 여행을 하면서만 사용하는 '이거 얼마야? 고마워' 이상의 영어실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봉사는 함께 어우러져 하는 활동이기에 같이 조율하는 부분에서는 나의 의견을 영어로 얘기해야 하고, 그래야 항상 옳다, 좋다 하는 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한국 문화와 외국문화의 차이에서 느낀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좋은게 좋은거다' 라면서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베풀려고 한다. 그리고 서운한 부분을 그냥 감추려고 하는 것. 그게 외국인에게 자기 주관이 없고 항상 순종적으로 보이기 싶다는 것을 알았다. 계속 베풀다 보면 그게 당연한 걸로 아는 그러한 것. 어쩌면 나의 의견을 내지 않아서 정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봉사활동 중간에 이러한 부분에 조율이 있었고, 봉사활동은 잘 끝냈지만, 아마 다들 3주의 아쉬움 뒤에 홀가분함이 남았을 것같다.
그래서 나는 이 봉사활동을 후에 비행기의 광고판에서 보여준 'SHOW YOURSELF'를 마음이 새겨두었고, 친한 친구사이든, 사회생활을 하면서든, 나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