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촌년에서 스무살의 나로
DURAVE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시골에서 자라났다. 그렇다. 흔히 말하는 촌년이다. 아니, ‘촌년이었다’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촌년 탈출!’이다.
강원도 홍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춘천으로 고등학교를 가고 서울로 대학교를 가고,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을 갔다왔다는 건, 완벽한 촌년의 티를 벗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너무나 긴장되었다. ‘어떻게 혼자 거기까지 가지?’, ‘어떤 것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거지?’ 이런 모두가 하는 걱정들을 입에 살고 살았다.
그러나 2012년 7월 5일, 꿈 속에서만 존재하던 유럽땅을 밟았다. 내가 머릿속에서만, 책 속에서만 그려왔었던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 내가 배당받은 Duravel에 가는 것도 무지막지하게 걱정을 했지만, ‘사람은 일이 닥치면 다 하기 마련이다’라는 엄마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는 무사히 Duravel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유럽땅을 밟은 지 하루 만인 7월 6일, 나는 나와 3주 간을 동고동락하게 될 11명의 멋진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의 리더 프레드와 실반, 프랑스에서 온 막내 알렉스, 터키에서 온 기잠, 일만, 뮈게, 세르비아에서 온 두 소녀 카트리나, 이오바나, 체코에서 온 에바, 인도에서 온 소냐, 그리고 한국에서 온, 심지어 같은 학교인 현수언니.
처음에 만났을 때는, 눈 색깔도 다르고 머리색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달라서 서로 어색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같이 칸틴에 모여서 밥을 해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친해졌다.
평일에는 아침 7시부터 12시나 1시정도까지 일을 했고, 주말에는 놀았다. 처음 우리가 해야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이걸 어떻게하지? 이런 생각뿐이였는데 여기서 또 한번 ‘사람은 일이 닥치면 다 하기 마련이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재미있게 말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시멘트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시멘트를 나르고, 또 누군가는 그 시멘트로 돌담을 쌓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였지만, 일할 때는 서로서로 격려하며 간식도 먹으면서 재미있게 했다. 일할 때 만큼은 갈등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일에는 UP이 있다면 DOWN도 있기 마련이다. 주말에는 언제나 DOWN이 일어났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이 보내게 될 주말은 3번이었는데, 그 중 첫번째 주말을 괜찮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맞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2개의 주말은 정말, 갈등의 최고조였다.
성적 문화충격도 많이 받았고, 나라 간의 문제도 있었고, 술의 문제도 있었고, 하여튼 여러가지의 문제가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주말이 돌아 평일이 오면 언제그랬냐는 듯, 서로 sorry를 내뱉고는 다시 친하게 지냈다. 한국의 대부분의 형제자매같았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지역 주민분들과 교류가 정말 많았다. 비록 나는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고, 그 분들은 영어를 잘 못하시는 프랑스인들이시지만, 온 몸으로 말을 표현해가며 그렇게 소통했었다. 너무너무 귀여운 다람쥐 부부, 산타할아버지 같은 지비, 맛있는 간식을 항상 주셨던 이자벨과 테리.. 정말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들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웃음을 짓는 다며, 스마일걸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다. 외국사람들은 정이 없다고 하는데, 내가 만난 이 분들은 정말 정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나중에 Duravel에 가게 된다면 꼭! 만나뵙고 싶다.
하지만, 만남은 헤어짐이라는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 7월 27일 우리는 헤어짐을 맞았다.
서로 많은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 등 너무 많은 감정이 한 데 섞여 흐른 눈물이다.
