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산골, 땀으로 이룬 우정
Carmignan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에 대해서 오래전 제가 고등학생일때 아버지에게 처음 듣게 되었고, 그 때부터 대학교에 가면 꼭 하고 싶은 첫번째의 활동이었습니다. 항상 나고 자란 한국에서 한국사람들끼리만 지내왔던 저에게는 다양한 각국의 대학생들이 모여 2주간 함께 그 지역을 위하여 일하고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2학년이 되던 봄부터 워크캠프에 지원하였고, 참가 확정이 되던 날부터 신나게 워크캠프와 여행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항상 이탈리아와 피렌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워크캠프 리스트가 뜨자마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이 걸리는 바께레또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워크캠프를 1지망으로 선택하여 산길을 만드는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이탈리아와 피렌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워크캠프 리스트가 뜨자마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이 걸리는 바께레또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워크캠프를 1지망으로 선택하여 산길을 만드는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저희는 피렌체 역에서 처음 만나 캠프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한가지 제가 놀랐던 점은, 다양한 국적과 성별, 나이가 섞인 팀을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실제로 캠프에 참가한 친구들은 2명의 리더를 포함해서 10명이 여자, 그리고 단 한명의 남자였습니다. 대부분의 여자 캠퍼들은 나이가 만으로 18-20살이며 유럽인들이었으나 한 명의 남자 캠퍼는 미국인에 3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캠퍼들이 대부분 어리고 이런 국제적 경험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모든 캠퍼들이 똘똘 뭉치는 팀웍과 공동체 정체성을 가지기는 어려웠습니다. 캠퍼들의 국적은 포르투갈, 터키, 알바니아,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이었고 동양인 참가자는 저로 유일했기 때문에 저 또한 첫 한주는 마음속으론 적응이 쉽지 않았던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산을 타고 산길을 작은 삽을 가지고 거의 맨손으로 산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기에, 한 터키 친구는 매일 울며 활동에 참여하거나 아예 참여를 못하는 날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는 두명의 스페인, 터키 리더들 또한 산길 만드는 작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캠프는 많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깊은 산골 마을은 아주 적은 인구를 가진 지역이었고, 심지어 와이파이도 그 어느 곳에서 터지지 않아 캠퍼들은 고립된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요인들은 제가 워크캠프를 준비하며 기대하였던 모습과 매우 달랐기 때문에 당시 만 19살이었던 저에게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학교를 숙소로 사용하던 우리의 하루 루틴은 이러했습니다. 아침 8시에 기상 후 아침을 함께 먹고, 모든 캠퍼들은 9시부터 산으로 향합니다. 산에서 레노베이션 노동을 끝내고 12시 이후 숙소로 돌아오면 모두들 샤워를 하고 조금 쉬다가 캠퍼들이 만든 점심을 먹었습니다. 항상 점심과 저녁은 당번인 두 사람이 만들게 되는데, 본인의 나라의 전통 음식을 위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요리나 문화에 대한 설명을 항상 식사 시간마다 듣게 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불고기 소스를 준비해 불고기를 만들었는데, 당시 불고기를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아주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만든 불고기를 캠퍼들이 모두 좋아해주어 다행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자유시간을 가지며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7월의 이탈리아는 매우 더운데, 두꺼운 돌벽으로 지어진 오래된 학교 건물은 매우 선선해서 에어컨이 없이 쾌적했습니다. 보통 캠퍼들과 산책을 하던지, 마을에 하나뿐인 피아짜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거나, 정원에서 다른 캠퍼와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캠퍼들은 수영장에 가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당번이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신호를 보내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매 저녁은 매일 캠퍼의 나라를 정해서 캠퍼들이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2011년은 막 kpop이 미국과 아시아에 돌풍을 불기 시작하던 해 였기 때문에 저는 한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소녀시대를 모른다고 하기에 멋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유럽에서 오래 거주 하게되며 어딜 가던 한국 음악과 영화을 잘 아는 유럽 사람들을 언제나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제가 한국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던 워크캠프의 그 저녁이 기억이 납니다. 주말에는 근교의 프라토, 피스토야와 같은 작은 마을들로 함께 여행을 갔고, 마지막 날에는 그 마을에 하나뿐인 가장 큰 피짜리아에서 피자를 함께 만들며 지역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산을 타고 산길을 작은 삽을 가지고 거의 맨손으로 산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기에, 한 터키 친구는 매일 울며 활동에 참여하거나 아예 참여를 못하는 날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는 두명의 스페인, 터키 리더들 또한 산길 만드는 작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캠프는 많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깊은 산골 마을은 아주 적은 인구를 가진 지역이었고, 심지어 와이파이도 그 어느 곳에서 터지지 않아 캠퍼들은 고립된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요인들은 제가 워크캠프를 준비하며 기대하였던 모습과 매우 달랐기 때문에 당시 만 19살이었던 저에게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학교를 숙소로 사용하던 우리의 하루 루틴은 이러했습니다. 아침 8시에 기상 후 아침을 함께 먹고, 모든 캠퍼들은 9시부터 산으로 향합니다. 산에서 레노베이션 노동을 끝내고 12시 이후 숙소로 돌아오면 모두들 샤워를 하고 조금 쉬다가 캠퍼들이 만든 점심을 먹었습니다. 항상 점심과 저녁은 당번인 두 사람이 만들게 되는데, 본인의 나라의 전통 음식을 위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요리나 문화에 대한 설명을 항상 식사 시간마다 듣게 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불고기 소스를 준비해 불고기를 만들었는데, 당시 불고기를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아주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만든 불고기를 캠퍼들이 모두 좋아해주어 다행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자유시간을 가지며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7월의 이탈리아는 매우 더운데, 두꺼운 돌벽으로 지어진 오래된 학교 건물은 매우 선선해서 에어컨이 없이 쾌적했습니다. 보통 캠퍼들과 산책을 하던지, 마을에 하나뿐인 피아짜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거나, 정원에서 다른 캠퍼와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캠퍼들은 수영장에 가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당번이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신호를 보내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매 저녁은 매일 캠퍼의 나라를 정해서 캠퍼들이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2011년은 막 kpop이 미국과 아시아에 돌풍을 불기 시작하던 해 였기 때문에 저는 한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소녀시대를 모른다고 하기에 멋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유럽에서 오래 거주 하게되며 어딜 가던 한국 음악과 영화을 잘 아는 유럽 사람들을 언제나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제가 한국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던 워크캠프의 그 저녁이 기억이 납니다. 주말에는 근교의 프라토, 피스토야와 같은 작은 마을들로 함께 여행을 갔고, 마지막 날에는 그 마을에 하나뿐인 가장 큰 피짜리아에서 피자를 함께 만들며 지역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워크캠프 경험은 만 19살의 저에게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상상과 매우 달랐던 워크캠프를 통해 저는 국제활동이란 언제나 반짝이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 다를지라도 서로를 믿는 신뢰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라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 2주간 힘든 노동이나 봉사를 하며 먹고 자며 생활한다는 건 한국에서라도 공동체 모두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활동일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이러한 현실적인 워크캠프는 후에 제가 유학생활과 해외취업을 하게 되었을 때를 잘 대비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