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페인 엔씨소, 고립된 행복

작성자 이지원
스페인 SVIRI031 · RENO 2012. 07 Enciso, La Rioja

ENCIS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스페인 워크캠프는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쌓았다는 점에서 최고였고 일 면에서는 최악인 캠프였다.
우선 캠프가 이루어진 엔씨소는 주위 도시에서 매우 동떨어져있고 산 넘어 산을 가야 찾을 수 있는 시골이었다. 보통 주민 인구가 100명 정도 되는데 여름에는 200에서 300명 정도로 늘어난다고 그곳에서 일하시던 분이 알려주었다. 그 정도로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양인인 나와 또 다른 한국인 봉사자 오빠는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여하튼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사람 수도 적다보니 생활 면에서 낙후된 점이 많았다. 인터넷을 찾기 어려워서 항상 동사무소 같이 생긴 건물 앞에서 와이파이를 훔쳐 사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2주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전자기기 등이 없이 생활하는 것은 매우 불편했지만 그래도 한번쯤 해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봉사자들을 만났을 때 조금은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인포싯에 써있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부끄럼을 타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지만 모두들 스페인어로만 큰 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고 국제자원봉사자들에게는 말을 잘 안 걸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친해지려는 노력을 조금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지나고 나니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과 성향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나라 사람들 모두 노래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다혈질이었던 것이다. 문화차이기 있긴 하지만 개그코드도 잘 맞아서 나는 개인적으로 유럽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워크캠프에서 해야 하는 일은 고고학자들을 도와 산 지면에 있는 공룡 발자국들을 보존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갈라진 틈새에 시멘트나 실리콘을 바르고 미세한 틈에는 강력접착제를 주사하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땡볕의 낮까지 하루 종일 지면에 엎드리고 있으니 정말 힘든 막노동이었다. 첫날 힘들게 일을 하고 나니 앞으로 이주간 어떻게 이 일을 해내지 하는 막막함이 많이 들었다. 너무 힘들 때 중간중간 같은 캠프에 있던 오빠가 캠프를 때려치고 일찍 떠날까 하는 이야기도 서로 많이 했다. 왜 인포싯에는 자세히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같은 종류의 캠프가 여러 개가 있었고 마자막 날 모두가 모여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다른 캠프와 달리 우리 캠프만 오전과 오후 모두 일을 했고 오후에 강의도 들었으며 주말에도 일한 유일한 캠프였다. 다른 캠프들은 일이 수월했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나중에 이 캠프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알아보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엔씨소 캠프에 대해 그리울 것들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캠프에서 가장 그립고 캠프에 계속 남아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던 것은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스페인 봉사자들 중 유일하게 우리와 같은 방을 쓰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했던 카를로스! 20대 후반은 될 것 같은 외모지만 나름 앳된 19세 카를로스 덕분에 스페인 사람들과 나름 소통을 했고 무한 긍정주의를 배운 것 같다. 그의 음악과 맨날 우리를 끌고 간 피에스타 덕분에 낮의 피로가 싹 가셨다. 특히 새벽에 해뜰 때까지 파차란을 마시며 가족, 학교, 미래에 대해 수다를 떨고 서로 춤을 가르쳤던 날은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되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스페인식 미를 모두 갖춘 인마! 인마는 30대라는 말이 무색할 외모와 몸매였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봉사를 한 최고의 봉사자였다. 그녀의 스페인 남부 특유의 긍정주의자였고 그래서 모두가 사랑한 사람이었다.
커플로 함께 캠프에 온 로레나와 세르효르! 그들의 애정행각은 왠지 일을 더욱더 힘들게 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짖궂은 20살의 그들의 장난과 농담이 우리 봉사자들에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이 둘은 캠프가 끝나갈수록 나와 친해졌는데 한국음식도 굉장히 좋아해주고 음악이나 마사지 등 한국 문화를 무한 칭찬해주어서 더 기특하게 여겼었다.
회의적인 농담의 최고봉 마이테! 마이테도 막판에 가서 매우 친해졌는데 아무래도 풍자적인 개그코드가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인 듯하다. 심각한 얘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 웃는 마이테는 미래에 꼭 한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스페인 봉사자들 중 마지막 산드라! 무존재감으로 별명이 지어져서 좀 안타까운 면이 있었지만 이야기해보면 속이 깊고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엘리트 같은 언니였는데 좀더 친해지지 못 한게 아쉬웠다.
그 외 스페인 봉사자들은 부장 급 사람들이 있었는데 현장 책임자이자 나름 엄마의 역할을 했던 페파 교수, 자원봉사자들의 숙박, 식사 등을 총괄하는 정말 재밌고 친절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베고냐, 천상 여자이자 어깨 미인이고 한국어 배우는데 열심이었던 내 사랑 사라, 현장 부장이자 사진기사 같았던 길예르모, 그리고 이 워크 캠프들의 총 책임자였던 펠릭스 교수와 에스파란다 조교가 있었다.
워낙 오랜 시간 함께 했고 힘든 일을 함께한 전우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할말이 많은 듯 하다.
국제 자원봉사자들에는 러시아에서 오고 이 캠프의 가장 막내였던 옥사나!가 있었다. 좀 특이한 가치관에 매우 특이한 스타일의 차림을 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귀여운 친구였다.
터키에서 커플로 온 일 안 하는 줄라이와 라마산! 줄라이는… 아주 독특한 하이톤 목소리에 뭐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던 여자친구였다.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절대 끝나는 법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고 비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했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약간 그립기도 한 친구다. 반면에 라마산은 거의 말이 없었는데 한번 말을 하면 정말 빵빵터지는 코멘트를 했다. 대부분이 여친 디스였는데 그럴때마다 짓는 그의 표정과 웃음이 그립다.
멕시코에서 온 미녀 둘체! 오자마자 스페인 봉사자들과 폭풍 친화력을 자랑하고 국제자원봉사자들 사이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챙기던 재미있는 동갑내기였다. 일은 잘 안 하긴 했지만 그녀가 주는 나름의 밝은 분위기가 생활에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상일오빠! 영어도 잘 안 하는 시골 엔씨소에 한국인 한 명이 있는 것이 그렇게 큰 위안이었다. 비록 내가 많이 괴롭히기는 했지만(장난으로…) 온갖 주제에 대해 수다 떨고 게임을 하며 놀아서 많은 추억을 쌓았던 것 같다. 그곳에서 했던 ABC게임, 묵찌빠, 자음게임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엔씨소 캠프에 대해 생각하니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고 사람들이 그립다. 나중에 유럽여행을 가게 되면 스페인은 반드시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유럽여행에서 가장 좋았다. 일은 다른 곳보다 너무나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힘든 만큼 더 추억이 되고 사람들과도 많이 남았다. 그래서 여러모로 스페인 캠프는 매우 추천이다.