만남은 헤어짐이라는 말이 있다면, 반대로 헤어짐은 만남이라는 말도 성립한다. 그 말을 기억하며 우리는 언젠가 다시 Duravel에 모여 바캉스를 오자는 약속을 서로 했다. 서로의 아이와 함께^^
3주 동안 너무 많은 걸 보았고, 느꼈고, 알고 간다. 내 생의 첫 프랑스는 파리가 아닌 두라벨로 기억 될 것 같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강원도 홍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춘천으로 고등학교를 가고 서울로 대학교를 가고,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을 갔다왔다는 건, 완벽한 촌년의 티를 벗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너무나 긴장되었다. ‘어떻게 혼자 거기까지 가지?’, ‘어떤 것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거지?’ 이런 모두가 하는 걱정들을 입에 살고 살았다.
그러나 2012년 7월 5일, 꿈 속에서만 존재하던 유럽땅을 밟았다. 내가 머릿속에서만, 책 속에서만 그려왔었던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 내가 배당받은 Duravel에 가는 것도 무지막지하게 걱정을 했지만, ‘사람은 일이 닥치면 다 하기 마련이다’라는 엄마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는 무사히 Duravel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유럽땅을 밟은 지 하루 만인 7월 6일, 나는 나와 3주 간을 동고동락하게 될 11명의 멋진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의 리더 프레드와 실반, 프랑스에서 온 막내 알렉스, 터키에서 온 기잠, 일만, 뮈게, 세르비아에서 온 두 소녀 카트리나, 이오바나, 체코에서 온 에바, 인도에서 온 소냐, 그리고 한국에서 온, 심지어 같은 학교인 현수언니.
처음에 만났을 때는, 눈 색깔도 다르고 머리색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달라서 서로 어색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같이 칸틴에 모여서 밥을 해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친해졌다.
평일에는 아침 7시부터 12시나 1시정도까지 일을 했고, 주말에는 놀았다. 처음 우리가 해야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이걸 어떻게하지? 이런 생각뿐이였는데 여기서 또 한번 ‘사람은 일이 닥치면 다 하기 마련이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재미있게 말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시멘트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시멘트를 나르고, 또 누군가는 그 시멘트로 돌담을 쌓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였지만, 일할 때는 서로서로 격려하며 간식도 먹으면서 재미있게 했다. 일할 때 만큼은 갈등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일에는 UP이 있다면 DOWN도 있기 마련이다. 주말에는 언제나 DOWN이 일어났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이 보내게 될 주말은 3번이었는데, 그 중 첫번째 주말을 괜찮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맞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2개의 주말은 정말, 갈등의 최고조였다.
성적 문화충격도 많이 받았고, 나라 간의 문제도 있었고, 술의 문제도 있었고, 하여튼 여러가지의 문제가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주말이 돌아 평일이 오면 언제그랬냐는 듯, 서로 sorry를 내뱉고는 다시 친하게 지냈다. 한국의 대부분의 형제자매같았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지역 주민분들과 교류가 정말 많았다. 비록 나는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고, 그 분들은 영어를 잘 못하시는 프랑스인들이시지만, 온 몸으로 말을 표현해가며 그렇게 소통했었다. 너무너무 귀여운 다람쥐 부부, 산타할아버지 같은 지비, 맛있는 간식을 항상 주셨던 이자벨과 테리.. 정말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들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웃음을 짓는 다며, 스마일걸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다. 외국사람들은 정이 없다고 하는데, 내가 만난 이 분들은 정말 정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나중에 Duravel에 가게 된다면 꼭! 만나뵙고 싶다.
하지만, 만남은 헤어짐이라는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 7월 27일 우리는 헤어짐을 맞았다.
서로 많은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 등 너무 많은 감정이 한 데 섞여 흐른 눈물이다.
만남은 헤어짐이라는 말이 있다면, 반대로 헤어짐은 만남이라는 말도 성립한다. 그 말을 기억하며 우리는 언젠가 다시 Duravel에 모여 바캉스를 오자는 약속을 서로 했다. 서로의 아이와 함께^^
3주 동안 너무 많은 걸 보았고, 느꼈고, 알고 간다. 내 생의 첫 프랑스는 파리가 아닌 두라벨로 기억 될 것 같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