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섦을 넘어선 자유

작성자 이다경
프랑스 CONCF-245 · 보수 2019. 07 프랑스

SAINT MAXIMIN – Stone quarr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이었다. 아시아를 떠나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 유럽, 유로, 그리고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집을 떠나 있는 것. 이는 나에게 두려움보단 흥미로 다가왔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이 곳에 가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같은 질문이 계속해 떠올랐고, 마침내 프랑스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 결정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방대한 질문들은 곧 있으면 대답이 될 질문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렘은 프랑스 가기 전 날, 짐을 싸는 도중에도 멈추질 않았다. 첫 유럽여행은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걱정 섞인 기대감과 함께 다음 날 비행을 위해 일찍 잠에 든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12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번 자고, 영화 한 편 보고, 밥을 먹고 다시 자면 12시간이 훅 지나가 있더라. 그렇게 힘겹지 않은 장기간 비행 끝, 난 비행기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사소한 문제와 대면하게 되었다. 분명 프랑스는 유럽... 영어권이라고 생각해 기존에 샀던 프랑스어 책을 한국에 놓고 온 안일한 과거의 나를 질책하게 되었다. 안내원조차 영어를 못하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였던 것이다! 더듬 더듬 알고 있는 모든 불어를 동원해 많은 고생 끝에 약속 장소에 도래하게 됐다.

첫 만남은 언제나 어색한 법.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이 상황에 우리는 그저 뻘쭘하게 발치에 시선을 고정하곤 리더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리더가 오고, 우린 차례로 우리의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말 한 마디 없는 어색한 차 안에서 난 당장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첫번째 일주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어쩌면 21일이라는 시간 중 가장 긴 일주일이 아니었나 싶다. 캠프에 참여한 대다수의 아이들 역시 영어를 쓰지 못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영어를 할 수 있는 헝가리인 친구, 도르카와 가까워지게 됐다.

매일 점심, 일이 끝난 후 우린 지친 몸을 이끌고 캠프로 돌아왔다. 와이파이는 커녕, 전파도 채 잘 터지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친구들과 친해질 수록 참 재밌게 놀았던 것 같다. 틈만 나면 노래를 틀어 춤을 추었고, 격렬한 춤에 지쳤을 때엔 노래를 틀어 같이 따라부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고된 일을 다시 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은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렇게 두번째 일주일, 세번째 일주일...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가 친해질수록 빠르게 흘러가만 갔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에게 깊게 친말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랬던 우리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마침내 다같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탈리아 친구 기도와 피에트로, 프랑스 친구 노라와 밀리안, 카데르와 무하마드, 파키스탄 친구 두랍, 스페인 친구 아나와 블랑카, 그리고 헝가리인 친구 도르카. 3주라는 짧고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잊고 싶지 않은 나의 친구, 그 이상이 되어버렸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해외에서의 3주는 생각보다 내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더이상 나는 바닥을 보며 걷지 않았다. 억압되어 있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당당하게 걸었으며, 그 누가 개인의 잘못으로 나를 질책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내 발치가 아닌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말하는 사람이 되었고, 어느때나 내가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인스타그램과 스냅챗, 왓썹도 하며 무엇보다 내 친구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년 워크캠프도 분명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 누가 거부하겠어! 부디 여러분도 워크캠프에 참여해 좋은 기억과 추억, 사람을 만나고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